6화. 동생들이 오고, 형은 이상해진다
1501호에 사람이 들어왔다
주말 오후 2시. 1502호의 현관문이 열리고, 성진이 복도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손에 든 물티슈로 자신의 집 도어락 위 먼지를 스윽 닦아내더니, 발끝으로 삐뚤어진 현관 매트의 각도를 반듯하게 맞췄다. 평소에도 청결에 민감한 편이긴 했지만, 오늘처럼 굳이 남이 보는 복도 쪽까지 유난을 떠는 건 그의 생활 반경에 없던 행동이었다.
“이 정도면 됐나.”
성진은 1501호의 굳게 닫힌 문을 힐끗 쳐다보고는, 목 뒤를 한 번 긁적이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오랜만에 동생들이 오피스텔로 놀러 오기로 한 날이었다. 밴드 동아리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녀석들. 평소 같았으면 동생들이 오든 말든 거실에 대충 치킨이나 시켜두고 누워 있었을 텐데, 오늘따라 성진은 아침부터 청소기를 돌리고 환기를 시키며 유난을 떨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행여나 시끄러운 녀석들이 복도에서 소란을 피워 '앞집'에 민폐를 끼칠까 봐.
‘띵- 15층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울렸고, 1502호 안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성진은 올 것이 왔음을 직감했다.
“아따, 15층 억수로 높네! 행님 여기 살면 귀 안 먹먹합니꺼?”
“야, 윤도운. 복도에서 목소리 좀 낮춰라. 울린다.”
“아, 맞다. 근데 형님 집 비번 뭐였죠? 영현이 형 기억납니까?”
현관 밖이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사투리가 짙게 배어 있는 막내 도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그걸 타박하면서도 본인 목소리가 제일 큰 영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조용히 웃고 있을 원필이 분명했다.
성진은 녀석들이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도어락을 열고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아, 깜짝이야!”
양손에 편의점 봉투를 잔뜩 든 도운이 뒤로 흠칫 물러났다. 성진은 녀석들을 반기기도 전에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며 미간을 팍 좁혔다.
“복도에서 시끄럽게 하지 말고 퍼뜩 들어온나.”
성진의 날 선 단속에 영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눈치 빠르고 사람 심리 읽는 데 도가 튼 영현의 레이더가 핑핑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뭐야? 형 원래 이런 거 신경 안 쓰잖아요. 우리 예전에 왔을 땐 복도에서 노래를 불러도 놔두더니.”
영현의 시선이 성진의 눈짓을 따라 자연스럽게 뒤의 1501호로 향했다.
“아. 앞집 들어왔습니까?”
“어. 들어왔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조용히 들어오라고.”
성진이 영현의 등을 떠밀며 현관 안으로 우겨넣으려던 찰나였다.
‘철컥-’
타이밍도 얄궂지. 1501호의 도어락이 열리며, 분리수거용 종이 상자들을 안아 든 서하가 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복도에 덩치 큰 남자 넷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한 서하가 흠칫 놀라 걸음을 멈췄다.
성진의 몸이 순간적으로 뻣뻣하게 굳었다. 반면 영현, 원필, 도운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허리를 굽혀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1502호 동생들입니다.”
“시끄러웠으면 죄송합니다!”
동생들의 싹싹한 인사에 서하가 짐을 든 채로 환하게 웃으며 마주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괜찮아요, 하나도 안 시끄러웠어요. 재밌게들 노세요.”
서하의 대답에 성진이 그제야 굳었던 어깨를 조금 풀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평소처럼 무심한 듯 굴려 애를 썼지만, 긴장한 탓에 목소리가 한 톤 낮고 조심스러워졌다.
“주말인데 소란 피워 죄송합니다. 분리수거하러 가십니까.”
“네. 박스만 버리고 금방 올라올 거예요. 다들 편하게 계세요.”
서하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길 때였다. 넉살 좋은 도운이 그 뒷모습을 향해 눈치 없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거들었다.
“아이고, 조심히 다녀오십쇼! 저희 행님 잘 부탁드립니데이!”
“아, 진짜. 윤도운 조용히 안 하나.”
성진이 기겁을 하며 도운의 등짝을 가볍게 때렸다. 타박하는 말투는 무뚝뚝했지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무심코 고개를 돌린 서하의 시선에 닿은 성진의 옆얼굴은 평소와 달랐다. 동생의 주책이 어이없고 웃긴 듯 픽, 하고 편안하고 다정한 웃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항상 일정하게 그어져 있던 선이 지워지고, 진짜 내 사람들 앞에서만 보여주는 한껏 무장해제된 얼굴. 서하는 그 낯설고도 따뜻한 표정을 찰나지만 고스란히 눈에 담았다.
서하가 완전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성진은 뒤통수에 따가운 시선들이 꽂히는 것을 느꼈다.

성진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현관에 일렬로 선 동생 셋이 팔짱을 낀 채 그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와, 뭐. 뭘 보노.”
성진이 헛기침을 하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적막을 제일 먼저 깬 것은 도운이었다.
“와, 행님. 내 방금 진짜 소름 쫙 돋았심더.”
“뭐가.”
“‘소란 피워 죄송합니다~’ 와……. 내 살다 살다 우리 행님 입에서 저래 나긋하고 버터 바른 목소리 나오는 거 처음 보네예.”
“죽는다 진짜. 시끄러우니까 빨리 들어와라.”
성진이 귀끝을 붉히며 도운의 등짝을 가볍게 때렸다. 영현이 얄밉게 웃으며 거실로 들어섰다.
“형, 지금 딱 티 나요. 눈빛이 벌써 무슨, 세상 혼자 사는 로맨스 영화 찍고 있던데요? 앞집 분이시구나. 와, 박성진이 이웃사촌한테 반할 줄은 상상도 못 했네.”
“뭐라노. 그런 거 아이다. 그냥 인사한 기다.”
성진이 거실 테이블에 동생들이 사 온 맥주와 과자를 거칠게 내려놓으며 변명했지만, 누구도 그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가장 뒤에서 겉옷을 벗어 걸던 원필이, 애써 정색하려 꾹 다문 입술과 갈 곳 잃은 성진의 시선을 보며 특유의 장난기 어린 웃음을 흘렸다. 밖에서는 제법 어른스럽고 차분한 꽃집 사장님이었지만, 이렇게 넷이 모이면 어김없이 밴드부 시절처럼 애교 섞인 콧소리가 튀어나오곤 했다.
“혀엉~ 근데 방금 앞집 분, 진짜 좋은 사람 같네요. 뭔가 형이랑 결이 좀 비슷해.”
말투는 늘어지는데 짚어내는 알맹이는 제일 정확한 원필의 한마디에 성진의 손이 멈칫했다.
“……그분은 나를 그렇게 생각 안 할걸.”
“아니, 형! 형 말투가 벌써 달랐다니까? 그거 누가 봐도 좋아하는 건데예!”
도운이 과자 봉지를 뜯으며 확신에 차 소리쳤다. 성진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마른세수를 했다. 동생들 앞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됐고,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밥이나 묵자. 너거들 당분간 우리 오피스텔 오지 마라. 신경 쓰여서 못 살겠다.”
투덜거리는 성진의 목소리에 동생들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거실을 채웠다. 성진은 입으로는 그만하라고 잔소리를 쏟아내면서도, 결국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몽글몽글하고 속절없는 감정이었다.
같은 시각, 분리수거를 마치고 올라오던 서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방금 전 복도에서 마주쳤던 풍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성진은 항상 조용하고, 조금은 무뚝뚝하며, 자기 영역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도와줄 때조차 군더더기 없이 실용적인 모습만 보여주었으니까.
그런데 방금 전 동생들 사이에서 본 박성진은 묘하게 달랐다.
동생들에게 툭툭 잔소리를 던지면서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깊은 애정이 묻어 있었고, 편안한 미소가 입가에 번져 있었다. 늘 완벽한 타이밍에 짠 하고 나타나 도움을 주던 ‘어른스러운 이웃’이 아니라, 편안한 사람들 사이에서 한껏 무장해제된 평범하고 다정한 ‘형’의 얼굴.
‘동생들 앞에서는 저런 표정이구나.’
서하는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항상 선을 그어둔 듯 단정하던 성진의 이면에, 저렇게 스스럼없고 편안하게 웃는 얼굴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기분 좋았다. 그리고 덩치 큰 남자 넷이 현관에 우글거리면서도, 혹여나 자신에게 방해가 될까 봐 쩔쩔매며 주의를 주던 성진의 그 세심한 배려가 다시금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덥혔다.
‘띵- 15층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서하는 코너를 돌아 1501호 앞에 섰다.
맞은편 1502호의 닫힌 문 너머로, 시끌벅적한 남자들의 웃음소리와 성진 특유의 낮고 직설적인 잔소리가 웅얼웅얼 들려왔다. 방음이 꽤 잘 되는 철문 너머로도 미세하게 새어 나올 만큼, 오늘 성진의 공간은 평소보다 훨씬 활기차고 따뜻했다.
서하는 1502호의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작게 중얼거렸다.
‘좋은 시간이네요, 성진 씨.’
그녀는 도어락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상하게도, 항상 조용하고 건조했던 이 15층 복도의 공기가 오늘따라 유난히 다정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