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1호에 사람이 들어왔다
16화. 밖의 공방, 안의 작업대

16화. 밖의 공방, 안의 작업대

연애를 시작하고 두 달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15층의 두 철문은 이제 사실상 하나의 집을 나누는 방문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의 일상이 겹쳐지는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또 조용했다.

어느 평일 저녁.

공방에서 퇴근한 서하가 무거운 에코백을 어깨에 멘 채 15층 복도에 내렸다. 1501호의 도어락을 누르려던 찰나, 1502호의 문이 열리며 성진이 나왔다. 마치 그녀의 발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왔습니까. 짐 이리 주이소.”

성진은 자연스럽게 서하의 어깨에서 에코백을 가로채 들고는, 그녀를 1501호가 아닌 자신의 집으로 이끌었다.

“밥부터 묵고 합시다. 찌개 끓여놨습니다.”

성진의 식탁에는 따뜻한 된장찌개와 정갈한 밑반찬이 차려져 있었다. 서하는 손을 씻고 나와 성진이 빼주는 의자에 기분 좋게 앉았다.

“근데 가방에 든 건 뭡니까. 쇳덩이처럼 무겁던데.”

성진이 찌개를 떠주며 묻자, 서하가 가방에서 작은 지퍼백 여러 개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뽀얗게 연마된 수십 개의 은 펜던트와 체인 조각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번 주에 나갈 주문 건 부속들이에요. 집에 가서 조립하고 포장하려고요.”

“이런 건 공방에서 다 하고 오는 거 아입니까. 일까지 집으로 가져오면 언제 쉽니까.”

성진의 걱정 어린 타박에 서하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 일과 루틴이 나름 철저하거든요. 밖의 공방에서는 불 쓰고 망치질하는 거칠고 먼지 나는 작업만 해요. 그리고 집에 있는 작업대에서는 마감, 체인 연결, 검수, 포장 같은 세밀하고 깨끗한 작업만 하고요. 완벽한 분업이죠.”

낮에는 거친 불길 앞에서 금속을 다루고, 밤에는 차분하게 앉아 세밀한 조각들을 엮어내는 여자. 성진은 그 분명하고도 실용적인 직업적 경계가 꽤 멋지다고 생각하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친 서하는 1502호의 싱크대에서 자신이 쓰던 텀블러를 씻어 엎어두고, 주머니에서 핸드크림을 꺼내 발랐다. 은은한 꽃향기가 주방에 부드럽게 퍼졌다.

“저 이제 넘어가서 마저 일할게요. 밥 진짜 맛있게 잘 먹었어요.”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끊으이소. 이따 잠깐 들여다볼 테니까.”

성진의 배웅을 받으며 서하가 1501호로 건너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출근 준비를 마친 성진이 작업대 위에서 차 키를 챙기려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검고 묵직한 오디오 장비들 사이로, 작고 하얀 핸드크림 튜브 하나가 이질적으로 놓여 있었다. 어젯밤 서하가 바르고 무심코 올려두고 간 물건이었다.

성진은 고개를 돌려 주방과 욕실 앞을 바라보았다. 건조대에는 성진의 짙은 회색 수건 옆으로 서하가 세수할 때 쓰는 연노란색 헤어밴드가 걸려 있었고, 싱크대에는 그녀의 분홍색 텀블러가 놓여 있었다.

반대로 1501호의 신발장에는 성진의 커다란 슬리퍼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사소한 생활의 조각들이 서로의 영역에 경계 없이 스며들어 있는 풍경. 성진은 책상 위의 핸드크림을 만지작거리며 작게 미소 지었다. 내 공간에 타인의 물건이 놓이는 것을 그토록 거슬려 하던 과거의 자신이 무색해질 만큼, 이 낯선 무질서가 주는 안도감이 퍽 마음에 들었다.

며칠 뒤, 밤 10시. 1501호.

샤워를 마치고 편안한 잠옷으로 갈아입은 서하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감아 올린 채 작업대 앞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내일 택배로 나가야 할 작은 주얼리 상자들과 송장, 리본 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삐리릭- 철컥.’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성진이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그 역시 편안한 면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이었다. 성진은 현관에서부터 신발을 벗으며 잔소리를 장전했다.

“머리 안 말리고 또 앉았네. 감기 걸립니다.”

“이것만 다 포장해 놓고 말릴게요. 낼 아침 일찍 우체국 가야 해서요.”

서하가 눈을 떼지 못한 채 리본을 예쁘게 묶으며 대답했다.

성진은 서하를 억지로 일으키는 대신, 말없이 욕실로 들어가 헤어드라이어를 챙겨 나왔다. 그러고는 서하의 등 뒤에 서서 콘센트를 연결하고, 조심스럽게 수건을 풀어 그녀의 젖은 머리칼을 말려주기 시작했다.

따뜻한 바람과 함께, 성진의 크고 투박한 손가락이 서하의 머리칼 사이사이를 부드럽게 헤집었다.

“아, 진짜 좋다. 성진 씨 손 완전 따뜻해요.”

“안 뜨겁습니까.”

“딱 좋아요. 잠 올 것 같아.”

머리를 다 말려준 성진은 드라이어를 정리해 두고, 서하의 작업대 맞은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묻지도 않고 서하의 책상 위에 쌓여 있던 접기 전의 종이 상자 더미를 제 앞으로 끌어당겼다.

“어? 그거 제가 할 건데.”

“손 놔두고 뭐 합니까. 박스 접는 거면 나도 할 수 있습니다.”

성진은 덤덤하게 대답하며 종이 상자를 접기 시작했다.

자기만의 확실한 정리 규칙을 가지고 있는 꼼꼼한 성격은, 이런 단순 반복 수작업에서 무서운 빛을 발했다. 모서리의 각을 칼같이 맞추고, 바닥 면을 흔들림 없이 조립한 뒤, 완성된 상자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렬로 반듯하게 쌓아 올리는 그의 손놀림은 서하보다도 훨씬 빠르고 정확했다.

“와. 성진 씨 진짜 소질 있다. 나중에 나랑 같이 공방 차릴래요?”

“박스만 접는 동업자면 당장 내쳐질 텐데요.”

성진이 접은 상자 안에 완충재를 정갈하게 깔아 서하 쪽으로 밀어주었다. 서하가 그 안에 주얼리를 넣고 뚜껑을 닫으면, 성진이 다시 송장을 확인해 한쪽에 차곡차곡 정리하는 완벽한 분업 체계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거실에는 두 사람의 숨소리와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만이 평화롭게 내려앉았다.

“원래 집에서 혼자 포장할 때는 진짜 지루하고 힘들었거든요. 빨리 눕고 싶기만 하고.”

서하가 마지막 리본을 가위로 자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근데 성진 씨가 앞에 앉아 있으니까, 일하는 것도 데이트하는 것 같고 좋네요.”

성진이 마지막 박스에 송장을 붙이다 말고 고개를 들어 서하를 보았다. 조명 아래 비친 그녀의 얼굴에 피곤함과 뿌듯함이 기분 좋게 섞여 있었다.

“무리만 하지 마이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이렇게 와서 다 해줄 테니까.”

성진이 바닥에 흩어진 쓰레기들을 한데 모아 정리하며 무심히 대꾸했다. 다 끝난 상자들을 커다란 우체국 가방에 차곡차곡 담아 지퍼까지 깔끔하게 닫아둔 그는, 뻐근한 목을 돌리며 일어났다.

“진짜 빠르다. 성진 씨 없었으면 나 오늘 새벽 세 시까지 이랬을 거예요.”

“이제 일 다 끝났으니까, 씻고 빨리 잡시다.”

성진이 작업대 의자에 앉아 있는 서하의 손을 잡아끌어 일으켜 세웠다. 자연스럽게 서하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춘 성진은, 그녀가 작업대 스탠드 조명을 끄는 것을 기다렸다가 함께 현관 쪽으로 향했다.

서하의 집인 1501호는 더 이상 고단한 몸을 뉘고 잠만 자는 외로운 휴식처가 아니었다.

일과 사랑, 그리고 두 사람의 일상적인 체온이 가장 밀도 높게 섞여 드는 완벽한 공유의 공간으로 변모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