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결이 비슷한 사람
1501호에 사람이 들어왔다
사람의 인상은 종종 시각보다 후각으로 먼저 각인되기도 한다. 성진에게 서하가 그랬다.
출근 시간 엘리베이터 안, 혹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돌아오는 복도의 코너. 서하가 스쳐 지나간 자리에는 늘 특유의 향이 옅게 배어 있었다. 달콤한 꽃향기나 코를 찌르는 인공적인 화장품 냄새가 아니었다. 비 온 뒤의 숲에서 날 법한 깨끗하고 서늘한 나무 향. 끝에 살짝 맴도는 묵직한 머스크의 잔향.
‘취향 한 번 묘하네.’
어느 날 아침, 텅 빈 엘리베이터 안에서 성진은 허공에 남은 그 향을 무심코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그것은 성진 자신이 수년째 고집하고 있는 향수와 기조가 거의 흡사했다.
그날 밤, 작업실로 돌아온 성진은 외투를 벗다 말고 선반 위에 놓인 자신의 짙은 갈색 향수병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무광 유리병의 매끄러운 표면을 엄지로 한 번 쓸어본 그는, 이내 피식 실없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을 때 ‘향수 뭐 씁니까. 나랑 비슷한 거 쓰네요’ 하고 아는 척을 할 수도 있었지만, 성진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건 선을 지키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입을 닫는다고 해서 겹치는 취향마저 가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주말 오후, 성진은 편의점에서 생수 묶음과 라면을 사 들고 오피스텔 1층 로비로 들어섰다. 헐렁한 회색 후드티에 와이드 팬츠를 입은 편안한 차림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습관적으로 바지 주머니에서 짤랑, 하고 열쇠 뭉치를 꺼내 들었을 때였다.
“어?”
마침 외출을 마치고 로비로 들어오던 서하가 성진의 손 쪽을 보며 짧은 탄성을 뱉었다. 성진이 돌아보자, 서하가 자신의 어깨에 멘 가죽 토트백의 손잡이 부분을 가리켰다.
“그 키링, R사 거 맞죠? 금속 펜던트 달린 거.”
성진의 시선이 서하의 가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가방에는 성진이 들고 있는 것과 동일한 브랜드, 그러나 다른 라인의 가죽 키링이 매달려 있었다. 과한 장식 없이 묵직한 소가죽에 무광 은색 스터드가 박힌, 아는 사람만 아는 브랜드의 제품이었다.
“아.”
성진이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와, 신기하다. 이거 오프라인 매장도 잘 없어서 아는 사람 별로 없는데.”
서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가움을 표했다. 내 취향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난 순수한 즐거움이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저도 그거 스터드 라인이랑 성진 씨가 든 은장 라인 중에 엄청 고민했었거든요.”
“가방이랑 잘 어울리네요. 스터드 라인도 직접 보니까 괜찮네.”
성진은 무심히 생수 묶음을 고쳐 들며 대답했다. 툭 던진 칭찬이었지만, 서하는 빙그레 웃으며 가방끈을 매만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나란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닫히는 문 위로 올라가는 숫자를 보며, 성진의 시선이 아주 잠깐 서하가 입은 짙은 네이비색 티셔츠에 머물렀다. 로고 하나 없는 심플한 옷이었지만, 목선과 어깨로 떨어지는 재단이 특이했다.
“그거.”
“네?”
“티셔츠요. 거기 원단이 탄탄해서 오래 입기 좋습니다.”
엘리베이터의 적막을 깨고 불쑥 튀어나온 성진의 말에, 서하가 자신의 옷차림을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즐겨 입는, 양질의 원단과 독특한 재단이 돋보이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이었다. 로고도 없는 티셔츠에서 디테일만 보고 브랜드를 정확히 짚어낼 줄은 몰랐다는 듯 서하의 눈빛에 작은 놀라움이 스쳤다.
“어, 맞아요. 여기 옷이 세탁기 막 돌려도 넥라인이 안 무너져서 제가 진짜 좋아하거든요. 성진 씨 옷 좋아하시나 봐요.”
서하의 빤한 시선이 닿자, 성진은 아차 싶어 또 습관처럼 헛기침을 하며 목 뒤를 긁적였다. 또 아는 척을 해버렸다.
“뭐, 그냥… 주워들은 겁니다.”

민망함에 변명처럼 짧게 말을 끊어내는 성진을 보며, 서하는 소리 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은근히 주변의 디테일을 다 캐치하고 있는 이 남자의 틈이 조금 재밌게 느껴졌다.
서로의 취향이 꽤 겹친다는 사실은 두 사람 사이에 얇지만 단단한 신뢰의 막을 형성했다. 굳이 긴말을 섞지 않아도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식이 주는 편안함이 있었다.
며칠 뒤, 새벽 1시를 훌쩍 넘긴 늦은 밤이었다.
작업이 막히자 답답함을 느낀 성진은 환기를 위해 현관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15층 복도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스트레칭을 하던 성진의 발끝에, 복도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무언가가 걸렸다. 허리를 숙여 주워보니, 새끼손톱만 한 은색 펜던트였다. 무광으로 세밀하게 세공된 나뭇잎 모양이었다. 누가 봐도 앞집 여자의 것이 분명했다.
성진은 1501호 쪽을 바라보았다. 닫힌 문틈 아래로 희미한 음악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안 자고 있나.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 작고 납작한 펜던트가 행여나 중요한 물건일까 싶어 조심스레 1501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잠시 후, 안쪽에서 도어락 해제음이 들리더니 문이 빠끔히 열렸다.
“네…?”
현관 센서등이 켜지며 서하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의 등 뒤로는 닫힌 중문이 보였다. 반투명한 중문 유리를 통해 안쪽에서 켜둔 밝은 스탠드 조명의 빛과 함께 느낌 좋은 재즈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성진은 남의 집 안을 기웃거리는 무례를 범하지 않으려 시선을 서하의 얼굴과 어깨 언저리에만 두었다.
“늦게 죄송합니다. 복도에 이게 떨어져 있어서.”
성진은 커다란 손바닥 위에 놓인 작은 은색 펜던트를 내밀었다. 서하의 눈이 커졌다.
“아! 이거 오늘 마무리해야 하는 주문 건 부속인데, 어디 갔는지 한참을 찾았는데……! 진짜 감사합니다. 못 찾아서 미칠 뻔했거든요.”
가슴을 쓸어내리는 서하의 모습은 평소와 많이 달랐다. 화장기 없는 얼굴엔 뿔테 안경이 얹혀 있었고, 낡고 편안한 맨투맨 위로 회색 앞치마를 두른 차림이었다. 앞치마 군데군데에는 미세한 금속 가루들이 옅게 묻어 있었다.
무엇보다 늘 생기 넘치게 휘어지던 눈매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피곤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고도의 집중 상태를 막 빠져나온 사람 특유의 고요한 잔열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굳이 중문 너머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녀가 방금 전까지 저 조명 아래서 얼마나 완벽한 집중 속에서 일하고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자기 일에는 빈틈이 없네.’
성진은 속으로 감탄하며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이삿날 커피를 돌리며, 늘 밝은 표정으로 ‘감사하다’고 말하던 여자. 하지만 지금 이 고요한 밤의 틈새에서 마주한 서하의 얼굴은, 무리해서 밝은 척하지 않는 오롯한 어른의 얼굴이었다. 성진은 문득, 낮의 그 밝음조차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그녀 나름의 배려이자 태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었는데 무리하지 마이소.”
성진은 평소보다 한 톤 더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하는 가만히 성진을 올려다보았다. 펜던트를 찾아준 것에 대한 과장된 감사나 수선을 떠는 대신, 서하 역시 밤의 고요함에 맞게 목소리를 낮췄다.
“네. 성진 씨도 좋은 밤 보내세요.”
담백하고 조용한 인사였다. 성진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뒤에서 현관문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1502호로 돌아온 성진은 불이 꺼진 주방 식탁에 앉아 라면 물을 올렸다. 가스레인지의 파란 불꽃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일렁였다.
머릿속에 서하가 두르고 있던, 금속 가루가 묻은 회색 앞치마와 안경 너머로 가라앉아 있던 정갈한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비슷한 향수를 쓰고 같은 브랜드의 키링을 알아봐서가 아니었다. 일을 대하는 태도, 타인을 대하는 방식의 ‘결’이 맞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조용히 성진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보기보다 단단하네.”
성진이 끓어오르는 냄비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파란 가스불 위로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소리만이 새벽의 적막을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