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1호에 사람이 들어왔다
4화. 운명의 인력

4화. 운명의 인력

1501호에 사람이 들어왔다

주말 오전, 오피스텔 지하 주차장.

익숙한 흰색 소형차 앞, 서하가 커다란 대차(구루마)에 나무로 짠 무거운 진열장 세 개와 조명 장비들을 아슬아슬하게 쌓아두고는 휴대폰을 붙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 기사님. 진짜 지금 근처에 남는 차가 한 대도 없나요? 제가 12시까지는 무조건 들어가야 해서요. 웃돈 드릴 테니까 제발 한 번만… 아,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서하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원래 오늘 팝업 쇼룸 세팅을 위해 짐을 옮겨주기로 했던 용달 기사가 오는 길에 접촉 사고가 났다고 했다. 주말 오전이라 대체할 퀵이나 용달도 전혀 잡히지 않는 상황. 서하는 입술을 꾹 깨물더니, 대차 위에 있던 자기 몸통만 한 나무 진열장 하나를 낑낑대며 들어 올렸다.

“일단 들어가는 것만이라도 먼저 싣자.”

하지만 서하의 작은 소형차 트렁크에 그 거대한 목공 진열장이 들어갈 리 만무했다. 서하가 억지로 진열장을 트렁크 안으로 밀어 넣으려던 순간이었다. 진열장 모서리가 차 범퍼를 긁기 직전, 커다란 손이 불쑥 나타나 진열장을 단단하게 잡아챘다.

‘탁-’

“이거 이대로 밀면 트렁크 문 다 나갑니다.”

“어? 성진 씨?”

“이거 싣고 어디 가는데요.”

성진은 무심하게 대꾸하며, 서하가 힘겹게 들고 있던 진열장을 번쩍 들어 다시 대차 위에 안정적으로 내려놓았다.

“아, 오늘 팝업 스토어 세팅 날인데, 오시기로 한 용달 기사님이 사고가 나셨대요. 다른 차도 안 잡히고 시간은 다 돼가서, 일단 제 차에 실리는 것만이라도 먼저 옮겨놓으려고요.”

서하가 난감한 얼굴로 상황을 설명했다. 성진은 서하의 작은 소형차와, 대차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무거운 짐들을 번갈아 보았다.

“장소가 어딥니까.”

“네?”

“어디다 세팅하는 건데요.”

서하가 얼떨결에 근처 복합문화공간의 이름을 댔다. 차로 십 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이걸 그 차로 어떻게 다 옮깁니까.”

“두세 번 정도 왔다 갔다 하면 될 것 같아요! 무거우니까 손 다치지 않게 만지지 마시고….”

서하가 남에게 폐 끼치기 싫은 특유의 고집을 부리며 다시 진열장 쪽으로 손을 뻗었다. 성진은 짧게 한숨을 쉬며 주머니에서 자신의 자동차 스마트키를 꺼내 들었다.

“내 차로 옮깁시다. SUV라 한 번에 들어갈 겁니다.”

“아니에요! 진짜 괜찮아요. 성진 씨 주말인데 쉬셔야죠. 저 혼자 왔다 갔다 하면 돼요.”

"이거 두세 번 왕복하다 하루 다 가고 사람 진 다 빠집니다. 빨리 싣고 출발합시다."

서하의 거절을 논리적으로 차단하는 단호한 통보였다. 서하가 더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성진은 능숙하게 나무 진열장들을 자신의 차 트렁크로 옮겨 싣기 시작했다.

오후 2시, 팝업 쇼룸 공간.

처음엔 짐만 옮겨주고 올 생각이었다. 정말로 그랬다. 하지만 막상 텅 빈 공간에 짐을 부려놓고 보니, 성진의 성격상 도저히 그냥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전기 배선은 엉켜 있었고, 진열대 수평은 맞지 않았으며, 서하는 박스 틈에서 펜치와 씨름하고 있었다. 기사가 오지 못해 졸지에 힘쓰는 일까지 서하 혼자 다 감당해야 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성진은 결국 겉옷을 벗어던지고 팔을 걷어붙였다.

“아, 성진 씨. 진짜 이제 가셔도 돼요. 여기부터는 제가 확인하면 돼서….”

“이것만 선 정리하고 갈게예. 냅두면 사람 지나가다 발 걸립니다.”

한 시간 뒤.

“성진 씨, 이건 제가 조립할게요. 진짜 무리하시는 거예요, 지금.”

“나사 덜 조여졌습니다. 이리 줘보이소. 하던 거 마저 하고 갈게요.”

그렇게 두 시간, 세 시간이 훌쩍 지났다. 성진은 묵묵히, 그러나 완벽하게 서하의 손이 닿기 어려운 거칠고 힘쓰는 일들을 처리해 나갔다. 무거운 목공 진열대의 각도를 맞추고, 레일 조명의 방향을 조정하고, 전선들을 바닥에 깔끔하게 테이핑했다.

오후 6시가 넘어서야 팝업 쇼룸이 제법 그럴싸한 형태를 갖췄다. 서하가 마지막으로 메인 진열장에 은색 목걸이들을 세팅하는 동안, 성진은 구석에 쌓인 빈 박스들을 밟아 정리하고 있었다.

“이제 진짜 끝났어요.”

서하가 먼지 묻은 손을 털며 다가왔다. 늘 단정하던 그녀의 앞머리는 땀에 젖어 이마에 붙어 있었고, 셔츠 소매는 구깃구깃했다. 하지만 성진의 꼴도 만만치 않았다. 회색 후드티에는 먼지가 가득했고, 긴장한 근육들은 뻐근하게 굳어 있었다.

“오늘 진짜, 진짜 죄송하고 감사해요. 성진 씨 아니었으면 저 오늘 여기서 울면서 밤샜을 거예요. 제가 저녁 맛있는 거 꼭 살게요.”

서하가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말했다. 성진은 바닥의 박스를 마저 묶으며 무심히 대꾸했다.

“됐습니다. 밥 먹을 힘도 없을 텐데, 가서 쉬이소.”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춤을 털어내던 성진의 손이 순간 움찔했다. 박스를 묶던 거친 노끈에 쓸렸는지, 아니면 아까 조명을 달다 긁혔는지 손등 한가운데가 벌겋게 긁혀 피가 맺혀 있었다.

성진은 서하가 보지 못하게 재빨리 손을 등 뒤로 감추며 헛기침을 했다.

“그럼, 다 끝난 것 같으니 가보겠습니다.”

“잠깐만요.”

뒤돌아서려던 성진의 옷깃을 서하가 덥석 잡았다.

“방금 손. 뭐예요?”

“아무것도 아입니더.”

“손 줘보세요.”

서하의 목소리가 평소의 부드러움을 벗고 단단하게 가라앉았다. 성진이 주춤하는 사이, 서하가 한 걸음 다가와 성진의 커다란 손목을 잡아당겼다. 훅, 하고 익숙하고 서늘한 나무 향이 성진의 코끝을 스쳤다.

밝은 조명 아래로, 긁혀서 피가 배어 나오는 성진의 손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서하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녀는 성진의 피곤한 얼굴과, 흙먼지가 묻은 바지, 그리고 상처 난 손등을 번갈아 보았다. 늘 상대를 배려하느라 과장된 미안함을 내비치던 서하의 얼굴에서 불현듯 어설픈 웃음기가 싹 가셨다.

“왜 다 해준다고 해요.”

직구였다. 성진이 당황해 눈을 깜빡였다.

“네?”

“아까 제가 가시라고 할 때 가셨어야죠. 왜 본인 다치는 것도 모르고 남의 일을 끝까지 붙들고 있어요.”

화내는 게 아니었다. 타인의 미련한 다정함을 진심으로 속상해하는, 물기 어린 잔소리였다. 서하가 성진의 손목을 잡은 채, 시선을 들어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맞췄다.

“좋은 사람인 건 알겠는데요, 그러다 성진 씨가 먼저 퍼져요. 남 챙기는 것도 좋은데….”

가까워진 거리. 성진의 시야에 서하의 얼굴이 빈틈없이 들어찼다. 땀에 젖어 이마에 붙은 얇은 잔머리, 피곤함에 옅게 쌍꺼풀이 진 맑은 눈매, 화장기 없이 흙먼지가 살짝 묻은 뺨.

조금 전까지 무거운 짐을 나르며 엉망이 된 모습인데, 이상하게도 성진의 눈에는 지금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얼굴이 숨이 막힐 만큼 예뻐 보였다. 어떤 화려한 꾸밈보다도, 오직 자신을 탓하고 걱정하며 다가온 저 단단하고 올곧은 표정이 성진의 안쪽을 속수무책으로 뒤흔들고 있었다.

“성진 씨는 누가 챙겨요.”

쿵.

성진은 뒤통수를 둔기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일은 성진의 삶에서 숨 쉬듯 당연한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는 이상하게 다른 사람의 불편함을 빨리 알아차렸다. 누가 무거운 걸 들고 있으면 손이 먼저 나갔고, 누가 말없이 기분을 삼키고 있으면 그 침묵이 신경에 오래 남았다. 예민함과 감수성은 성진에게 늘 피곤한 감각이었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만드는 오래된 습관이기도 했다.

어릴 때는 그게 당연한 세상인 줄 알았다. 자신이 챙기면 어른들은 그런 성진을 다시 챙겨주었고, 친구들은 고맙다며 웃어주었다. 사람은 원래 서로를 그렇게 살피며 사는 거라고, 성진은 꽤 오래 믿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은 생각보다 덜 다정했고, 마음을 쓴 만큼 마음이 돌아오는 일은 당연하지 않았다. 괜찮다, 내가 하겠다는 말은 언제나 그의 몫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런 성진의 다정함에 고마워하다가도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씩 기대고, 의지하고, 결국엔 당연하게 여겼다.

그럼에도 성진은 쉽게 모른 척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돌려받지 못해도 괜찮을 만큼만,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남을 돕자고 스스로 선을 그어왔을 뿐이었다. 그 선을 넘어 자신을 걱정해주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래 곁에 남은 동생들, 아주 가까운 몇몇 사람들. 그리고 지금, 눈앞의 여자.

서하는 성진이 베푼 친절에 감동하는 대신, 그 친절 뒤에 가려진 성진의 무리와 피로를 정확히 들춰냈다. 고맙다는 말보다 먼저, 왜 자신을 그렇게까지 내버려두느냐고 단호하게 화를 내주고 있었다.

“여기 가만히 앉아 계세요.”

서하가 근처의 스툴을 끌어와 성진을 억지로 앉혔다. 그러고는 자신의 가방을 뒤져 금속 공예를 하며 늘 지니고 다니는 작은 구급 파우치를 꺼냈다.

성진은 고장 난 시계처럼 멍하니 스툴에 앉아 자신을 살피는 서하를 내려다보았다. 서하는 알코올 스왑으로 성진의 상처 부위를 조심스럽게 닦아내고, 연고를 바른 뒤 밴드를 꼼꼼하게 붙여주었다. 차가운 약기운과 함께, 서하의 작은 손가락이 닿았다 떨어지는 체온이 유난히 선명하게 감각을 파고들었다. 집중하느라 살짝 다물린 입술조차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선명했다.

“그리고, 이거 드세요.”

치료를 마친 서하가 이번엔 편의점 봉투에서 샌드위치와 바나나 우유를 꺼내 성진의 무릎 위에 툭, 올려놓았다.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드셨잖아요. 지금 얼굴 완전 반쪽이니까, 그거 다 먹고 가요. 안 먹으면 안 보내줄 거예요.”

어떤 낭만적인 포장이나 과한 애교도 없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생활적인 챙김이었다.

성진은 무릎 위에 놓인 차가운 샌드위치와, 자신의 손등에 반듯하게 붙여진 밴드를 번갈아 보았다. 늘 누군가를 챙기는 데 익숙했던 그가, 누군가 자신을 앉혀놓고 먹이고 상처를 돌봐주는 이 낯선 상황에 완벽하게 결박당한 기분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성진은 차마 그 예쁜 얼굴을 계속 마주하고 있을 수가 없어서, 시선을 피한 채 포장지를 뜯어 샌드위치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 빵인지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입안이 바짝 말라 있었다.

샌드위치를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날 즈음, 서하가 자신의 휴대폰을 불쑥 내밀었다.

“번호 찍어주세요.”

“예?”

“오늘 하루 종일 부려먹은 거, 샌드위치 하나로 퉁칠 생각 없어요. 나중에 제가 제대로 밥 살 테니까 번호 주세요.”

신세를 지면 반드시 자기 식으로 갚아야 직성이 풀리는 서하의 성격이었다. 성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그녀의 휴대폰 화면에 자신의 번호를 꾹꾹 눌러 입력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조심히 가시고, 상처에 물 안 닿게 조심하세요!”

밤 10시, 1502호 작업실.

모니터에는 음악 프로그램이 켜져 있었고, 베이스 루프가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하지만 성진은 30분째 마우스에 손도 올리지 못한 채 멍하니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다.

의식의 흐름은 자꾸만 몇 시간 전의 쇼룸으로 미끄러졌다.

자신의 옷깃을 잡아채던 악력.

가까이 다가왔을 때 훅 끼치던 서늘한 나무 향.

그리고 자신을 올려다보던, 걱정으로 가득 차 유난히 예뻐 보이던 그 단단한 눈매와 질책.

‘성진 씨는 누가 챙겨요.’

성진은 책상 위에 올려둔 자신의 오른손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손등 한가운데, 서하가 붙여준 살구색 밴드가 이질적으로 눈에 띄었다.

그는 밴드 위를 반대쪽 손가락으로 살짝 문질러 보았다. 피부 아래를 맴도는 묘한 열감이 도무지 가라앉질 않았다. 단순히 '결이 맞고 괜찮은 이웃'이라고 정의 내리기엔, 이미 무언가가 선을 성큼 넘어와 버렸다.

예의 바르고 성의 있는 사람이라 좋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처음으로 '박성진'이라는 인간의 덮어둔 피곤함을 알아보고 챙겨주었을 때, 성진이 그동안 세워두었던 견고한 생활의 벽 하나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렸다.

“하아….”

성진은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깊은숨을 내뱉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규칙적인 베이스 소리보다, 자신의 왼쪽 가슴 언저리에서 뛰는 심장 박동이 훨씬 더 크고 노골적으로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완벽하게, 반해버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