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y Day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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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5

완벽한 오프(Off)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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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일, 첫 데이트해야 하니까.]

원필이 남긴 그 한마디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고시원으로 돌아온 해인은 좁은 침대 위를 뒹굴며 밤새 이불을 걷어찼다. 입술 위에는 여전히 뜨겁고 묵직했던 첫 키스의 감촉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눈을 감아도, 떠도 온통 김원필의 나른한 눈빛과 목소리뿐이라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국 두 시간 남짓 선잠을 잔 해인은 아침 일찍부터 거울 앞에 섰다.

“데이트…… 하아, 진짜 데이트라니.”

해인은 옷장을 열고 깊은 고뇌에 빠졌다.

그동안 꽃집에 갈 때마다 그녀의 문신템은 늘 회색 후드 집업이거나 헐렁한 트레이닝복이었다. 하지만 명색이 ‘첫 데이트’인데 오늘마저 그 꾀죄죄한 몰골로 나갈 수는 없었다.

해인은 고시원에 챙겨왔던 옷들 중 가장 상태가 좋은, 차분한 베이지색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평소엔 잘 바르지 않던 코랄빛 블러셔로 파리한 볼에 생기도 불어넣고, 고데기로 머리끝도 살짝 말아보았다.

단장하는 내내 입꼬리가 주체할 수 없이 씰룩거렸다.

귀찮은 외출이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내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발걸음에는 깃털이 달린 듯했다.

오전 11시.

약속 장소인 고시원 앞 큰길가로 나선 해인은, 멀리서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한 남자의 실루엣에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와. 진짜 미쳤다.”

해인의 입에서 육성으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길가에 세워진 깔끔한 검은색 세단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는 남자, 원필이었다.

항상 두르고 있던 단정한 꽃집 앞치마도, 새벽 공원에서 보았던 후줄근한 니트 차림도 아니었다.

몸에 딱 떨어지는 핏의 검은색 슬랙스에, 깔끔한 흰색 셔츠, 그리고 짙은 네이비색의 얇은 재킷을 걸친 완벽한 ‘오프(Off)’ 모드의 김원필. 부스스하게 이마를 덮던 앞머리도 오늘은 깔끔하게 뒤로 넘겨, 그의 서늘하고 잘생긴 콧대와 눈매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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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 번씩 그에게 꽂히는 게 느껴졌다.

해인은 속으로 또 한 번 거대한 자부심을 느꼈다.

‘저렇게 미치게 잘생긴 남자가 내 거라 이거지.’

자신을 발견한 원필이 몸을 일으키며 다가왔다. 그의 시선이 해인의 베이지색 원피스와 정돈된 머리칼을 훑어 내리더니, 이내 그 까만 눈동자 안에 짙은 다정함이 차올랐다.

“…….”

원필은 아무 말 없이 해인의 앞에 서서, 아주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해인의 귓가로 고개를 숙여 나직하게 속삭였다.

“진짜 너무 예뻐서, 아무 데도 안 데려가고 그냥 꽃집에 숨겨두고 싶은데.”

“……아침부터 진짜 멘트가.”

해인이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하자, 원필이 낮게 소리 내어 웃으며 조수석 차 문을 열어주었다.

“타요. 우리 여자친구, 꽃집에만 가둬둔 거 미안해서 오늘은 콧바람 좀 쐬게 해 주려고요.”

차 안에는 은은한 우디 향 방향제 냄새가 감돌았다.

안전벨트를 매려던 찰나, 운전석에 올라탄 원필이 불쑥 해인 쪽으로 몸을 기울여왔다.

“헉.”

가까워진 거리에 해인이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어젯밤의 키스가 떠올라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원필은 해인의 안전벨트를 대신 끌어다 채워주며, 그녀의 귓바퀴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 건드렸다.

“긴장 풀어요. 운전하기 전엔 안 잡아먹을 테니까.”

“누, 누가 긴장했다고 그래요!”

“얼굴이 토마토처럼 새빨간데.”

원필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운전대를 잡았다.

차가 부드럽게 출발하고, 두 사람은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교외의 드라이브 코스로 접어들었다.

탁 트인 창밖으로 푸른 나무들과 반짝이는 강물이 스쳐 지나갔다. 며칠 내내 좁은 고시원과 꽃집 가벽 안쪽에서 모니터만 노려보던 해인에게는 그야말로 시야가 뻥 뚫리는 완벽한 힐링이었다.

하지만 창밖의 풍경보다 해인의 시선을 더 강력하게 끄는 것은 따로 있었다.

한 손으로 능숙하게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원필의 옆얼굴.

셔츠 소매 아래로 드러난 힘줄과, 운전에 집중하느라 살짝 다물린 입술. 그리고 무엇보다, 콘솔 박스 위로 넘어와 해인의 왼손을 단단하게 깍지 껴 잡고 있는 그의 크고 따뜻한 오른손.

원필은 운전하는 내내 해인의 손을 단 한 번도 놓지 않았다.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출 때면, 맞잡은 손을 들어 올려 해인의 손등에 입을 맞추거나 손가락 사이를 살살 문지르며 장난을 쳤다.

“어딜 그렇게 빤히 봐요. 얼굴 닳겠네.”

시선을 느낀 원필이 앞을 보며 피식 웃었다.

들켰다는 민망함에 시선을 돌릴 법도 한데, 해인은 오히려 잡힌 손에 힘을 꾹 주며 당돌하게 받아쳤다.

“그냥요. 내 남친이 너무 잘생겨서요. 닳으면 뭐 어때요, 내 건데.”

끼익-!

순간, 원필의 발이 브레이크를 살짝 세게 밟는 바람에 차가 미세하게 덜컹거렸다.

“어, 괜찮아요?”

“……아.”

원필이 차를 안전하게 갓길 쪽에 임시로 세우고는, 마른세수를 하며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귓바퀴가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여유롭게 어른스러운 척, 연하남의 직진을 시전하던 그였지만 ‘내 남친’이라는 해인의 강력한 직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해인 씨.”

“네?”

“그런 멘트는 운전 중에는 자제해 주시죠.”

원필이 억울하다는 듯 눈꼬리를 내리며 해인을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 차 세우고 키스하고 싶어지는 거, 간신히 참았단 말입니다.”

그 노골적이고도 절박한 고백에, 이번에는 해인의 얼굴이 폭발할 것처럼 달아올랐다. 이 남자는 훅 들어올 때와 져줄 때의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아는 게 분명했다.

“얼른, 얼른 출발이나 해요!”

해인이 시선을 창밖으로 홱 돌리며 헛기침을 해댔다. 원필은 그 귀여운 반응에 또 한 번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리며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북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널찍하고 조용한 대형 베이커리 카페였다.

초록빛 정원과 반짝이는 강물, 그리고 맛있는 디저트 냄새.

원필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주 자연스럽게 해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재킷 주머니 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여기 소금빵이 맛있대요. 며칠 내내 내 맛없는 요리랑 샌드위치만 먹었으니까, 오늘은 진짜 맛있는 거 먹여줄게요.”

“사장님 요리 맛없진 않았는데.”

“거짓말. 간 안 맞아서 맨날 해인 씨가 다시 볶아줬으면서.”

투닥거리며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의 모습은, 누가 봐도 방금 사랑에 빠진 완벽하고도 눈부신 연인이었다.

해인은 원필의 주머니 속에서 얽혀있는 그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작게 미소 지었다.

좁은 작업실과 고시원이라는 팍팍한 현실 속에 갇혀 있던 자신을, 가장 완벽한 피사체가 현실의 남자친구가 되어 밖으로 이끌어 내주었다.

이 비현실적일 만큼 달콤한 오프(Off) 모드의 휴일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해인은 원필의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대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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