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인은 자타공인 심각한 ‘얼빠’였다.
길을 걷다가도 잘생긴 사람을 보면 반사적으로 시선이 돌아갔고, 영화를 고를 때도 남주인공의 얼굴 개연성을 가장 먼저 따졌다. 그런 그녀가 김원필이라는 완벽한 얼굴 천재를 남자친구로 두었으니, 최근 해인의 안구 복지는 그야말로 최상급이었다.
‘하아, 진짜 잘생겼어. 꽃은 눈에 보이지도 않네.’

가벽 안쪽 테이블에 앉아, 꽃을 다듬는 원필의 옆얼굴을 감상하던 해인이 실실 웃음을 흘리던 찰나였다.
딸랑-!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어느 날의 왈츠’ 문이 열렸다.
“원필이~! 바쁘냐?”
가장 먼저 꽃집에 들어선 남자는, 몸에 딱 떨어지는 완벽한 핏의 올블랙 수트를 입고 있었다.

그가 한 손으로 단추 하나를 살짝 느슨하게 풀며 시원하게 웃었다. 날카롭고 섹시하게 뻗은 눈매가 반달로 휘어지는 게, 어딘가 능글맞고 여유로운 여우를 닮아 있었다.
“어, 형. 웬일이야, 평일에?”
“마포구에서 외근 끝나고 퇴근하는 길. 나 어제 주문한 꽃다발 다 됐냐? 오늘 만난 지 딱 100일이라 늦으면 큰일 나는데.”
“어, 저기 쇼케이스 안에 빼놨어. 가져가.”
수트 재킷을 벗어 들고 능청스럽게 커다란 꽃다발을 챙겨 드는 남자를 보며, 가벽 너머의 해인은 숨을 흡 들이켰다.
‘와, 미친 비율……. 어깨 넓은 거 봐. 게다가 저 여우 같은 눈웃음은 또 뭐야? 저런 대리님이 퇴근길에 나 주려고 꽃다발까지 사 들고 오면 진짜 업고 다니겠네. 단추 푸는 손끝에 완전 여유가 철철 넘치잖아.’
해인이 펜을 문 채로 그의 완벽한 수트 핏에 홀려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쇼핑백을 챙겨주던 원필이 묘한 시선을 느끼고 가벽 쪽을 힐끗 돌아보았다. 린넨 커튼 틈새로, 평소 자신을 볼 때 짓던 그 몽롱한 ‘얼빠’ 표정을 하고 제 친구를 감상 중인 해인과 딱 마주쳤다.
원필의 미간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는 완성된 꽃다발 쇼핑백을 들고 나오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카운터 테이블 끝쪽으로 걸음을 옮겨 해인의 시야와 영현의 사이를 자신의 등으로 완벽하게 가로막고 섰다.
“어라. 손님이 계셨네.”
원필의 등에 가려 보이지 않던 영현이 고개를 기웃거리며 가벽 안쪽을 쳐다보았다. 원필은 등을 꼿꼿이 세운 채 영현을 향해 서늘한 눈빛을 한 번 쏘아붙이고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아, 내 여자친구. 해인 씨, 인사해요. 고등학교 때 같이 밴드 하던 강영현.”
“아, 안녕하세요. 강영현입니다.”
영현이 특유의 홀리는 듯한 시원한 눈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과하게 치근덕대지도, 빤히 쳐다보지도 않는 깔끔하고 젠틀한 인사였다. 해인은 원필의 등 뒤에서 엉거주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받았다.
“자, 꽃. 받았으면 늦기 전에 빨리 가 형. 나 바빠.”
“참 나, 매정한 놈. 간다, 주말에 보자.”
원필은 영현이 유리문을 열고 완전히 나갈 때까지, 해인의 시야를 철통 방어하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폭풍처럼 등장해 완벽한 수트 핏만 남기고 떠난 여우상 미남.
해인이 멍하니 닫힌 문을 쳐다본 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딸랑-!
다시 한번 종이 울리며 두 번째 남자가 들어왔다.
“원필이형! 괘안나?!”
이번에는 편안하고 넉넉한 후드 티셔츠 차림의 남자였다.
수더분한 강아지처럼 순하고 맑은 인상인데, 신기하게도 걸음걸이나 어깨 골격에서는 묘하게 기품 있는 왕자님 같은 태가 났다. 게다가 그 순한 얼굴에서 훅 끼쳐오는 매력적인 저음의 사투리라니.
“어, 도운아. 드럼 학원 레슨은 다 끝났어?”
“예! 우리 학원 아들내미들 레슨 싹 다 마치고, 우리 카페 사장님 갖다 바칠 꽃다발 픽업하러 왔지. 어제 알아서 잘 예쁘게 달라 캤던 거!”

‘드럼원장님이 강아지상 왕자님인데 사투리 저음이라고? 이 반전 매력은 대체 무슨 청춘 드라마 설정이야. 심지어 지 여친 준다고 꽃 사러 온 거야? 목소리 엄청 굵직하고 좋네.’
해인은 연타로 쏟아지는 미남들의 등장에 거의 노트북 화면 너머로 빨려 들어갈 듯이 목을 길게 빼고 커튼 틈새를 주시했다.
그 불온한(?) 낌새를 눈치챈 원필이 이번에는 포장용 리본을 자르다 말고 눈을 가늘게 떴다.
원필은 아무렇지 않은 척 카운터 아래에 있던 잎이 무성하고 커다란 아레카야자 화분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해인의 시선이 향하는 커튼 틈새 앞에 떡하니 내려놓았다. 순식간에 해인의 시야가 푸른 야자수 잎으로 뒤덮였다.
“아, 행수님이십니까? 원필이 행님 친한 동생 윤도운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야자수 잎 사이로 도운이 해바라기 꽃다발을 품에 안고 사람 좋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해인이 잎사귀를 헤치며 “아, 네! 안녕하세요!” 하고 헤벌쭉 웃자, 원필은 도운을 향해 눈으로 ‘이제 그만 가라’는 매서운 레이저를 쏘았다.
“도운아, 문가에 오래 서 있으면 다리 아파. 이거 꽃 시들기 전에 얼른 카페 가봐.”
“예? 뭐라노...뭐, 암튼 간디~”
잠깐 괴상한 표정을 지은 도운이 해맑게 웃으며 씩씩하게 가게를 빠져나갔다. 해인은 야자수 잎 사이로 멀어지는 넓은 후드 핏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묵직하게 문이 열리며 세 번째 남자가 등장했다.
“야. 내일이다.”
세 번째 남자의 등장에 해인은 하마터면 쥐고 있던 펜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오버사이즈의 편안한 옷을 대충 툭 걸쳤을 뿐인데도, 이목구비의 자기주장이 엄청났다. 짙고 반듯한 눈썹, 오뚝한 콧대. 이른바 ‘눈빡 코빡’의 정석 미남이었다.

“어, 형. 왔어? 꽃은 다 준비해 놨지.”
“꽃 제일 빡센 걸로 예쁘게 맹글어 놨제? 내일 진짜 고백할 기다.”
무심하게 툭 내뱉는 진한 사투리. 무엇보다 해인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건 그의 눈동자였다. 툭 치면 서사가 쏟아질 것처럼 깊고 아련한, 우주를 담은 듯한 눈빛.
‘미친, T존 자기주장 봐. 저 얼굴은 무조건 각 잡힌 쓰리피스 수트를 입혀야 해! 그럼 진짜 나라를 구할 관상인데! 눈빛이 왜 저렇게 깊어? 저 얼굴로 빡센 꽃다발 들고 고백하면 당장 내 영혼이라도 바치지!’
타블렛 펜을 허공에 쥔 채, 성진의 얼굴을 뜯어보며 홀린 듯 감탄하던 해인의 손에서 기어이 펜이 미끄러졌다.
탁, 도르륵.
펜이 책상 위를 굴러가는 소리가 고요한 가벽 안쪽을 울렸다.
그 소리에 원필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넋을 놓고 성진을 바라보는 해인의 입이 반쯤 벌어져 있는 것을 확인한 순간, 원필의 핀트가 툭 끊어졌다.
원필은 다급하게 카운터를 돌아 나가 거대한 붉은 장미 다발을 쥐여주고는, 성진의 양어깨를 두 손으로 꽉 잡았다. 그리고 성진을 문 쪽으로 180도 홱 돌려세웠다.
“야, 야, 김원필 괘안나? 와 밀어샀노!”
“어, 형! 알았어. 형 마음 다 알았으니까! 꽃 세상에서 제일 빡세고 화려하게 만들어 놨으니까 고백 무조건 성공할 거야! 내일 컨디션 관리해야지! 푹 쉬어, 형! 잘 가!”
원필은 성진이 뭐라 항변할 틈도 주지 않고 그를 문자 그대로 가게 밖으로 밀어내 버렸다.
세 명의 남자가 폭풍처럼 다녀간 후, 고요해진 꽃집 안.
해인은 노트북 모니터 뒤로 얼굴을 반쯤 숨긴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뭐야. 다들 고등학교 때 같이 밴드를 했다고? 미친 비주얼 조합이잖아.’
여우상 수트 미남, 강아지상 사투리 드러머, 우주를 담은 눈빡코빡 미남. 그리고 얼굴 천재 건반 김원필까지.
심지어 다들 퇴근길에 자기 여자친구 주려고 꼬박꼬박 꽃집에 들르는 찐 사랑꾼들이라니.
해인의 머릿속에서 강렬한 의문이 피어올랐다.
‘도대체 저 밴드 뭐길래 지금 당장 데뷔 안 하고 각자 현생을 살고 있는 거야? 이 비주얼에 이 순정파들이면 당장 데뷔해야지, 나라에서 묶어두고 데뷔시켜야 하는 거 아니야?’
혼자 내적 주접을 떨던 해인은 입술을 삐죽였다.
‘어휴, 진짜. 이 정도면 괜히 밴드 이름이 데이식스면 참 좋겠네. 완전 내 취향이잖아.’
혼자만의 비주얼 파티에 심취해 실실 웃고 있던 그때였다.
불쑥, 커다란 손바닥 두 개가 해인의 양쪽 시야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어?”
“해인 씨, 아까부터 눈이 너무 바쁜 거 아닙니까.”
성진을 쫓아내고 씩씩거리며 들어온 원필이, 어느새 해인의 의자 뒤로 다가와 그녀의 얼굴 양옆을 제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의 까만 눈동자 안에는 명백하고도 짙은 질투심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아까 영현이 형이 단추 풀 때 입 벌어졌죠. 도운이가 들어올 때는 목까지 길게 빼고 구경하더니, 성진이 형 눈빛에는 아예 펜까지 떨어뜨리던데.”
“아, 아니! 그냥, 같이 밴드 하셨던 분들이라니까 신기해서…….”
“거짓말. 내가 해인 씨 그 표정을 하루 이틀 봅니까.”
원필이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평소의 그 여유롭고 다정한 직진남은 어디 가고, 제 주인이 다른 강아지들을 예뻐하자 낑낑대며 시샘하는 커다란 대형견이 따로 없었다.
“저 형들 다 자기 여자친구 주려고 꽃 사러 온 찐 사랑꾼들에, 한 명은 내일 임자 생길 몸이니까 쳐다보지 마요. 내 여자친구가 딴 남자 보고 감탄하는 거, 질투 나 미치겠네 진짜.”
원필이 해인의 뺨을 감싸 쥔 채로 고개를 숙여, 자신의 얼굴을 해인의 코앞까지 바짝 들이밀었다.

“내 얼굴만 봐요. 내가 밴드부 비주얼 에이스였거든요? 내가 제일 잘생겼잖아요. 안 그래요?”
그 당돌하고도 귀여운 투정에, 해인은 결국 참지 못하고 빵 터지고 말았다.
“알았어요, 알았어. 우리 사장님 얼굴이 제일 재밌고 제일 잘생겼어요.”
얼빠 강해인의 인생에, 압도적인 비주얼과 다정함, 그리고 귀여운 질투까지 완벽하게 장착한 김원필이라는 남자가 영원한 1픽으로 쐐기를 박는 완벽하고도 눈부신 오후였다.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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