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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4

첫 키스의 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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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필의 목소리는 분명 허락을 구하는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이미 다가오고 있는 그의 행동에는 한 치의 망설임이나 퇴로조차 없었다.

“…….”

해인은 대답 대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것을 긍정의 사인으로 받아들인 원필이, 해인이 앉아 있는 의자 팔걸이를 짚고 있던 손을 떼어내어 아주 천천히 그녀의 뺨을 감싸 쥐었다. 긴 손가락이 귓바퀴를 스치고 뒷목을 부드럽게 받쳐왔다.

서늘했던 바깥공기와 달리, 그의 손바닥은 델 것처럼 뜨거웠다.

원필이 고개를 비스듬히 꺾으며 다가왔다. 시야를 가득 채우던 잘생긴 이목구비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해인은 반사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쪽, 하는 가벼운 마찰음이 먼저 들렸다.

입술 위로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가 떨어졌다. 깃털처럼 가벼운 버드 키스였다.

‘……어?’

해인이 상황을 파악하려 살짝 눈을 뜨려는 찰나였다.

입술이 떨어져 아쉽다고 느낄 새도 없이,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짙고 묵직한 온기가 해인의 입술을 빈틈없이 덮쳐왔다.

“읏…….”

해인의 입술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원필은 해인의 아랫입술을 가볍게 머금었다가, 이내 조금 더 깊고 농밀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뒷목을 감싸 쥔 그의 손에 미세하게 힘이 들어가며 해인의 고개를 자신 쪽으로 바짝 당겼다.

밀폐된 꽃집 안.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던 달큰한 리시안셔스 향기와, 원필 특유의 보송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한데 뒤엉켜 해인의 후각을 마비시켰다.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는 기분이었다.

20년 전 콧물을 훌쩍거리며 쫓아다니던 그 꼬맹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원필의 리드는 너무나도 능숙하고 거침이 없었다. 그는 해인이 숨을 쉴 틈조차 주지 않고 집요하게 입술을 탐했다.

해인은 중심을 잃지 않으려 허공을 헤매던 두 손으로, 원필의 셔츠 자락을 생명줄처럼 꽉 움켜쥐었다.

“하아…….”

얼마나 지났을까.

산소가 부족해진 해인의 어깨가 잘게 떨리기 시작할 즈음, 원필이 마침내 입술을 떼어냈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물러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코끝이 스칠 만큼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한 채, 원필은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해인을 내려다보았다.

촉촉하게 젖은 까만 눈동자.

풀어진 시선과, 평소보다 붉게 달아오른 입술.

가까이서 마주한 원필의 얼굴은 그야말로 치명적인 수컷 그 자체였다.

“숨 쉬어요, 해인 씨.”

원필이 엄지손가락으로 해인의 젖은 입술 끝을 살짝 문지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제야 해인은 자신이 키스하는 내내 숨을 참느라 끅끅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푸하! 하아…….”

해인이 몰아쉬듯 숨을 터뜨리자, 원필이 참지 못하고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렸다.

“긴장했어요? 주먹 꽉 쥐고 있길래, 나 한 대 치는 줄 알았는데.”

“누, 누가 쳐요! 갑자기, 숨 막히게 그렇게 훅 들어오니까……!”

“숨 막혔어요? 미안해요. 근데.”

원필이 해인의 셔츠 깃을 매만져주며, 짐짓 억울하다는 듯 눈꼬리를 내렸다.

본문 삽화

“아까 손님들 앞에서 나 보면서 자꾸 웃길래, 진짜 너무 귀여워서…… 셔터 내리자마자 잡아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간신히 참았거든요.”

“잡아, 뭐, 뭘 먹어요!”

“농담이에요. 농담.”

원필이 해인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방금 전까지 사람을 숨 막히게 몰아붙이던 텐션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대형견 같은 연하남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해인은 터질 듯한 심장을 진정시키며 애써 눈을 흘겼다.

“사장님 진짜 위험한 사람이네요. 20년 동안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이렇게 능구렁이가 돼서 나타났대?”

“억울합니다. 제 20년 치 순정, 방금 첫날 치 이자만 살짝 돌려받은 것뿐인데.”

원필이 능청스럽게 대꾸하며 해인의 책상 위에 흩어져 있던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자, 이제 진짜 퇴근합시다. 우리 여자친구, 고시원 통금 시간 늦으면 안 되니까.”

“고시원에 통금 같은 거 없거든요?”

“내가 있어요. 밤늦게까지 해인 씨 바깥에 두는 거, 내 통금에 걸려요.”

말이나 못 하면.

해인은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 참으며 원필이 챙겨주는 백팩을 건네받았다. 물론 가방을 메는 건 언제나처럼 원필의 몫이었다.

꽃집의 불을 모두 끄고, 보안 장치를 잠그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그친 뒤의 밤공기는 제법 선선했지만, 두 사람의 사이를 맴도는 공기는 한여름처럼 훈훈하고 뜨거웠다.

원필은 아주 자연스럽게, 비어 있는 해인의 왼손을 자신의 오른손으로 꽉 깍지 껴 잡았다.

“…….”

해인은 자신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얽혀드는 원필의 긴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 그 뜨거웠던 첫 키스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다시금 전해지는 것 같아 귀끝이 화끈거렸다.

두 사람은 맞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고시원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15분의 짧은 거리. 하지만 함께 걷는 이 밤길이 해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달콤한 산책로처럼 느껴졌다.

어느새 고시원 건물 앞.

해인이 아쉬운 발걸음을 멈추고 원필을 올려다보았다.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내일, 아침에 갈게요.”

“아, 내일.”

원필이 맞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은 채,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내일은 꽃집으로 출근하지 마요.”

“……네? 왜요? 저 내일 작업할 거 많은데.”

해인이 당황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자, 원필이 깍지 낀 손을 들어 올려 해인의 손등에 짧게 입을 맞췄다.

“작업은 하루만 미뤄요.”

“…….”

“우리 내일, 첫 데이트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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