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고시원의 좁은 화장실 거울 앞.
해인은 양손으로 자신의 양 볼을 짝! 소리가 나게 내리쳤다.
“아얏! 아, 꿈 아니네. 진짜네.”
얼얼해진 뺨을 문지르면서도 해인의 입꼬리는 씰룩씰룩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고 있었다.
[콜. 오늘부터 1일 해요, 우리.]
어젯밤, 그 미친 얼굴의 플러팅 폭격기에게 자신이 직접 수락 도장을 찍어버렸던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무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그 김원필이 내 남자 친구라니. 20년 전의 그 코흘리개 울보가, 이렇게 완벽하게 자라서 내 발밑으로 굴러들어 왔다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전생에 나라를 세 번쯤 구해야 가능한 서사였다.
해인은 평소처럼 낡은 회색 후드를 집어 들었다가, 멈칫하고는 다시 옷장에 쑤셔 넣었다.
대신 고시원에 올 때 챙겨왔던 옷 중 그나마 가장 멀쩡한, 아이보리색 얇은 니트와 슬랙스를 꺼내 입었다. 립 틴트도 평소보다 한 톤 밝은 색으로 꼼꼼하게 발랐다.
‘뭐, 1일 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지, 예의.’
괜히 헛기침을 하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해인은, 어느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고시원을 나섰다.
딸랑-.
“안녕하세요…….”
‘어느 날의 왈츠’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싱싱한 꽃향기보다 먼저 해인을 덮쳐온 것은 카운터에 기대어 서 있던 김원필의 눈부신 미소였다.
“왔어요?”
평소의 그 ‘어서 오세요, 손님’ 하는 영업용 톤이 아니었다. 목소리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다 못해 진동을 하는, 지독하게 다정하고 사적인 인사.

원필은 해인이 들어오자마자 하던 일을 멈추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선’을 지키느라 한 발짝 떨어져서 가방을 받아주던 그가, 오늘은 아예 해인의 허리에 가볍게 손을 두르며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어제 잠은 잘 잤어요?”
“아, 네. 뭐…….”
허리에 닿은 부드러운 손의 온기에 해인은 흠칫 놀라며 로봇처럼 뚝딱거렸다. 원필은 그런 해인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소리 내어 웃으며 그녀를 가벽 안쪽 테이블로 안내했다.
“오늘 옷 예쁘게 입었네요. 평소에 입던 그 회색 후드도 귀여웠는데, 이건 진짜 너무 예뻐서 밖으로 내보내기 싫어지는데.”
“……아침부터 멘트가 왜 그래요, 진짜!”
해인이 얼굴을 붉히며 가방을 내려놓자, 원필이 의자까지 빼주며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왜요. 이제 남친인데 이 정도 주접은 합법이잖아요.”
미친. 남친이래.
해인은 그 두 글자에 심장이 또다시 널뛰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원필이 미리 타둔 헤이즐넛 라테를 해인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평소라면 여기서 “맛있게 드세요” 하고 돌아갔을 그가, 오늘은 해인이 컵을 쥐려는 찰나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버렸다.
“……!”
“손이 왜 이렇게 차요.”
원필은 해인의 작은 손을 자신의 커다란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제 뺨에 살짝 가져다 대며 온기를 나누었다. 그의 서늘하고 맑은 피부에 손등이 닿자 해인은 전신에 짜릿한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원, 원필 씨! 누가 보면 어쩌려고……!”
“누가 보면 어때요. 우리 연애하는 거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싶은데.”
원필은 해인의 손등에 아주 가볍게 입술을 꾹 누르고 나서야 순순히 손을 놔주었다. 해인은 얼어붙은 채로 타블렛 펜을 잡았지만, 모니터를 노려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은 지 오래였다.
‘아…… 작업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얼굴만 보고 싶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전의 ‘가성비 덕질’ 때는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만족해야 했지만, 이제는 저 완벽한 피사체가 오롯이 제 소유가 된 것이다. 만질 수도 있고, 안을 수도 있고, 합법적으로 사심을 팍팍 채울 수 있다니.
그때였다.
딸랑-!
“사장님~ 저번에 예약했던 꽃바구니 찾으러 왔어요!”
아침부터 손님이 찾아오며 가게 안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원필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해인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고는 가벽 너머로 향했다.
“네, 어서 오세요. 꽃바구니 이쪽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순식간에 눈빛이 돌변하며 ‘친절하고 완벽한 꽃집 사장님’ 모드로 전환한 원필.
해인은 노트북 모니터 너머로 린넨 커튼 틈새를 통해 그 모습을 훔쳐보았다.
꽃을 다듬는 우아한 손놀림, 손님의 요구에 맞춰 다정하게 미소 짓는 얼굴, 그리고 포장지를 다루며 살짝살짝 드러나는 전완근의 힘줄까지.
예전 같았으면 ‘와, 진짜 잘생겼네’ 하고 감탄만 했을 텐데, 오늘 해인의 필터는 완전히 다르게 장착되어 있었다.
‘저렇게 일 잘하고 잘생긴 남자가. 내 남자 친구라 이거지.’
자부심, 아니 엄청난 뽕이 차올랐다.
손님들이 원필의 미소에 얼굴을 붉히거나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해인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거기 손님들, 우리 사장님 얼굴 보고 반해봤자 소용없어요. 이 사람 20년 전부터 내 거였거든요?’
혼자만의 유치하고도 짜릿한 우월감에 휩싸여, 해인은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펜을 굴렸다.
얼마 후,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다시 꽃집 안에 고요가 찾아왔다.
드르륵.
커튼을 걷고 들어온 원필이, 다가오자마자 해인의 책상 모서리에 두 팔을 괴고 턱을 얹었다. 커다란 대형견이 주인의 쓰다듬을 기다리는 듯한 완벽한 엎드림 자세였다.
“하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원필이 해인을 올려다보며 애교스럽게 눈을 휘었다.
“나 일하는 내내 해인 씨가 커튼 틈새로 훔쳐보는 거 다 알고 있었어요.”
“헉, 티 났어요?”
“당연하죠. 내 온 신경이 여기 다 쏠려있는데.”
원필이 턱을 괸 채로, 해인 쪽으로 상체를 더 바짝 기울였다.
“아까 나 볼 때, 눈빛이 아주 노골적이던데.”
“제가 언제요! 그냥…… 일 잘하네, 하고 본 거지.”
“거짓말. ‘와, 내 남친 진짜 잘생겼다’ 하고 콩깍지 씌어서 보는 눈빛이었는데.”
정곡을 찔린 해인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원필은 집요하게 시선을 맞추며, 낮고 나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렇게 예쁘게 쳐다만 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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