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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3

꽃에는 천재, 생활엔 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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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무슨 일인가 싶어 린넨 커튼을 살짝 걷고 안을 들여다본 해인은, 하마터면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작은 1구짜리 인덕션 앞, 원필이 프라이팬을 내려다보며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시들어 죽어가는 희귀 식물을 살려내려는 식물학자 같은 비장함이었다.

“사장님, 괜찮아요? 무슨 일 있어요?” “아, 저, 그게……. 파스타를 좀 만들려고 했는데,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습니다.”

본문 삽화

원필이 들고 있던 포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난처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프라이팬 안에는 허여멀건 파스타 면과 정체불명의 채소들이 기름에 둥둥 떠 있었다.

해인이 다가가 포크로 면을 조금 건져 맛을 보았다. 입에 넣자마자 해인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으악. 이게 무슨 맛이에요? 소금 간은 하나도 안 돼 있고 기름은 한강인데…… 묘하게 달아요!” “그게, 시각적으로 색감을 좀 맞추면 좋을 것 같아서 애호박이랑 방울토마토를 넣었거든요. 근데 감칠맛이 부족한 것 같아서 설탕을 반 스푼 넣었는데…… 그게 문제였을까요? 간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원필이 시무룩한 얼굴로 변명했다. 그 창백하고 서늘한 킬러상의 얼굴로 요리 간 하나 못 맞춰서 쩔쩔매는 꼴을 보니, 해인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사장님. 솔직히 말해 봐요. 평소에 여기서 밥 어떻게 해 먹었어요?” “보통은…… 그냥 김밥 사 먹거나. 아니면 저기 있는 시리얼…….”

원필의 시선이 가닿은 선반 위에는, 대용량 초코 시리얼과 컵라면 몇 개가 처량하게 쌓여 있었다.

견적이 딱 나왔다. 본업인 꽃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벽주의자이면서, 자기 입에 들어가는 건 대충 아무거나 밀어 넣고 때우는 전형적인 생활력 제로의 인간. 식물의 색감과 배치는 천재적으로 조합해 내면서, 요리의 기본적인 간 맞추기에는 완벽하게 무능한 허당이었다.

해인은 팔짱을 낀 채 작게 혀를 찼다.

“비켜 봐요. 이 상태로는 오늘 안에 저녁 못 먹겠네.” “아뇨, 제가 대충 수습하거나 배달시키겠습니다. 손님은 앉아 계세요.” “됐어요, 배달 오려면 한 시간은 걸릴 텐데 나 배고파서 쓰러져요.”

해인은 원필을 탕비실 한쪽으로 밀어내고, 익숙하게 팔을 걷어붙였다. 독거 프리랜서 5년 차. 비록 귀찮아서 평소엔 대충 먹고살지만, 생존을 위한 냉장고 파먹기와 죽어가는 음식 심폐소생술만큼은 만렙에 가까웠다.

해인은 기름이 한강인 프라이팬에서 면과 건더기만 건져낸 뒤, 기름을 덜어내고 냉장고에 굴러다니던 마늘과 베이컨, 페페론치노를 찾아내 빠르게 볶기 시작했다. 거기에 소금과 후추로 명확하게 간을 잡고 면을 다시 넣어 볶아냈다.

치이익-. 매콤하고 고소한 마늘 기름 냄새가 탕비실 안을 가득 채우자, 구석에 쫓겨나 뻘쭘하게 서 있던 원필의 눈이 토끼처럼 동그랗게 커졌다.

“와. 손님, 요리 엄청 잘하시네요.” “이건 요리가 아니라 생존입니다. 사장님은 색감 맞추는 거 보니까 재료는 잘 고르시는데, 간 맞추는 건 영 소질이 없으시네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원필이 멋쩍은 듯 코끝을 긁적였다. 15분 만에 그럴싸한 베이컨 오일 파스타 두 접시가 뚝딱 완성되었다.

테이블 위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은 드디어 늦은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포크로 면을 돌돌 말아 입에 넣은 원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평소의 그 은은하고 예의 바른 미소가 아니라, 맛있는 걸 먹고 진심으로 감동한 어린애 같은 표정이었다.

“진짜 맛있습니다. 제가 사 먹어 본 파스타 중에 제일 맛있어요.” “사장님이 넣은 재료에 간만 다시 맞춘 건데 오버하지 마요.” “빈말이 아니라 진짜요. 저 매번 컵라면만 먹어서 위장이 깎이는 기분이었거든요.”

그 얼굴로 그렇게 불쌍하게 말하면 모성애라도 자극해야 정상인데, 해인은 오히려 그 간극이 너무 웃겨서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니, 사장님.” “네?” “꽃 포장할 때는 진짜 무슨 예술 작품 다루듯이 완벽하게 하시잖아요. 색감도 기가 막히게 뽑으시면서, 왜 자기 밥그릇은 그 모양으로 냅둬요?” “꽃은……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니까요. 근데 요리는 불 조절도 어렵고, 미각이 좀 무딘 건지 도무지 간이 제 맘대로 안 움직이더라고요.”

원필이 진지하게 대답하며 남은 파스타를 싹싹 긁어먹었다. 그 모습을 턱을 괴고 바라보던 해인의 입가에 편안한 미소가 번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테이블에 마주 앉아 곁눈질로 그의 얼굴을 훔쳐볼 때면, 그 서늘하고 조각 같은 미모에 주눅이 들거나 혼자서 심박수를 주체하지 못해 쩔쩔맸었다.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완벽한 예술품을 대하는 관람객처럼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인덕션 앞에서 프라이팬을 내려다보며 심각하게 고민하던 헐렁한 모습. 간을 맞춘 파스타 한 접시에 눈을 반짝이며 감동하는 소박한 입맛. 손님들 앞에서는 철벽을 치며 능수능란하게 응대하면서, 자기 생활은 하나도 건사하지 못하는 이 맹탕 같은 구석.

그 모든 것들이 원필이라는 사람의 입체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얼굴 천재’라는 완벽한 껍데기 안에 들어 있는, 서툴고 빈틈 많은 진짜 ‘원필’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앞으로 탕비실에서 혼자 요리하는 건 금지입니다.”

해인이 빈 접시를 한데 모으며 단호하게 선언했다.

“요상한 재료 조합해서 미각 테러하지 마시고, 정 먹고 싶으면 재료만 사다 놔요. 제가 볶아 드릴 테니까.” “……진짜요?”

원필의 눈이 다시 한번 반짝였다. 해인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작업실 빌려주신 대여료라고 치죠. 대신 설거지는 사장님이 하세요.” “아, 설거지는 진짜 자신 있습니다. 뽀득뽀득하게 해 놓겠습니다.”

원필이 신이 나서 빈 접시들을 들고 탕비실로 향했다. 경쾌하게 들려오는 물소리를 배경 삼아, 해인은 다시 타블렛 앞에 앉았다.

어깨에 들어가 있던 뻣뻣한 긴장이 풀려 있었다. 더 이상 잘생긴 얼굴을 훔쳐보기 위해 눈치를 보거나 무의식적으로 스케치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대신, 탕비실에서 들려오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묘하게 마음을 간질였다.

‘위험하네.’

사람이 편해진다는 건,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경계가 허물어진 자리에 스며드는 감정은, 그 어떤 치명적인 첫눈의 반함보다도 훨씬 깊고 질긴 법이었다.

해인은 입술을 꾹 다물고 화면에 집중하려 애썼다. 그러나 가벽 너머에서 원필이 콧노래를 부르며 접시를 닦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자꾸만 비집고 새어 나오는 헛웃음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이 허술하고 귀여운 남자를, 더 이상 ‘가성비 덕질’의 대상으로만 남겨둘 수 없다는 불길하고도 달콤한 예감이 해인의 밤을 서서히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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