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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2

옆에 두고 보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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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이후, 해인의 일상은 아주 쾌적하고 단순한 궤도에 안착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고시원에서 씻고 나와, 곧장 ‘어느 날의 왈츠’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 가벽 안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점심 무렵까지 바짝 집중해서 그림을 그린다. 원필이 내려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오후 작업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해가 지고 꽃집의 메인 조명이 꺼진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완벽하게 두 사람만의 고요한 야간 작업실이 되는 식이었다.

“어머, 사장님. 안에 직원 새로 뽑으셨나 봐요?”

며칠째 매장에 상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단골손님들의 눈에 띄는 일도 잦아졌다.

가벽 너머의 린넨 커튼 틈새로 해인의 뒷모습을 본 한 손님이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헤드셋을 끼고 있던 해인은 못 들은 척 타블렛에 시선을 고정했지만, 귀는 한껏 쫑긋 세운 상태였다.

“아, 직원은 아니고요.”

꽃을 포장하던 원필이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요즘 저랑 같이 작업하시는 분이에요. 안쪽 테이블에서 공간 쉐어하고 있습니다.”

같이 작업하시는 분.

그 깔끔하고 담백한 호칭이 해인의 귓가에 기분 좋게 내려앉았다. 친척 동생이나 아는 지인이라며 얼버무리는 대신, 해인의 일(작업)을 존중해 주면서도 묘하게 소속감을 주는 대답이었다.

‘같이 작업하시는 분이라니. 말 참 예쁘게 하네.’

해인은 속으로 작게 미소 지으며 다시 펜을 쥐었다.

이렇게 물리적인 거리가 좁혀지고 같은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해인에게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변화가 찾아왔다.

바로 원필의 그 ‘폭력적인 미모’에 조금씩 면역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꽃집에 발을 들였을 때만 해도,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면 뇌가 일시 정지하거나 심박수가 널뛰는 시각적 충격을 겪어야 했다. 웃을 때마다 반달로 휘어지는 눈매를 보며 남몰래 가슴을 부여잡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손님. 작업은 좀 잘 풀리세요?”

“아, 네. 오늘은 진도가 좀 나가네요.”

본문 삽화

커피를 리필해주러 다가온 원필이 해사하게 웃어 보일 때, 해인은 그의 높은 콧대나 예쁜 입꼬리에 감탄하는 대신 그의 눈 밑에 옅게 깔린 피로의 흔적을 먼저 보았다.

‘오늘 새벽 시장 다녀오셨다더니 좀 피곤하신가 보네.’

‘아침에 들어온 스위트피 색이 잘 나와서 기분이 좋으신가.’

옆에 두고 계속 보다 보니, 화려한 이목구비라는 껍데기를 지나 그 안에 있는 ‘원필’이라는 사람의 현재 상태와 기분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얼빠의 시선에서 벗어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를 관찰하고 이해하게 되는 과정. 해인은 이 아늑하고 일상적인 익숙함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사각, 사각.

조용한 꽃집 안, 타블렛 펜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평화롭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저녁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꼬르륵-.

해인의 배에서 제법 크게 개구리 우는 소리가 났다. 집중하느라 점심을 샌드위치 반 쪽으로 대충 때운 탓이었다. 해인이 민망함에 헛기침을 하며 배를 부여잡는데, 마침 꽃 냉장고를 정리하던 원필이 커튼을 걷고 고개를 내밀었다.

“저녁 아직 안 드셨죠?”

“아, 네. 마침 대충 뭐 좀 사다 먹을까 하던 참이었어요.”

“나가실 거 없이 여기서 드시죠. 제가 간단하게 뭐 좀 해드릴게요.”

해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사장님이 요리도 하세요? 아니, 여기서요?”

“탕비실 쪽에 인덕션이랑 작은 조리대가 있거든요. 제가 여기서 끼니를 때울 때가 많아서 대충 식재료는 있습니다. 매번 샌드위치나 김밥만 드시는데, 오늘은 따뜻한 거 드세요.”

원필은 자신만만하게 소매를 걷어붙이며 가벽 뒤쪽에 있는 간이 주방 겸 탕비실로 향했다. 해인은 모니터 너머로 그의 뒷모습을 힐끗거리며 내심 기대에 부풀었다.

저렇게 완벽한 미감으로 꽃을 디자인하고, 그 가늘고 유려한 손가락으로 섬세하게 식물을 다루는 사람이다. 분명 요리도 각 잡고 예쁘게, 기가 막히게 잘할 것이 분명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능숙하게 도마질을 하는 미남이라니, 생각만 해도 또 다른 의미의 안구 정화였다.

해인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작업하던 파일을 저장하던 그때였다.

“하아…….”

탕비실 안쪽에서 땅이 꺼질 듯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우당탕탕 하는 요란한 소음은 아니었지만,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와 함께 연거푸 들려오는 한숨이 묘하게 신경을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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