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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1

강 회장님의 귀환, 그리고 폭풍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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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마포에 계신 영현의 아버지—평소 우리끼리는 '강 회장님'이라 부르던—께서 낚시 여행에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이 들렸다. 영현이 어머니로부터 대충 상황을 전해 들으셨는지, 강 회장님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영현에게 짧고 굵은 카톡을 날리셨다.

강 회장님
당장 튀어와라. ㅇㅇ이도 같이.

"자기야, 나 지금 손바닥에 땀 나. 우리 아버지가 너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지? 나 아마 오늘 살아서 못 돌아올 수도 있어." 영현이 수트를 갖춰 입으며 진심으로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강 회장님은 예전부터 나를 친딸보다 더 예뻐하셨고, 영현이 조금이라도 나를 괴롭히는 낌새가 보이면 가차 없이 아들의 등짝을 날리시던 분이었다.

"걱정 마. 내가 옆에서 잘 말해볼게. 그래도 아들인데 설마 때리시겠어?" "너는 우리 아버지를 몰라서 그래. '감히 내 귀한 딸 같은 애를 이놈 자식이!' 하시면서 몽둥이 들고 계실걸."

우리는 거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무거운 발걸음으로 영현의 본가로 향했다.

영현의 본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거실 한복판에 팔짱을 끼고 앉아 계신 강 회장님이 보였다. 평소 인자하시던 얼굴은 간데없고, 마치 죄인을 심문하는 판사 같은 엄숙함이 감돌았다.

"앉아라."

우리는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강 회장님은 한참 동안 영현을 노려보시더니, 옆에 있던 신문을 돌돌 말아 영현의 어깨를 툭 치셨다.

"이놈 자식, 강영현! 네가 제정신이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감히 우리 ㅇㅇ이를 건드려! 너 같은 놈이 감당할 수 있는 애가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아버님, 건드리다니요! 저 진짜 진심입니다!" "진심은 무슨! 너 어릴 때 ㅇㅇ이 장난감 뺏어서 울리던 거 내가 다 기억해! 그런 놈이 어디서 감히 연애질이야! ㅇㅇ아, 너 혹시 이 자식이 협박했니? 아저씨가 다 해결해 줄게, 말만 해."

강 회장님은 나를 보며 눈빛을 싹 바꾸며 다정하게 물으셨다. 나는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영현은 억울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아버지, 저 진짜 억울해요! 저 ㅇㅇ이를 20년 동안 짝사랑했다고요! 어제 아버님(여주 아빠)한테도 다 말씀드렸단 말이에요!" 영현의 항변에 강 회장님이 멈칫하셨다. 그러더니 다시 돌돌 만 신문을 내려놓고 턱을 괴셨다.

"20년? 네가? ...하긴, 네놈이 학교 다닐 때 ㅇㅇ이 근처에만 누가 오면 눈을 부라리긴 했지."

한참을 생각에 잠기셨던 강 회장님의 눈이 갑자기 번쩍 뜨였다. "잠깐만. 그럼... ㅇㅇ이가 우리 집 며느리가 된다는 소리야? 이제 남의 딸이 아니라 '우리 식구'가 된다는 거지?"

"그... 그렇죠? 결혼하면?" 영현의 대답에 강 회장님의 표정이 순식간에 봄날 눈 녹듯 사라졌다.

"허허, 이거 봐라? 그럼 ㅇㅇ이가 평생 우리 집에서 밥 먹고, 나랑 같이 낚시도 가고, 나중에 내 손주도 낳아주고... 야! 영현아! 너 진짜 큰일 했다! 장하다 내 아들!"

방금까지 도둑놈이라며 타박하시던 분은 어디 가셨는지, 강 회장님은 벌떡 일어나 영현의 어깨를 으스러지게 껴안으셨다. "역시 내 아들이야! 안목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

폭풍 같은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양가 부모님들은 벌써부터 예식장 리스트를 공유하며 단톡방을 만드셨지만, 정작 주인공인 우리는 다시 '여의도 김 대리'와 '마포 강 대리'로 복귀해야 했다.

"강 대리님, 주말 잘 보내셨습니까?" 여의도역 근처 카페에서 마주친 강영현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주변에는 다른 회사 사람들도 많았기에 우리는 철저하게 '비즈니스 텐션'을 유지했다.

"아, 네. 강 대리님도요. 오늘 미팅 있으시다면서요?" "네. 마포 쪽 바이어라 금방 끝날 것 같습니다. 이따 퇴근하고... 아니, 업무 마무리하고 연락드리죠."

강영현은 무심하게 커피를 받아 들며 내 손가락 끝을 살짝 스쳤다. 남들 앞에서는 차가운 도시 남자지만, 그의 눈동자 속에는 어제 아버지에게 '장한 아들' 소리를 들으며 좋아하던 귀여운 모습이 남아 있었다.

결혼은 아직 우리에게 이른 일이었고, 우리는 지금 이 아슬아슬하고 달콤한 연애의 순간을 조금 더 즐기고 싶었다. 부모님들의 속도가 KTX 급이라면, 우리는 완행열차처럼 천천히,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가고 싶었다.

퇴근길,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다. 사람들 틈에 섞여 버스 맨 뒷자리에 앉자마자, 강영현이 내 어깨에 머리를 툭 기대왔다.

"자기야, 나 오늘 아버지가 보낸 카톡 봤어? '며느리 맛있는 거 사주게 이번 주말에 소고기집 예약해라'라고 하시더라." "아... 진짜 우리 아빠랑 강 회장님, 두 분 다 너무 앞서가신다니까."

나는 투덜거렸지만, 강영현이 내 손을 자기 외투 주머니 속에 넣고 꽉 쥐어오는 느낌이 좋았다. 20년 동안 '야'라고 부르며 싸우던 우리가, 이제는 양가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혹은 감시를 받는) 사이가 되었다.

"결혼은 천천히 하자. 일단은 나랑 연애 좀 더 해줘. 20년 기다렸는데, 이 예쁜 모습 좀 더 오래 단둘이서만 보고 싶어."

강영현이 내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버스는 흔들리며 마포대교를 건넜고,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은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부모님들의 귀여운 압박도, 회사에서의 어색한 존댓말도, 결국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묶어주는 사랑의 주파수일 뿐이었다.

"알았어, 자기야. 대신 주말 소고기는 네가 쏘는 거다?" "당연하지. 강 서방이 그 정도는 해야지."

우리는 마주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20년 지기에서 연인으로, 그리고 조금씩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 우리의 밤은 여전히 달콤한 소음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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