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시작하고 어느덧 두 달이 훌쩍 지났다. 우리의 대화에서 가장 큰 변화는 '야'라는 단어가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자기야, 오늘 마포 쪽으로 내가 갈게. 저녁 뭐 먹을까?" "음... 나 오늘 고기 먹고 싶은데. 자기가 좋아하는 데로 가자."
이제는 '자기야'라는 호칭이 제법 자연스럽게 입에 붙었다. 하지만 20년의 습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가끔 내가 정말 화가 나거나, 강영현이 도를 넘는 장난을 칠 때면 나도 모르게 옛날 습관이 튀어나오곤 했다.
"야. 강영현."
그 짧은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180cm가 넘는 대형견 같은 강영현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다.
"어... 어? ㅇㅇ아, 아니 자기야. 왜, 왜 성을 붙여서 불러? 나 뭐 잘못했어? 아까 젤리 몰래 뺏어 먹은 거 때문에 그래?"
눈치를 보며 쩔쩔매는 그의 모습에 나는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만다. 예전엔 '야!'라고 하면 '왜 임마!'라고 받아치던 녀석이, 이제는 내 화난 목소리 한 번에 세상 무너진 표정을 짓는 게 묘하게 설레고 귀여웠다.
연애를 하며 새삼스럽게 깨닫는 사실 중 하나는, 강영현이 지난 20년 동안 얼마나 철저하게 나에게 맞춰왔느냐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늘 함께 밥을 먹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거절한 적이 없었다. 내가 매운 것을 좋아하면 그는 딸꾹질을 참아가며 물을 들이켰고, 내가 단것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싫은 내색 없이 옆에서 묵묵히 아메리카노만 마셨다.
"영현아, 넌 왜 항상 내가 먹자는 것만 먹어? 너 먹고 싶은 거 말해도 되는데." "나? 난 자기가 맛있게 먹는 거 보는 게 제일 맛있어. 그리고 너 배고프면 예민해지잖아. 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장난스럽게 넘기지만, 이제는 안다. 그게 단순한 '평화 주의'가 아니라 20년 동안 쌓아온 지독한 짝사랑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내가 못 먹는 음식은 귀신같이 골라내 내 앞접시에서 치워주고, 내가 많이 먹어도 "복스럽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남자. 친구였을 땐 당연했던 그 배려들이 연인이 된 지금은 매 순간 심장을 찌릿하게 만드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금요일 저녁, 마포의 한 조용한 이자카야. 우리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직장 동료들인 박 대리님과 최 사원을 다시 만났다. 이제는 제법 친해진 네 사람은 앉자마자 시원한 생맥주부터 들이켰다.
"어머, 두 분. 두 달 사이에 더 깨가 쏟아지시네요? 김 대리님 얼굴이 아주 폈어." 박 대리님이 기분 좋게 웃으며 안주를 골랐다.
"말도 마세요. 강 대리님이 아주 김 대리님 상전 모시듯 하잖아요. 우리 팀에서는 상남자인 척하면서, 카톡만 오면 입꼬리가 귀에 걸려요." 최 사원의 폭로에 강영현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며 내 손을 식탁 아래서 꽉 쥐었다.
"자자, 축하는 여기까지 하고. 그래서, 저번에 말씀하신 '광진구 작전'은 어떻게 됐어요? 부모님들 반응 어때요?"
"하아... 말도 마세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지난번 '딸꾹질 대참사'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멜로 눈빛이 채무 관계의 눈빛으로 오해받은 이야기부터, 결정적인 순간에 터진 강영현의 매운 파김치 딸꾹질 사건까지.
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박 대리님과 최 사원은 테이블을 치며 자지러졌다.
"아하하학! 강 대리님, 진짜 예능 신이 도우셨네! 딸꾹질 때문에 고백을 못 했다고요?" "어머니들은 진짜 꿈에도 모르시는구나. 20년 우정이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여러분."
강영현은 억울한 듯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더니 하소연했다. "아니, 진짜 분위기 좋았거든요? 근데 그 파김치가 그렇게 매울 줄 누가 알았겠냐고요. 부모님들은 제가 몸이 어디 아픈 줄 알고 걱정만 하시다 끝났어요."
"안 되겠네. 두 분, 너무 정석대로 가려니까 안 되는 거예요." 박 대리님이 잔을 내려놓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작전 지시에 나섰다.
"어머니들은 두 분을 그냥 '쌍둥이 남매' 정도로 보고 계신 거잖아요. 그 프레임을 깨려면 아주 대담한 게 필요해요. 예를 들면, 아예 결혼 날짜부터 잡고 통보를 하든지!" "에이, 대리님. 그건 너무 세고요. 제 생각엔 이겁니다." 최 사원이 거들었다.
"정식으로 정장을 입고, 꽃다발이랑 선물을 제대로 준비해서 각 잡고 방문하세요. '놀러 왔습니다'가 아니라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라는 아우라를 풍겨야죠. 그리고 영현 대리님, 그때는 절대 파김치 근처에도 가지 마시고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박 대리님이 눈을 반짝이며 덧붙였다. "부모님 앞에서 보란 듯이 입맞춤이라도 한 번 하세요. 그럼 '어머, 얘네가 미쳤나 봐!' 하시다가도 '아, 진짜구나' 하실걸요?"
그들의 대담한 제안에 나와 강영현은 마주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부모님 앞에서 키스라니. 상상만으로도 딸꾹질이 다시 날 것 같았지만, 어쩌면 저런 극약 처방만이 20년 우정의 벽을 허물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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