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y DayFICTION
‹ 최애의 온도 · 회차 목록
EPISODE 15

비밀 공유자들과의 저녁 식사

댓글

금요일 저녁, 마포의 한 고깃집. 오늘은 우리의 비밀을 아는 유이한 두 사람, 박 대리님과 최 사원을 초대했다.

"자, 박 대리님. 여기 고기 진짜 맛있어요. 많이 드세요." 강영현이 능숙하게 고기를 구우며 접대에 나섰다. 평소 회사에서는 칼 같은 강 대리가 이렇게 싹싹하게 굴자 최 사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리님, 진짜 적응 안 됩니다. 저번 주엔 오타 하나 냈다고 저를 잡아먹을 듯이 보시더니, 지금은 꿀이 뚝뚝 떨어지시네요?" "최 사원, 비밀 지켜주느라 고생하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고기 타니까 빨리 먹어."

강영현은 츤데레처럼 최 사원의 접시에 고기를 툭 놓아주면서도, 내 앞접시에는 정성스럽게 익은 고기를 예쁘게 정렬해 주었다.

"어머, 강 대리님. 이렇게 비싼 고기를 사주시다니. 비밀 유지 서약서라도 써드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박 대리님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소맥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서약서까지야… 그냥 회사 근처에서 마주쳐도 모른 척해주시고, 가끔 제가 너무 챙겨줘도 '그러려니' 해주시면 됩니다." 강영현은 뻔뻔하게 말하며 노릇하게 익은 고기 한 점을 아주 자연스럽게 또 내 앞접시에 놓아주었다.

고기가 익어갈수록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사회적 체면 뒤에 숨겨두었던 직장인들의 피맺힌 절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박 대리님. 우리 팀장님은 왜 자꾸 배너 문구에 '자극적이면서도 고급스럽고, 심플하면서도 화려하게'를 넣으라는 걸까요?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조합입니까?" 내가 울분을 토하자 박 대리님이 내 손을 맞잡으며 공감했다. "말도 마, 김 대리. 저번에 그 시안도 그래. 폰트는 굴림체인데 힙하게 만들어보래. 힙한 굴림체가 이 세상에 어디 있어!"

맞은편에서는 강영현이 최 사원과 함께 해외영업팀의 고충을 성토 중이었다. "최 사원, 너도 봤지? 그 독일 바이어 놈들. 시차 생각 안 하고 밤 11시에 줌 미팅 잡는 거. 내가 그때 잠옷 바지 입고 위에만 셔츠 걸치고 카메라 켰다가, 일어날 뻔해서 얼마나 식은땀 흘렸는지 알아?" "대리님, 그때 제가 뒤에서 배경 가림막 들고 있었던 거 잊으셨습니까? 저 팔 빠지는 줄 알았다고요."

다른 회사, 다른 직종이었지만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K-직장인의 애환은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강영현은 투덜거리면서도 내 술잔이 비지 않게 체크하고, 내가 쌈을 싸 먹으려 하면 깻잎을 미리 떼어주는 섬세함을 잊지 않았다.

"와… 강 대리님 진짜 대단하시네요. 회사에서는 완전 얼음 송곳 같은데, 김 대리님 앞에서는 그냥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네." 최 사원의 감탄 섞인 놀림에 강영현은 쑥스러워하기는커녕 내 어깨에 팔을 턱 걸쳤다. "아이스크림이라니. 난 설탕물이지. 안 그래, 자기야?" "아… 고기 좀 조용히 먹자, 진짜!" 내가 민망해서 그의 옆구리를 찌르자, 그는 "아야!" 하며 엄살을 부리면서도 입가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저기, 두 분. 저희 아직 식사 안 끝났거든요? 자꾸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최 사원이 억울하다는 듯 고기를 씹으며 항의하자, 강영현이 낄낄거리며 벨을 눌렀다. "죄송합니다. 여기 육회 한 접시 추가요! 자, 이걸로 눈 감아주세요."

술기운이 오르자 박 대리님과 최 사원 사이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더니, 대학 동문이라는 공통점에 직장인이라는 유대감이 더해져 둘이서 꽤나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머, 최 사원님도 그 교수님 수업 들으셨어요? 완전 학점 짜기로 유명하셨는데!" "맞아요! 저 그때 재수강했다니까요. 대리님도 혹시 그때…"

둘이 머리를 맞대고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며, 나와 강영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잔을 부딪쳤다.

밤 11시 30분. 얼근하게 취기가 오른 네 사람이 식당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가 시원하게 뺨을 스쳤다.

"저희는 이쪽으로 가서 택시 탈게요. 두 분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박 대리님과 최 사원을 택시에 먼저 태워 보낸 후, 우리는 대로변으로 나와 빈 택시를 잡았다. 술기운 때문인지, 밤공기 때문인지 강영현의 눈빛이 평소보다 훨씬 깊어져 있었다.

"하아, 오늘 진짜 속 시원하다. 그동안 아는 척도 못 하고 얼마나 답답했는지 알아?" 택시 뒷자리에 올라타자마자, 강영현이 내 손을 덥석 잡아 자기 허벅지 위로 올렸다. 어두운 차 안, 창밖으로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이 그의 옆얼굴을 규칙적으로 비추고 지나갔다.

"야, 기사님 계시잖아." "뭐 어때, 손만 잡는 건데."

그는 내 손가락 사이사이로 자신의 손가락을 밀어 넣어 단단히 깍지를 꼈다. 택시가 커브를 돌 때마다 어깨가 맞닿았고, 그의 몸에서 배어 나오는 옅은 술 향기와 비누향 향수가 좁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강영현은 내 어깨에 머리를 툭 기대며 낮게 속삭였다. "자기야. 오늘 고생 많았어. 내일은 하루 종일 집에서 나랑만 있자.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고 나만 보게."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낮 동안의 '강 대리님'은 온데간데없고, 내 어깨에 기대어 어리광을 부리는 내 남자가 여기 있었다. 덜컹거리는 택시 안에서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온기를 나눴다. 20년의 세월을 돌아 마주 잡은 이 손이, 오늘 밤은 유난히 더 뜨거웠다.

이 회차의 댓글

이름과 비밀번호로 남기는 감상. 수정하거나 삭제할 때 같은 비밀번호가 필요해요.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이름과 댓글은 공개됩니다. 비밀번호는 다른 곳에서 쓰는 것과 다르게 정해 주세요.

기존 소설 화면으로 보기 ↗

이야기 속 내 이름

한글 이름을 입력하면 조사가 함께 바뀝니다. 이 기기에만 저장돼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