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8시 15분. 여의도와 마포를 잇는 마포대교 위에는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바쁜 발걸음이 가득했다. 나 역시 그 인파 속에서 무선 이어폰을 꽂고 걷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익숙하고 묵직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내 어깨 위로 커다란 손이 툭 내려앉았다.
"김 대리님, 출근길이 아주 정열적이시네."
고개를 돌리니 칼 같은 수트 차림에 서류 가방을 든 강영현이 서 있었다. 주말의 그 헐렁한 티셔츠 차림은 온데간데없고, 앞머리를 넘겨 이마를 드러낸 완벽한 해외영업팀 대리의 모습이었다.
"어, 강 대리님. 마침 잘 만났네요."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란히 걸었다. 하지만 강영현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내 새끼손가락을 슬쩍 걸어 당겼다. 0.5초 남짓한 짧은 접촉이었지만, 손끝에서 시작된 전율이 온몸으로 번졌다.
"오늘 점심은 뭐 먹어?" "팀 회식. 너는?" "나도 바이어 미팅. 아, 점심에 얼굴 보고 싶었는데 아쉽네."
그가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내 귓가를 간지럽혔다. 업무 모드로 무장한 그의 차가운 외형과, 나에게만 건네는 이 다정한 말의 간극. 그 팽팽한 텐션이야말로 우리가 즐기는 연애의 가장 달콤한 조미료였다.
점심시간, 커피를 사러 여의도 광장으로 나갔다가 멀리서 거래처 사람들과 걸어오는 강영현을 발견했다. 그는 무언가 열정적으로 설명하며 서류를 가리키고 있었다. 일에 집중한 그의 표정은 유독 날카롭고 섹시했다.
내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그때, 그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돌려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는 멈추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지만, 나를 향한 시선만큼은 끈질기게 거두지 않았다. 넥타이를 살짝 고쳐 매는 그의 손동작이 마치 나에게 보내는 은밀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찰나의 순간, 그의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가 스쳤다.
"김 대리님, 아는 분이에요? 왜 저분을 그렇게 뚫어지게 봐요?" 동료의 물음에 나는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아, 아니요. 그냥 수트 핏이 좋으셔서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심장은 이미 100미터 달리기를 한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공적인 장소에서 섞이는 사적인 시선은, 어떤 스킨십보다도 더 아찔하게 신경을 자극했다.
야근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려는데, 강영현에게서 톡이 왔다. [자기야, 나 지금 너네 집 앞이야. 올라가도 돼?]
비번을 누르고 들어온 그는 아직 넥타이도 풀지 않은 차림이었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그는 나를 벽으로 몰아넣고는 내 어깨에 얼굴을 푹 묻었다. 그의 몸에서 서늘한 밤공기와 옅은 향수 냄새, 그리고 고된 하루의 피로가 섞여 났다.
"아... 진짜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네."
그의 낮은 음성이 내 쇄골 근처에서 울렸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내려다보았다. 안경 너머로 비치는 그의 눈동자가 평소보다 훨씬 깊고 짙었다.
"강영현, 너 술 마셨어?" "아니, 너한테 취했나 봐."
그는 유치한 대사를 뱉으며 피식 웃더니, 이내 내 허리를 감싸 안고 입을 맞춰왔다. 낮 동안의 '강 대리님'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직 나만을 갈구하는,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한 남자의 뜨거운 숨결만이 방 안의 온도를 빠르게 끌어올렸다.
우리는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편의점에서 사 온 캔커피를 나눠 마셨다. TV에서는 뉴스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우리의 신경은 서로의 살결이 맞닿은 부분에 곤두서 있었다.
강영현은 내 손을 가져다가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만지작거렸다. "우리, 진짜 연애하는 거 맞지." "새삼스럽게 왜 이래." "그냥. 가끔 꿈같아서. 20년 동안 '야' 소리만 하던 네가 내 품에 있다는 게."
그는 내 손등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닿는 곳마다 불씨가 지펴지는 기분이었다. 친구였을 땐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동무를 하고 장난을 쳤는데, 연인이 된 지금은 스치는 옷깃조차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익숙함이라는 기반 위에 쌓아 올린 낯선 설렘.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랑이라는 필터를 끼운 강영현은 내가 알던 그 소년이 아니었다. 그는 훨씬 더 짙고, 훨씬 더 위험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어느덧 자정이 넘은 시간. 강영현은 돌아가야 했지만, 현관문 앞에서 우리의 발걸음은 다시 한번 멈췄다. 그는 신발을 신다 말고 내 손을 잡아당겨 자기 품으로 훅 끌어당겼다.
"나 진짜 가기 싫다." "내일 아침에 또 마포대교에서 만날 거잖아." "그거랑 이거랑 같냐. 너 안고 자고 싶은데."
그는 내 목덜미에 코를 박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내 심장 박동이 그의 가슴팍에 고스란히 전해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강영현은 나를 조금 더 꽉 껴안으며 내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내일은 우리 집으로 퇴근해. 내가 맛있는 거 해놓을 테니까."
그의 제안은 단순한 식사 초대 그 이상으로 들렸다. 그는 내 입술에 짧고 진하게 도장을 찍듯 입을 맞추고는 겨우 나를 놓아주었다. 닫히는 현관문 너머로 그의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나는 뜨겁게 달아오른 뺨을 감싼 채 한참을 서 있었다. 20년 지기 친구와의 연애는, 매일 밤 나를 잠 못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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