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y Day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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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1

얼굴에 '연애 중'이라고 쓰여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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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리. 요즘 뭐 좋은 일 있어?"

오후 3시.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던 내 등 뒤로 마케팅팀 박 대리님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들고 있던 머그잔을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네? 아, 아니요! 아무 일도 없는데요?!" "아닌데? 요새 맨날 핸드폰 보면서 실실 웃고, 피부도 엄청 반질반질해졌어. 저번 주부터 완전 얼굴에 형광등 켜둔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봐. 연애하지?"

박 대리님의 날카로운 촉에 나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굳이 회사 사람들에게 개인사를 털어놓고 '누구냐, 뭐 하는 사람이냐' 하는 질문 세례를 받고 싶지 않았다. 특히 그 상대가 '20년 지기 소꿉친구'라면 설명하기가 두 배는 더 피곤해질 게 뻔했다.

"에이~ 무슨 연애예요! 저 요새 피부과 끊어서 그래요. 돈의 맛이 좋긴 하더라고요, 하하하!" "진짜? 아닌 것 같은데. 아까 보니까 카톡 알림 올 때마다 광대가 승천하던데?" "광대요? 아, 그거! 제가 요새 보는 아이돌 직캠이 있어서요! 우리 밴드 애들이 어찌나 귀여운지!"

나는 필사적으로 손사래를 치며 아무 말이나 둘러댔다. 박 대리님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였지만, "하긴, 김 대리가 연애할 짬이 어딨어." 하며 탕비실을 빠져나갔다.

휴,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타이밍 좋게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지잉 울렸다.

강영현(내남친)
자기야. 오늘 저녁에 곱창 콜? 소주 한 잔 딱 당기는데.

'자기야'라는 세 글자를 보자마자, 방금 전까지 필사적으로 숨기려 했던 내 광대가 또다시 통제력을 잃고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 얼굴엔 이미 '나 연애 엄청 달달하게 하는 중'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다는 걸.

비슷한 시각, 길 건너편 마포의 해외영업팀 사무실에서도 비슷한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 대리님, 혹시 요새 주식 대박 나셨습니까?" "어? 아니. 다 파란불인데. 왜?"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타이핑을 하던 강영현에게 후배 최 사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대리님 요새 계속 콧노래 부르시잖아요. 아까 회의 때 부장님이 실적 까먹었다고 엄청 화내셨는데, 대리님 혼자 입꼬리 씰룩거리시길래 저희 다 엄청 쫄았거든요. 혹시 실성하신 건가 해서…" "내가? 콧노래를 불렀다고? 큭."

강영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작게 헛웃음을 쳤다. 평소 일할 때만큼은 칼 같고 시니컬하기로 유명한 그였다. 그런데 최근 일주일 사이, 그의 책상 위엔 전에 없던 달달한 젤리 봉지가 놓여 있었고, 핸드폰을 확인할 때마다 묘하게 눈꼬리가 휘어지는 빈도가 잦아졌다.

"대리님, 솔직히 말씀해 보십쇼. 연애하시죠?" "무슨 연애야. 일이나 해라. 이번 달 실적 못 채우면 얄짤없는 거 알지?"

강영현은 짐짓 엄한 목소리로 후배를 타박하며 펜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귓바퀴는 살짝 붉어져 있었다. 책상 아래, 그의 핸드폰 화면에는 방금 전 내가 보낸 답장이 떠 있었다.

곱창 완전 콜!! 대신 오늘 볶음밥은 자기가 쏴라~ 하트하트

그 치명적인 애교 텍스트를 보고 어떻게 시니컬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강영현은 헛기침을 하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내렸지만, 이미 팀원들 사이에서는 '얼음장 강 대리님이 봄을 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었다.

금요일 점심시간. 우리 회사와 강영현네 회사 딱 중간에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오후에 외근이 있어 일찍 점심을 먹고 카페에 앉아있는데, 점심을 대충 때운 강영현이 내 얼굴을 보겠다며 쪼르르 달려왔다. 우리는 구석진 소파 자리에 나란히 앉아 짧은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자기야, 입에 크림 묻었어." "어? 어디?" "여기. 아유, 칠칠맞기는. 먹여줘야 되나."

강영현이 다정하게 웃으며 휴지로 내 입가를 톡톡 닦아주었다. 평소라면 냅킨을 통째로 얼굴에 던지며 "네가 닦아라 돼지야" 했을 그가, 다정하게 내 뺨을 감싸 쥐고 눈을 맞추는 모습. 우리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착각에 빠져 완벽한 그들만의 세상에 심취해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어머! 김 대리님?" "어라? 강 대리님 아니십니까?!"

우리 테이블 바로 앞. 점심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사러 온 우리 마케팅팀 박 대리님과, 하필 그 옆에서 같이 주문을 기다리던 (알고 보니 대학 동문이었다는) 해외영업팀 최 사원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나와 강영현은 마치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양옆으로 1미터는 튕겨져 나갔다.

"두, 두 분 아는 사이셨어요?! 아니, 방금… 얼굴을 쓰다듬으신 것 같은데…?" "게다가 방금 강 대리님이 '자기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박 대리님과 최 사원의 눈이 왕방울만해졌다. 카페 안의 고요한 공기를 찢는 그들의 외침에, 나와 강영현의 머릿속에는 동시에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들켰다. 완벽하게, 아주 달달하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아, 아니에요!! 자기라니요! 하, 하하하!"

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손을 마구 내저었다.

"이 자식이 아까 저한테 '자기야'가 아니라… 어… '자기장'!! 그래! 너 왜 자꾸 나한테 자기장처럼 들러붙냐고 욕한 거예요! 그치, 영현아?!" "어? 어!! 맞습니다! 제가 이 웬수 같은 자식한테, 어? 아주 자석같이 들러붙어서 꼴 보기 싫다고 얼굴을 밀어내고 있었거든요! 야! 일로 와!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라니까!"

강영현도 내 억지스러운 변명에 억지로 장단을 맞추며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평소의 20년 지기 '불알친구 모드'를 보여주겠다며 내 어깨를 거칠게 헤드락 걸듯 확 끌어당겼다.

"아얏!" "어, 헉! 미안미안! 아파? 목 안 꺾였어?!"

하지만 본능은 거짓말을 못 했다. 헤드락을 걸려던 그의 팔은 내 목에 닿기도 전에 섬세하게 힘을 풀었고, 내가 작게 신음을 내자마자 사색이 되어 내 목덜미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아닌가.

"야… 안 아파… 살살해, 좀……." "미, 미안. 내가 힘 조절을 못 해서… 괜찮아?"

서로 쌍욕을 하며 싸우는 척하려던 우리의 계획은 3초 만에 무너졌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내 목덜미를 쓰다듬는 강영현과, 그런 그를 올려다보며 얼굴이 새빨개진 나. 우리는 누가 봐도 금방이라도 뽀뽀를 할 것 같은 갓 백일 된 커플 그 자체였다.

우리의 어설픈 할리우드 액션을 가만히 지켜보던 박 대리님과 최 사원이,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 작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저기, 김 대리님. 강 대리님." "……네." "아주 눈에서 양봉업을 하시네요. 피부과 끊었다더니, 피부과 이름이 '강영현 의원'이었나 봐요?" "대리님, 실적 까먹고도 웃으시던 이유가 이거였군요. 축하드립니다, 아주 예쁜 사랑 하시네요."

두 사람의 뼈 때리는 놀림에, 나와 강영현은 그제야 우리 사이에 흐르고 있는 이 끈적한 공기를 숨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강영현이 못 말리겠다는 듯 실소를 터뜨리며, 어색하게 허공을 맴돌던 내 손을 덥석 잡아당겨 깍지를 꼈다.

"네, 뭐. 보시다시피. 들킨 김에 인사드리죠. 제 여자친구입니다."

어차피 숨길 수 없는 핑크빛 아우라였다면, 차라리 뻔뻔해지는 게 나았다.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인 내 손을 꽉 쥐어주는 그의 커다란 손바닥이,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든든하게 느껴지는 점심시간이었다.

"저기, 박 대리님, 최 사원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희 연애하는 거, 회사에는 절대 비밀로 해주세요."

카페 구석 자리. 나와 강영현은 마치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두 사람 앞에서 손을 싹싹 빌고 있었다. 사내 연애는 아니지만, 굳이 회사에 입소문이 나서 '여의도 김 대리랑 마포 강 대리랑 20년 소꿉친구라더니 결국 눈 맞았대~' 하는 가십거리가 되고 싶진 않았다.

박 대리님이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김 대리가 그렇게 원한다면야 입 무겁게 지켜줄게. 대신 앞으로 회식 때 강 대리님이 법카 말고 개인 카드로 커피 한 번 쏘는 걸로?" "아유, 커피가 뭡니까! 제가 소고기라도 쏘겠습니다!" 강영현이 넉살 좋게 받아치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그때, 묵묵히 있던 최 사원이 박 대리님을 힐끔 보며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저… 대리님. 그럼 저희 둘만 아는 비밀이 생긴 거니까… 앞으로 종종 네 명이서 술자리, 어떠십니까?" "어머, 최 사원님 술 잘해요? 좋아요. 김 대리네 커플 구경하는 것도 쏠쏠하겠네."

나와 강영현은 마주 보며 눈을 끔벅였다. 우리 비밀 지켜달라고 만난 자리인데, 저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 듯한 느낌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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