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2주 차 화요일.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나는 결국 카톡창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돌았나 진짜……."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어제 '여친 아침 카톡'을 복붙하더니, 오늘은 대체 어디서 2000년대 인터넷 소설 대사를 긁어온 게 분명했다. 참다못한 나는 타자기를 부술 듯이 답장을 쳤다.
1분 뒤, '읽음' 표시가 사라지자마자 전화가 걸려 왔다.
"야! 너는 남친이 아침부터 스윗하게 보내주면 좀, 어? 감동도 하고 그래야지!" "스윗은 무슨, 당뇨 걸릴 것 같거든? 차라리 욕을 해. 그게 덜 어색해." "아씨… 다른 커플들은 다 이렇게 하던데. 그럼 뭐라고 해. 옛날처럼 '일어났냐 돼지야' 이럴 수도 없잖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강영현의 목소리에는 나름대로 '완벽한 남자친구'가 되고 싶어 노력했는데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그냥 평소처럼 해. 밥 먹었냐, 비 온다 우산 챙겨라. 이런 거." "그건 너무 친구 같잖아." "말투가 친구 같아도, 이제 친구 아니잖아 우리."
내 대답에 수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출근길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그의 작고 낮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알았어. 명치 맞기 싫으니까 아기 고양이는 압수. 대신 내 방식대로 한다."
그리고 뚝 끊긴 전화. 10분 뒤, 회사 로비에 도착했을 때 그에게서 다시 카톡이 왔다.
익숙하고 퉁명스러운 말투 끝에, 생전 안 쓰던 빨간색 하트 이모티콘 하나. 그 언밸런스한 조합에 나는 결국 로비 한가운데서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가슴에 품었다.
강영현의 '내 방식대로'는 생각보다 치명적이었다.
원래 우리의 카톡은 용건만 간단히, 혹은 서로를 향한 가차 없는 디스전이 전부였다. 'ㅇㅇ', '미친', 'ㅗ' 같은 자음과 모음이 난무하던 황량한 대화창에, 어느 날부터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수요일 오후 3시, 한창 당이 떨어져 모니터와 씨름하고 있을 때였다.
참고로 강영현의 이름은 어제 그가 강제로 내 핸드폰을 빼앗아 '웬수'에서 '내남친'으로 바꿔놓은 상태였다. 평소 같으면 'ㅇㅇ 빨리 사 와' 하고 끝났을 대화였다.
"...뭐야 이건."
나는 모니터 뒤로 고개를 숙이고 입을 틀어막았다. 강영현은 원래 기본 이모티콘조차 잘 안 쓰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저 잔망스러운 곰돌이는 대체 언제 결제한 걸까? 심지어 하트를 날리고 있다.
텍스트는 툭툭 던지는 예전 강영현 그대로인데, 그사이에 교묘하게 섞여 있는 다정함이 자꾸만 심장을 공격했다. 친구 시절의 편안함이라는 튼튼한 뼈대 위에, 연인이라는 설레는 살이 붙기 시작한 기분이었다. 나는 입꼬리가 귀에 걸린 채로 지갑을 챙겨 로비로 뛰어 내려갔다.
목요일. 온라인 마케팅팀의 신제품 기획안 마감일이라 나는 하루 종일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빴다.
강영현도 해외 바이어 화상 회의가 겹쳐 정신이 없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바쁜 날엔 서로 하루 종일 연락 한 통 안 하는 게 당연했다. '바쁘면 알아서 살겠지'가 우리의 20년 지기 철칙이었으니까.
하지만 연애 2주 차의 우리는 조금 달랐다.
오후 4시. 회의실에서 팀장님에게 거하게 털리고 나와, 책상에 엎어져 무의식적으로 카톡을 보냈다.
보내놓고 바로 기획안을 수정하려 마우스를 쥐었는데, 10초도 지나지 않아 핸드폰이 지잉 울렸다.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겉으로는 틱틱거리며 놀리는 텍스트였지만, 화상 회의 중에 내 넋두리를 들어주려 몰래 폰을 잡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빤히 그려졌다.
투박한 텍스트에 가려져 몰랐다. 친구였을 땐 바쁘다는 핑계로 몇 시간씩 방치했던 내 카톡에, 이제는 1분을 넘기지 않고 숫자 '1'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텍스트의 온도 자체는 예전처럼 편안해졌을지 몰라도, 나를 향해 열려있는 그의 신경은 한순간도 끊긴 적이 없었다.
금요일 밤 11시 30분. 평일의 피로가 몰려와 침대에 누워 팩을 붙이고 있는데 카톡이 울렸다.
평소 같았으면 'ㅇㅇ 잔다 건들지 마'라고 치고 핸드폰을 던져뒀을 텐데, 나는 팩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타자를 쳤다.
잠시 후, 화면이 통화 연결 화면으로 바뀌었다. 전화를 받자, 빗소리 같은 약간의 백색소음과 함께 강영현의 낮고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곤하지." "어… 엄청. 이번 주 진짜 길었다." "고생했어."
이불을 덮고 눈을 감은 채 듣는 그의 목소리는, 낮에 넥타이를 매고 깐족거리던 강영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살짝 잠겨있는,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마치 내 방 침대 머리맡에 수면등을 켜둔 것처럼 포근했다.
우리는 특별한 주제 없이 그날 점심으로 먹은 맛없는 제육볶음 이야기, 주말에 볼 넷플릭스 시리즈 이야기 따위를 두런두런 나누었다. 무겁지도, 오그라들지도 않는 편안한 대화.
"야, 김ㅇㅇ." "응." "친구일 때는 밤에 이렇게 전화 끊기 싫다는 생각 해본 적 없는데."
그의 솔직한 직구에 나는 이불을 입까지 끌어올리며 작게 웃었다.
"나도 그래." "내일은 데이트하자. 맛있는 거 먹이게 예쁘게 입고 나와."
억지로 지어낸 '아기 고양이' 같은 멘트가 없어도 충분했다. "예쁘게 입고 나와"라는 덤덤한 그 한마디가, 수백 줄의 로맨스 소설보다 내 심장을 훨씬 더 요동치게 만들었으니까.
우리의 카톡과 통화는 그렇게 20년의 털털함에, 2주 차 연인의 달콤함을 절묘하게 섞어가며 완벽한 온도를 찾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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