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y Day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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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5

카톡창에 불어닥친 어색한 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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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7시 30분. 지옥철에 몸을 싣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징징 울렸다. 감기지 않은 눈을 억지로 비비며 화면을 켰다. 당연히 '야, 일어났냐. 지각 안 했냐' 류의 시비일 줄 알았던 화면에, 믿을 수 없는 문장이 떠 있었다.

강영현(웬수)
좋은 아침. 출근 잘하고 있어?

"...헉."

순간 숨을 잘못 들이마셔서 헛기침이 터져 나왔다. 출근길 지하철 한복판에서 미친 사람처럼 기침을 해대며 나는 핸드폰 화면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좋은 아침'? 강영현 입에서 '좋은 아침'이라는 단어가 나오려면, 어제 술 먹고 필름이 끊겨서 길바닥에서 잤거나, 아니면 내 핸드폰이 해킹당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손가락이 허공에서 길을 잃고 덜덜 떨렸다. 뭐라고 답장해야 하지? '어, 너도 좋은 아침'이라고 보내기엔 내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사라질 것 같았다. 한참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고 있는데, 다시 카톡이 울렸다.

강영현(웬수)
아, 겁나 어색하네 진짜.
강영현(웬수)
야. 네가 하도 안 읽어서 내가 인터넷에 '여친 아침 카톡' 쳐서 복붙한 거잖아.

그제야 나는 참았던 실소를 터뜨렸다. 아침부터 넥타이를 매며 네이버에 '여친 아침 카톡'을 검색했을 해외영업팀 대리 강영현을 상상하니 웃겨서 미칠 지경이었다.

ㅋㅋㅋㅋㅋㅋ 미친놈아. 평소 하던 대로 해. 소름 돋아.
강영현(웬수)
그래도 명색이 1일 차 평일인데. 점심때 너네 회사 앞으로 갈게. 밥 먹자.

'여친', '1일 차'. 평범한 단어들이 강영현의 이름 옆에 붙으니 파괴력이 엄청났다. 나는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괜히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숨기기 위해 고개를 푹 숙여야만 했다.

점심시간. 온라인 마케팅팀 사람들과 밥을 먹으려던 걸 겨우 빠져나와 1층 로비로 내려갔다. 회전문 밖, 한 손에 커피 두 잔을 들고 서 있는 강영현이 보였다.

여전히 각 잡힌 수트 차림에 사원증을 목에 건 그는, 누가 봐도 '일 잘하는 회사원'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나를 발견하고 다가오는 그의 걸음걸이는 어딘가 모르게 삐걱거리고 있었다.

"어... 왔냐." "어. 너 점심시간 1시간밖에 안 되면서 여기까지 왜 와. 대충 먹고 쉬지." "데이트... 해야지."

그가 건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 들며 나는 풉, 하고 웃었다. 20년 동안 점심시간에 맞춰 서로의 회사 앞을 오간 게 수백 번은 될 텐데, '데이트'라는 명목이 붙으니 공기부터가 달랐다.

우리는 평소처럼 회사 뒷편에 있는 단골 돈까스 집으로 향했다. 늘 앉던 구석 자리에 마주 보고 앉았는데, 묘한 정적이 흘렀다. 예전 같으면 '내 돈가스 뺏어 먹으면 손목 날아간다'며 으르렁거렸을 텐데, 오늘은 강영현이 자기 접시에 있는 제일 큰 돈가스 조각을 썰어 내 밥 위에 살포시 얹어주는 것이 아닌가.

"너... 나 사육해?" "아니, 그냥. 너 마케팅 기획안 엎어졌다며. 많이 먹고 힘내라고. 그... 남친으로서."

남친. 그 단어를 뱉으며 강영현의 귀끝이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나는 그 돈가스를 차마 씹지도 못하고 입에 문 채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허공을 헤매던 그가, 무심코 손을 뻗어 내 입가로 가져왔다.

"입술에 소스 묻어..."

탁!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그의 손등을 찰싹 때려버렸다.

"앗, 미안! 나도 모르게 방어기제가..." "아씨, 진짜 김ㅇㅇ... 분위기 다 깨. 넌 나랑 스킨십할 때마다 아주 철벽을 쳐라?"

그가 억울하다는 듯 맞은 손등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투덜거리면서도 그의 입가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우리 사이의 식탁엔, 돈가스 소스 냄새 대신 간질간질하고 어설픈 초보 연인들의 공기가 가득 차 있었다.

오후 4시 15분. 쏟아지는 졸음과 배너 문구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1층 로비 카페로 내려왔다. 줄을 서서 주문을 기다리는데, 뒤에서 익숙한 체온이 훅 느껴지더니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박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연하게 맞지?"

깜짝 놀라 돌아보니,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강영현이 내 바로 뒤에 줄을 서 있었다.

"미쳤어? 네가 여길 왜 들어와!" "카페는 아무나 와도 되잖아. 나도 바이어 미팅 끝나고 목말라서 왔지."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몫까지 결제를 마치고는, 구석진 픽업대 근처 기둥 뒤로 나를 슬쩍 밀어 넣었다. 커다란 대리석 기둥 덕분에 카운터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딱 우리 둘만 들어갈 법한 좁은 틈새였다.

"너 진짜... 회사 마포잖아. 여의도까지 언제 온 거야?" "네가 오늘 하루 종일 내 카톡 안 읽길래."

영현이 한 걸음 더 밀착해왔다. 등 뒤는 차가운 대리석 기둥이었고, 앞은 뜨거운 강영현이었다. 주변에선 에스프레소 머신 돌아가는 소리와 직장인들의 웅성거림이 가득했지만, 이 0.5평 남짓한 공간만큼은 공기가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1분만 얼굴 보고 가려고.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네."

그가 낮게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손가락 끝이 귓볼에 살짝 스칠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의 시선이 내 눈을 지나 입술로, 그리고 다시 눈으로 느릿하게 옮겨갔다. 어젯밤 놀이터에서의 그 진득했던 키스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목울대도 기다렸다는 듯 크게 일렁였다.

"야, 여기 회사 사람..." "알아. 그러니까 더 미치겠네."

영현이 고개를 숙여 내 얼굴 가까이 다가온 순간이었다.

"어? 김 대리님! 여기서 뭐 하세요? 아메리카노 드시러 오셨어요?"

기둥 바로 너머에서 우리 팀 막내 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헉!"

나는 빛의 속도로 영현을 밀쳐내고 기둥 밖으로 튀어 나갔다. 영현은 태연하게 핸드폰을 꺼내 보는 척하며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아, 네!! 저, 저도 방금 주문했어요! 하하!" "어? 방금 옆에 계시던 분 되게 잘생기셨는데, 아시는 분이에요?" "아니! 그냥... 뭐 물어보시더라고! 카페 메뉴 뭐가 맛있냐고!"

영현은 그 와중에 들으라는 듯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유유히 회전문을 향해 걸어갔다. 내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강영현(웬수)
메뉴 물어보는 사람 치고는 너무 잘생기지 않았냐? 퇴근하고 5번 출구로 와.

밤 9시. 야근을 마치고 회사 로비로 나오자, 강영현이 5번 출구도 아닌 회사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 뭐야? 5번 출구로 오라며." "퇴근하고 넘어온 김에 여기까지 왔지. 여자친구 혼자 야근하는데 회사 앞까지는 와야지."

여자친구라는 단어가 아직도 입에 덜 붙었는지, 그는 괜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피곤한 하루였지만, 나를 보며 다정하게 웃어주는 그의 얼굴을 보니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우리는 나란히 밤거리를 걸어 내 자취방 앞에 도착했다. 평소 같으면 "잘 가라 돼지야" 하고 머리나 툭 치고 돌아섰을 텐데, 오늘은 현관문 앞에서 둘 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침묵이 흐르고, 서로의 신발 코만 내려다보기를 몇 분째.

"저기, 영현아." / "야, 김ㅇㅇ."

하필 동시에 입을 열었다.

"어, 너 먼저 말해." "아니, 뭐... 들어갈 거냐?" "응... 씻고 자야지."

강영현이 마른입술을 축이며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아까 카페에서 놓쳤던 타이밍을 다시 잡아보려는 듯, 그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나는 숨을 훅 들이마셨다.

눈을 감고 그의 입술이 닿기를 기다렸다. 1초, 2초... 그런데 입술이 아니라 코끝에 딱딱한 무언가가 부딪혔다.

"아얏!" / "아우!"

둘 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어설프게 고개를 각도를 맞추려다 그만 서로의 코와 이마를 냅다 박아버린 것이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파서 이마를 문지르고 있는데, 강영현이 결국 참지 못하고 빵 터져버렸다.

"아하하학! 아, 진짜! 김ㅇㅇ, 너 방금 나한테 헤딩했냐?!" "네가 고개를 이상하게 꺾었잖아! 무드라곤 하나도 없어 진짜!"

우리는 현관문 앞에서 서로의 이마를 부여잡고 배가 찢어지라 웃어댔다. 설레고 영화 같은 로맨틱한 키스는 아니었지만, 이마를 부딪치고 웃음을 터뜨리는 이 어설픔이, 우리의 20년 치 우정이 더해진 진짜 '연애'의 시작 같았다.

실컷 웃던 강영현이 웃음기를 거두고, 다시 한번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콩, 하고 가볍게 맞대었다.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올게. 늦잠 자지 마라."

그리고는 내 쪽으로 고개를 틀어, 내 볼에 쪽, 하고 짧고 경쾌하게 입을 맞췄다.

"잘 자, 내 여자친구."

얼굴을 붉힌 채 돌아서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현관문에 기대어 오랫동안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직은 뚝딱거리고 어설프지만, 우리의 평일 밤은 어느 때보다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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