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y Day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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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2

익숙함과 낯섦 사이의 온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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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눈을 떴다. 낯선 천장, 낯선 섬유유연제 냄새. 그리고 내 몸을 덮고 있는 지나치게 큰 차콜색 반팔 티셔츠.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으며 어젯밤의 기억이 필름 끊기듯 스쳐 지나갔다. 비, 택시, 강영현, 그리고 이 집. 나는 용수철처럼 침대에서 튀어 올랐다. 방문을 빼꼼 열고 거실로 나가자, 부엌 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깼냐?"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던 강영현이 고개를 돌렸다. 까치집을 한 머리에 헐렁한 트레이닝복 바지, 그리고 뿔테 안경. 회사 앞 로비에서 보았던 각 잡힌 수트 차림과는 정반대의, 내가 가장 잘 아는 편안한 강영현의 모습이었다.

"너... 나 어제 진상 부렸어?" "어. 아주 대단했지. 김부장님 성대모사 하면서 내 등짝을 어찌나 때리던지. 나 아침에 샤워하는데 등에서 피 나는 줄 알았다."

그가 낄낄거리며 식탁 위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북어국 두 그릇을 내려놓았다.

"해장이나 해. 아침부터 끓이느라 귀찮아 죽는 줄 알았네."

나는 민망함에 입술을 꾹 깨물며 식탁 맞은편에 앉았다.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한 입 떠먹었는데,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와... 너 요리 실력 늘었다?" "내가 너처럼 맨날 배달 음식만 먹는 줄 아냐. 자취 짬바가 있지."

그는 자리에 앉아 턱을 괸 채, 국물을 허겁지겁 떠먹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평소 같으면 '돼지같이 먹는다'며 놀렸을 텐데, 안경 너머로 나를 응시하는 그의 시선이 묘하게 차분했다.

아침 햇살이 비쳐 드는 식탁,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소꿉친구.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내 시선은 자꾸만 다른 곳으로 향했다. 젓가락을 쥐고 있는 길고 마디 굵은 손가락, 티셔츠 넥라인 위로 두드러진 쇄골, 그리고 무언가를 삼킬 때마다 움직이는 선명한 목젖.

늘 '머리 큰 초딩'이라고 놀려댔던 강영현이, 어느새 한 명의 완벽한 성인 남자가 되어 내 눈앞에 앉아 있었다.

"왜 그렇게 봐. 내 얼굴에 김 묻었어?" "어? 아, 아니! 그냥... 안경 낀 거 오랜만에 봐서."

내가 당황하며 시선을 피하자, 그가 피식 웃으며 손을 뻗어 내 입가로 가져왔다. 어제 고깃집에서처럼 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는 내 입가를 닦는 대신,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 밀었다.

"멍 때리지 말고 밥이나 빨리 먹어. 다 먹고 너네 집 가서 열쇠공 부르게."

다행이다. 평소의 강영현이다. 나는 애써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다시 숟가락질에 집중했다. 하지만 내 어깨 위로 툭 떨어지는 그의 시선은, 아침 내내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니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 1시. 내 자취방 앞 복도는 고요했다. 열쇠공 아저씨는 주말이라 차가 막혀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우리는 내 집 현관문 앞 복도에 나란히 기대어 섰다. 좁은 복도라 어깨가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였다. 그와의 사이에 흐르는 이 침묵이, 어제부터 자꾸만 텐션을 팽팽하게 당기는 것 같아 나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 맞다. 나 다음 주에 소개팅해."

정말 뜬금없는 소리였다. 심지어 소개팅 같은 건 잡혀 있지도 않았다. 그저 이 숨 막히는 어색함을 깨고, 다시 그를 헐뜯고 장난치는 '소꿉친구'의 포지션으로 돌아가고 싶어 던진 무리수였다. 평소 같으면 "네가? 얼굴값 못하고 차일 텐데 쯧쯧." 하고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강영현의 입에선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 순간, 나는 숨을 들이켰다. 허공을 향해 있던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해 천천히 내려앉았는데, 늘 입가에 걸려있던 장난기 어린 호선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서늘함마저 느껴지는 낯선 표정이었다.

"소개팅?"

그의 낮고 긁는 듯한 목소리가 복도에 낮게 울렸다.

"어... 어. 뭐, 우리 나이에 연애도 하고 그래야지. 너도 만날 일만 하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영현이 한 걸음 다가왔다. 현관문과 그의 어깨 사이에 내가 갇히는 꼴이 되었다. 그가 한 손을 들어 내 머리 옆 현관문에 짚었다. 훅 끼쳐오는 그의 비누향 향수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야... 왜 이래." "너, 내가 어제 상추 던지는 거까지 다 받아줬는데."

그가 고개를 숙여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여우처럼 길게 찢어진 눈매에 짙은 일렁임이 가득했다.

"이건 못 받아주겠다, 김ㅇㅇ." "무, 무슨 소리야. 장난치지 마..." "장난 같아?"

그의 다른 한 손이 내 손목을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쥐었다. 어젯밤 내 손목을 쥐었던 그 뜨거운 온기 그대로였다.

"나 스물아홉이야. 너랑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흙 파먹고 놀던 코흘리개 강영현 아니라고."

그의 엄지손가락이 내 손목 안쪽의 맥박이 뛰는 곳을 천천히 문질렀다. 내 심장 박동이 그의 손끝에 고스란히 전해질 만큼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내가 언제까지 네 옆에서 불알친구 노릇만 할 줄 알았어?"

도망칠 곳은 없었다. 20년 동안 견고하게 쌓아 올렸던 '친구'라는 이름의 벽이, 그의 낮고 짙은 목소리 단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강영현의 목소리가 좁은 복도를 빈틈없이 채웠다. 내 손목을 쥔 그의 손아귀는 단호했고,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에는 평소의 장난기 따위는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다. 심장이 귀 옆에서 뛰는 것처럼 시끄러웠다.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성대가 얼어붙은 듯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조금 더 가까워지려는 찰나였다.

"딩동- 4층입니다."

적막을 찢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기, 402호 열쇠 수리 부르신 분 맞습니꺼?"

철가방 같은 공구함을 든 수리공 아저씨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그 소리는 마치 내게 걸린 마법을 깨는 거대한 종소리 같았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나를 가두고 있던 강영현의 가슴을 세게 밀쳐냈다. 무방비 상태였던 그가 두어 걸음 뒤로 밀려났다.

"아, 네! 네네! 저예요! 여기요!"

나는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이며 수리공 아저씨 쪽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등 뒤로 강영현의 시선이 따갑게 꽂히는 게 느껴졌지만,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수리공 아저씨가 능숙한 솜씨로 현관문 손잡이를 뜯어내고 작업하는 동안, 복도에는 견디기 힘든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괜히 핸드폰 화면만 의미 없이 쓸어 넘겼고, 강영현은 벽에 기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 됐심더. 이제 비번 치고 들어가면 됩니더." "아, 감사합니다! 계좌번호 주시면 바로..." "됐어. 내가 보낼게. 아저씨 수고하셨습니다."

강영현이 내 말을 끊고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결제를 마쳤다. 아저씨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후, 다시 우리 둘만 남았다. 열린 현관문 틈으로 익숙한 내 집 냄새가 훅 끼쳐왔다.

"저기, 영현아. 그, 결제한 건 내가 이따가 뱅킹으로..." "……." "그리고 아까 너, 너 또 나한테 장난치려고! 하하, 진짜 미쳤냐? 넌 내가 아주 만만하지? 어우, 진짜 속을 뻔했네!"

나는 애써 허공에 손사래를 치며, 목소리를 한껏 끌어올려 웃었다. 우리의 20년 우정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패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이 어색하고 터질 것 같은 분위기를 무마하려면, 늘 그랬듯 씩씩하고 눈치 없는 척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내 억지웃음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강영현의 표정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상처받은 것 같기도, 화가 난 것 같기도 한 낯선 얼굴.

"어. 장난이야."

그의 입술 사이로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그렇게 사색이 돼서 도망칠 필요 없어."

그는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는 미련 없이 뒤를 돌았다. "월요일에 보자." 그 무심한 한마디만 복도에 남겨둔 채, 강영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버렸다.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무언가 아주 단단히 어긋났다는 걸 깨달았다.

강영현과 연락이 끊긴 지 꼬박 5일째였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 '야 지각 안 했냐'며 오던 톡도 없었다. 화요일 점심, '메뉴 추천 좀'이라며 오던 시답잖은 사진도 없었다. 수요일 저녁, '야근 시발'이라며 날아오던 쌍욕도 없었다.

단 한 번도 서로 연락을 며칠씩 안 하고 지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숨 쉬듯 서로의 일상을 공유해왔으니까. 나는 5분마다 한 번씩 카톡 창을 들여다보았지만, [강영현(웬수)]와의 대화창은 지난 토요일 오전에 멈춰 있었다.

'내가 먼저 선톡해볼까? 아냐, 뭐라고 해. 밥 먹었냐고? 미쳤어.'

책상에 머리를 쾅쾅 박고 있는 나를 보며, 옆자리 박 대리가 커피를 건네며 물었다.

"김 대리, 무슨 일 있어? 요새 계속 멍하네. 아, 맞다. 저번에 말한 그 소개팅, 이번 주 금요일 어때?" "네? 아... 소개팅이요."

사실 지난 주말, 강영현에게 던졌던 '소개팅'이라는 말은 완전한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 홧김에 박 대리에게 남는 사람 있으면 소개 좀 시켜달라고 졸랐던 게 하필 오늘 성사된 것이다. 나는 카톡 창의 강영현 이름을 한 번 노려보고는,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금요일 저녁 좋아요."

어차피 장난이었다고 치부해버린 마당에, 내가 진짜 소개팅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홧김에 저지른 일이었지만, 내심 강영현이 이 사실을 알고 다시 예전처럼 펄쩍 뛰며 나를 놀리러 와주기를 바라는 유치한 마음도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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