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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8

질투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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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지훈이 던진 폭탄 같은 한마디가 휩쓸고 지나간 뒤,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미세하게 달라져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3분 거리에 있는 편안한 동네 이웃이었다. 도운은 여전히 오후 3시쯤 슬리퍼를 끌고 커피를 사러 왔고, 여주는 여전히 샷을 팍팍 추가해 주었다.

하지만 그 3분짜리 짧은 대화 속에서 서로의 시선을 피하는 횟수가 늘었다거나, 커피를 건네받다 손끝이 살짝 스치기라도 하면 둘 다 흠칫 놀라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남자친구야?'

일곱 살짜리 꼬마의 티 없는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맴돌아 두 사람 모두 속앓이를 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평일 점심시간 무렵.

도운은 여주에게 줄 비타민 음료를 챙겨 들고 카페로 향했다.

"사장님, 저 왔습니데이."

도운이 쾌활하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카운터 앞에는 말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여주가 내민 영수증을 받으며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사장님, 이번에 새로 들어온 원두 진짜 향 좋던데요? 덕분에 저희 사무실 직원들 다 여기 단골 됐어요."

"아유, 감사합니다. 대리님이 자주 와주셔서 저야 좋죠."

여주도 눈웃음을 치며 화답했다. 남자는 단순히 커피만 사서 나가는 게 아니라, 여주의 손목에 찬 작은 팔찌를 가리키며 "그거 새로 사셨나 봐요? 잘 어울리네요." 하고 사적인 농담까지 던졌다. 여주 역시 기분 좋게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카페 문가에 멈춰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도운의 입매가 굳어졌다.

자신은 매일같이 슬리퍼를 끌고 와서 "샷 추가 무료 맞죠?" 하고 실없는 소리나 하는데, 저 남자는 멀끔하게 차려입고 와서는 다정하게 칭찬을 건네고 있었다. 게다가 여주가 저렇게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모습이라니.

'카페 단골들은 정이 엄청 많네.'

도운은 속으로 입맛을 쩝 다시며 쥐고 있던 비타민 음료병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남자가 커피를 들고 카페를 나가고 나서야 도운이 카운터로 다가갔다.

"어? 원장님. 오셨어요? 아까부터 서 계셨어요?"

"예... 뭐. 방금 그분, 단골이신가 봅니다."

도운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낮았다. 여주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기 앞 건물 회사 다니시는 대리님인데 매일 오시거든요. 엄청 친절하세요."

'친절'이라는 단어에 도운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아, 예. 사장님 인기가 많으시네."

"네? 무슨 인기가요. 그냥 커피가 맛있어서 오시는 거죠."

"글쎄예. 커피만 맛있다고 저렇게 눈웃음 살살 치면서 팔찌 예쁘다는 소리까지 할까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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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운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삐딱한 말이 툭 튀어나왔다. 뱉어놓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여주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도운을 빤히 쳐다보았다.

"원장님, 지금... 혹시 질투하세요?"

여주의 돌직구에 도운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지, 질투는 무슨! 그냥, 동네 장사하는 사람끼리 단골 관리 잘하시라고..."

도운이 말을 더듬으며 변명하려 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옹색한 변명이었다. 도운의 말끝이 흐려졌고, 귀끝은 순식간에 터질 듯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평소라면 말실수를 해도 허허 웃어넘겼을 텐데, 지금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여주는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당황하며 시선을 피하는 도운을 보자 여주의 심장도 덩달아 쿵, 하고 요동쳤다.

"아, 나, 나는 입시반 애들 올 시간 다 돼서 가보겠습니다. 이거, 비타민 마시고 힘내시고요."

결국 견디지 못한 도운이 카운터 위에 쥐고 있던 비타민 음료를 툭 내려놓고는 도망치듯 카페를 빠져나갔다. 딸랑, 하는 종소리가 유난히 크게 카페 안을 울렸다. 남겨진 여주는 도운이 두고 간 비타민 음료병을 매만지며 작게 웃었다. 그 삐딱한 말이 밉기보단 묘하게 간질거렸다.

며칠 뒤 금요일 저녁.

이번엔 여주 쪽에서 비슷한 감정을 겪을 차례였다.

여주는 모처럼 일찍 카페 마감을 하고 근처 작은 라이브 클럽을 찾았다. 며칠 전 도운이 지나가듯 "이번 주 금요일에 저희 형들이랑 오랜만에 클럽에서 합주하거든요. 시간 되면 구경 오십쇼." 하고 던진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해 둔 탓이었다. 질투하던 날 이후로 왠지 모르게 어색해진 기류도 좀 풀어볼 겸이었다.

클럽 안은 꽤 북적였다. 무대 위에서는 이제 막 도운의 밴드가 세팅을 마치고 있었다. 여주는 눈에 띄지 않게 뒤쪽 바에 자리를 잡고 무대를 지켜보았다.

무대 위의 도운은 역시나 여유롭고 멋있었다. 드럼 스틱을 돌리며 베이스를 멘 영현과 눈을 맞추고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메인 보컬이자 기타를 맡은 성진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 뒤로, 도운의 묵직한 드럼 비트가 클럽 안을 꽉 채웠다.

여주는 맥주를 홀짝이며 그들의 무대에 푹 빠져들었다.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클럽 안은 자유로운 뒤풀이 분위기로 바뀌었다. 무대에서 내려온 도운은 다른 인디 밴드 멤버들이나 지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여주가 멀리서 도운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려던 참이었다. 도운의 곁으로 화려한 스타일의 여자 보컬 한 명이 다가와 친근하게 팔뚝을 툭 치며 말을 걸었다.

"오, 윤도운~ 오늘 폼 좀 미쳤던데? 스네어 찢어지는 줄."

"아, 누님 오셨습니까. 과찬이십니다."

도운은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여자 보컬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눴다. 음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인지 두 사람의 대화는 끊임이 없었고, 여자 보컬이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던졌는지 도운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주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엄청 친해 보이네.'

그냥 같은 업계 동료끼리 친하게 지내는 것뿐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콕콕 찔리는 것처럼 불편했다. 자신 앞에서는 툭하면 귀끝을 붉히며 쑥스러워하고 단골손님한테 질투나 하던 도운이, 저렇게 다른 여자 앞에서는 여유롭게 능글맞은 태도를 취하는 게 왠지 모르게 서운했다.

'아... 원장님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여주는 며칠 전 카페에서 삐딱하게 굴며 입술을 삐죽이던 도운을 떠올렸다. 남의 일일 땐 그저 귀엽고 간질거렸는데, 막상 자신이 그 입장이 되니 속이 꽤나 복잡했다.

그때였다. 시끌벅적한 클럽 안을 쭉 훑어보던 도운과 여주의 시선이 허공에서 딱 마주쳤다.

도운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이내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번졌다. 도운은 같이 대화하던 보컬 누나에게 대충 손을 흔들어 보이곤, 반가움을 숨기지 못한 채 여주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 사장님! 진짜 오셨네요? 언제 오셨습니까, 연락 주시지!"

반가움이 뚝뚝 묻어나는 도운의 목소리에 여주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 방금요. 마감 일찍 끝나서 잠깐 들렀어요. 공연 잘 봤습니다. 원장님 엄청 멋있으시던데요?"

"아유, 부끄럽구로... 근데 뒤풀이 이제 막 시작인데, 저쪽에 앉으십쇼. 제가 맛있는 거 쏘겠습니다."

도운이 신나서 자리를 안내하려 했지만, 여주의 마음은 방금 전 보았던 다정한 투샷 때문에 이미 미묘하게 꼬여있는 상태였다. 그 무리에 섞여 아무렇지 않게 웃을 자신이 없었다.

"아니에요. 내일 주말이라 아침 일찍 오픈 준비해야 해서요."

"예? 벌써 가시게요?"

도운의 표정에 순식간에 실망감이 스쳤다. 축 처진 강아지 귀가 보이는 것 같았지만 여주는 작게 웃어 보이며 한걸음 물러섰다.

"네, 피곤하기도 하고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ㅎㅎ 재밌게 노세요, 원장님."

"아... 데려다 드릴까요? 비도 오는데..."

"괜찮아요! 혼자 갈 수 있어요."

여주가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클럽 문을 향해 도망치듯 걸음을 옮겼다.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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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겨진 도운은 여주가 사라진 문 쪽을 보며 멍하니 뒷목을 긁적였다. 방금 전까지 무대 위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던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왔다.

클럽을 빠져나온 여주는 밤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쿵쾅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친구라고 하기엔 너무 신경 쓰이고, 이웃이라고 하기엔 감정의 진폭이 너무 컸다.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던 도운의 얼굴을 떠올리면서도, 먼저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옹졸한 감정. 여주는 이제 그것이 완벽한 '질투'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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