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y Day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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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7

남자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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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심심해..."

의자에 앉아 다리를 달랑거리던 지훈이 입술을 삐죽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언니의 아들, 여주의 하나뿐인 조카였다. 갑작스러운 형부의 출장과 언니의 야근이 겹치는 바람에, 학교 하교 후부터 여주의 카페에 임시로 맡겨진 참이었다.

"지훈아, 이모가 초코 케이크 줬잖아. 그거 먹으면서 태블릿 좀 보고 있어. 이모 이것만 마저 치우고 놀아줄게."

"다 먹었단 말이야. 게임도 이제 재미없어."

테이블을 닦던 여주가 난처한 듯 한숨을 쉬었다.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를 좁은 카페 안에 얌전히 앉혀두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바깥에서 뛰어놀게 하고 싶지만 하필 여주는 마감 전이라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어디 힘 좀 뺄 데 없나.'

여주가 고민하며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았을 때, 사거리 저편에 보이는 파란 간판과 그 위에 달린 익숙한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윤 드럼학원].

"지훈아."

"응?"

"너 엄청 시끄럽게 막 두드리고 노는 거 좋아해?"

지훈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아이고, 우리 꼬마 손님은 누구십니까?"

학원 문을 열고 들어온 여주와 지훈을 발견한 도운이 눈을 둥그렇게 뜨며 반겼다. 카운터에 앉아 입시반 아이들의 스케줄표를 정리하던 도운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지훈과 눈높이를 맞추려 무릎을 굽혔다.

"안녕하세요. 제 조카예요. 언니가 오늘 늦는다고 해서 데리고 있었는데, 애가 하도 몸이 쑤신다고 해서요. 혹시 원장님 오늘 바쁘세요?"

"아닙니다, 마침 딱 저녁 시간이라 애들 밥 먹으러 가고 연습실 비어 있습니다. 조카였구나. 이름이 뭔데?"

도운이 다정하게 묻자 지훈이 여주의 다리 뒤에 살짝 숨으며 우물쭈물 대답했다.

"이지훈요..."

"지훈이. 이름도 멋있네. 삼촌이 여기 학원 원장님인데, 지훈이 오늘 북 한 번 시원하게 쳐볼래?"

낯을 가리던 지훈이 '북'이라는 단어에 솔깃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도운은 씩 웃으며 지훈의 작은 손을 잡고 가장 넓은 메인 연습실로 이끌었다. 여주도 두 사람의 뒤를 따라 연습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 일단 스틱부터 잡아보자. 이거는 진짜 드럼 칠 때 쓰는 나무막대기인데, 꽉 쥐면 손 아프거든? 아기 새 잡는 것처럼 살살 쥐어봐라. 그렇지, 옳지."

도운은 지훈을 작은 의자에 앉히고, 자신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지훈의 손에 스틱을 쥐여주었다. 지난번 길거리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던 모습이나, 발표회 때 무대 뒤에서 아이들 긴장을 풀어주던 모습과는 또 달랐다. 여주는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도운이 '선생님'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자, 삼촌이 치는 거 보고 똑같이 한 번 쳐보는 기다. 쿵, 짝. 쿵, 짝."

도운이 자신의 허벅지를 두드리며 시범을 보이자, 지훈이 진지한 얼굴로 스네어 드럼을 내리쳤다.

탁, 탁!

"와! 지훈이 진짜 잘 친다! 박자감 장난 아닌데? 사장님, 얘 천재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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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운이 과장되게 눈을 크게 뜨며 박수를 쳤다. 칭찬에 약한 건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은지, 지훈의 입가에 으쓱하는 미소가 번졌다. 그 뒤로 도운은 하이햇, 탐탐, 심벌까지 하나씩 이름을 알려주며 지훈이 마음껏 두드려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거는 엄청 큰 소리 나는 거! 쾅!"

"쾅!!"

"옳지! 이번엔 발로 쿵!"

연습실 안은 금세 지훈이 서툴게 두드리는 드럼 소리와 도운의 유쾌한 추임새로 가득 찼다. 여주는 소파에 턱을 괸 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이의 눈높이에 완벽하게 맞춰주는 사람. 잘 못 쳐도 절대 다그치지 않고, "원래 처음엔 다 그런 기다. 다시 해보자"라며 여유롭게 웃어주는 사람. 도운이 아이들에게 어떤 원장님인지, 이 학원이 왜 동네 학부모들에게 입소문이 났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진짜, 볼 때마다 다르네.'

처음 레스토랑에서 쩔쩔매며 말실수를 하던 윤도운.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어른스럽게 빗길을 운전하던 윤도운. 무대 위에서 카리스마 있게 스틱을 돌리던 윤도운. 그리고 지금, 조카 앞에서 한없이 다정하고 장난스러운 윤도운까지.

여주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도운의 옆얼굴을 눈에 담았다. 아이와 놀아주느라 소매를 걷어붙인 팔뚝과, 집중한 듯 살짝 튀어나온 입술, 그리고 다정하게 휘어지는 눈매가 자꾸만 시선을 붙잡았다.

"자, 오늘 체험 수업은 여기까지! 지훈이 어땠어? 재밌었어?"

"네! 삼촌, 저 이거 매일 치러 와도 돼요?"

지훈이 이마에 땀을 송글송글 흘리며 스틱을 꼭 쥐고 묻자, 도운이 호탕하게 웃으며 지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라지, 이모 손잡고 언제든지 온나. 삼촌이 지훈이 오면 맨날 공짜로 치게 해줄게."

수업이 끝나고, 도운은 탕비실 냉장고에서 사과 주스 하나를 꺼내 지훈에게 쥐여주었다. 여주에게는 늘 주던 캔 커피 대신 따뜻한 유자차를 건넸다.

"원장님, 진짜 고생하셨어요. 애가 낯을 좀 가리는데 원장님이 엄청 잘 놀아주시니까 금방 적응하네요. 근데 이렇게 공짜로 체험 수업해주시면 학원 거덜 나는 거 아니에요?"

"에이, 사장님 조카인데예. 언제든 데려오십쇼. 저도 오랜만에 꼬맹이랑 치니까 재밌네요."

도운이 땀이 맺힌 이마를 손등으로 훔치며 웃었다. 카운터 앞 소파에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는 세 사람의 모습은 제법 단란해 보였다. 지훈은 소파 끝에 매달려 주스를 쪽쪽 빨아먹으며 도운과 여주를 번갈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지훈이 툭 한마디를 던졌다.

"이모."

"응?"

"이 삼촌, 이모 남자친구야?"

푸흡!

따뜻한 유자차를 마시려던 여주가 사레가 들려 기침을 터뜨렸다. 그 옆에서 남은 사과 주스를 털어 넣던 도운도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며 사례 들린 기침을 뱉어냈다.

"콜록, 콜록! 지, 지훈아, 그게 무슨 소리야!"

"아이다! 지훈아, 삼촌은 그냥, 어? 그냥 원장님이고!"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손사래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평소라면 "아니야, 그냥 동네 친한 삼촌이야" 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가벼운 질문이었다. 그런데 왜인지, 방금 전 지훈의 말 한마디에 두 사람 모두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당황해버렸다.

"아니야? 근데 왜 엄마 말고 이 삼촌이랑 데이트해?"

지훈이 순진무구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데, 데이트라니! 누가 그래, 이모는 방금 삼촌한테 커피 배달 온 거, 아니, 너 놀아주려고 온 거잖아! 으이구, 꼬맹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여주가 횡설수설하며 지훈의 볼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도운 역시 평소의 능글맞음은 온데간데없이 귀끝이 터질 듯이 새빨개져서는 허공만 응시했다.

"그, 그라제! 데이트는 무슨. 삼촌이랑 이모는 그냥... 이웃사촌! 그래, 이웃사촌이다. 동네 사람."

너무 빠르고 격렬한 부정.

오히려 그 과장된 반응이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더 묘하고 어색하게 만들었다.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 애꿎은 종이컵만 만지작거리는 두 사람 사이로, 영문도 모르는 지훈만 "이웃사촌이 뭐야?" 하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저, 원장님. 저희 그만 가볼게요. 언니가 이제 퇴근했다고 연락 와서요."

"아, 예! 조심히 들어가십쇼! 지훈아, 다음에 또 삼촌 보러 온나!"

여주가 도망치듯 지훈의 손을 잡고 학원을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야 여주는 뜨거워진 두 뺨을 손등으로 감쌌다.

'미쳤나 봐, 왜 이렇게 당황해. 진짜 티 나게...'

한편, 텅 빈 학원에 홀로 남은 도운은 카운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붉어진 제 귀를 양손으로 벅벅 문질렀다.

"아이고, 윤도운... 애가 한마디 했다고 거기서 그렇게 티를 내노."

남자친구냐는 일곱 살 꼬마의 순진한 질문.

하지만 그 질문은 두 사람이 그동안 '동네 지인'이라는 편안한 타이틀 아래 모른 척 덮어두고 있던 진짜 감정의 민낯을 기어코 들춰내고야 말았다.

남자친구가 아니다, 라고 부정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콕 찔린 것처럼 묘하게 아쉬워지는 이 감정을, 이제는 도운도 여주도 더 이상 헷갈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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