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y Day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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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6

윤 원장님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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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마이크 테스트. 엔지니어님, 모니터 스피커 볼륨 쪼매만 더 올려주이소. 예, 딱 좋습니다."

평촌 학원가 뒤편의 작은 대관용 라이브 홀.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쥐고 음향을 체크하는 도운의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었다. 오늘은 윤 드럼학원의 연말 작은 발표회가 있는 날이었다.

"원장니임! 저 스틱 부러졌어요!"

"어, 민재야! 괘찮다, 안 다쳤제? 선생님 가방에 새 스틱 있으니까 그거 꺼내 써라. 뛰지 말고!"

스태프 명찰을 목에 건 도운은 무대와 객석, 대기실을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오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긴장해서 화장실을 찾고, 앰프 선은 자꾸 꼬이고, 큐시트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하아..."

도운이 무대 한구석에 쭈그려 앉아 잠시 마른세수를 하던 그때였다.

"원장님!"

홀 입구 쪽에서 맑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번쩍 든 도운의 시야에, 커다란 보온 박스와 캐리어 두 개를 양손에 든 여주가 보였다. 여주의 뒤로는 근처 배달 대행 기사님이 큰 박스를 두 개나 더 들고 서 있었다.

"어이구, 사장님!"

도운이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 여주가 들고 있던 무거운 보온 박스를 냉큼 받아 들었다.

"무거운데 뭐 하러 직접 들고 오셨습니까. 도착했다고 연락 주시지."

"기사님 한 분으로 안 될 것 같아서 저도 같이 들고 왔죠. 정신없으실 텐데 제가 이 정도는 도와드려야죠."

여주는 익숙하게 홀 한쪽에 마련된 다과 테이블에 음료들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차 종류는 학부모님들을 위해 한쪽에, 아이들이 마실 달콤한 아이스티와 주스 종류는 얼음이 녹지 않게 따로 분류해 두는 손길이 거침없고 깔끔했다.

도운은 그 능숙한 뒷모습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와... 사장님 진짜 완벽하네요. 제가 어제 음료 몇 잔 필요하다고 숫자만 달랑 보내드렸는데, 이걸 이렇게 다 나눠서 세팅해주시고."

"제가 명색이 카페 사장인데, 이 정도 센스는 기본이죠."

여주가 빙긋 웃으며 앞치마 주머니에서 이름표가 붙은 테이프를 꺼내 아이들 음료에 하나씩 붙이기 시작했다. 헷갈리지 않게 배려한 여주의 꼼꼼함에 도운은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그때, 라이브 홀 문이 열리며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가 커다란 꽃바구니 두 개를 양팔에 안고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도운아~ 형 왔다. 이거 어디다 두면 돼?"

도운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어, 원필이 형! 바쁜데 진짜 왔네. 무대 양옆에 그냥 놔줘."

여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꽃바구니를 든 남자, 원필에게로 향했다. 무대 세팅을 마치고 다가온 원필은 다과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는 여주를 발견하고는 잠시 멈칫했다.

"어? 안녕하세요. 혹시 그..."

"아, 형. 여기 우리 학원 근처에서 카페 하시는 사장님. 오늘 행사 음료 케이터링 다 맡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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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운이 중간에서 빠르게 말을 자르며 소개했다. 원필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아하, 하고 입 모양을 만들더니 특유의 다정하고 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김원필이라고 합니다. 도운이 친한 형이에요. 도운이가 카페 커피 엄청 맛있다고 칭찬 많이 하던데."

"아, 안녕하세요. 윤 원장님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여주도 가볍게 목례를 하며 웃었다. 원필은 도운과 여주를 번갈아 보며 묘하게 뿌듯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도운아, 나 오늘 주말이라 샵에 예약이 꽉 차서 바로 가봐야겠다. 발표회 잘하고, 다치지 말고! 사장님, 나중에 카페로 커피 한잔하러 가겠습니다."

"예, 형. 고맙데이!"

원필이 바쁘게 홀을 빠져나가자, 여주가 신기하다는 듯 도운을 쳐다보았다.

"저분이 그 같이 밴드 하신다는 형님 중 한 분이세요? 분위기가 엄청 다정하시네요."

"아, 맞습니다. 차로 한 이삼십 분 거리에서 꽃집 하거든요. 워낙 바빠서 올 줄 몰랐는데 꽃까지 챙겨주고 갔네요. 우리 형들이 좀, 착하긴 징그럽게 착합니다."

도운이 쑥스러운 듯 코끝을 긁적였다. 곧이어 학부모님들과 아이들이 하나둘 홀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행사의 막이 올랐다.

여주는 돌아가지 않고 맨 뒷좌석에 앉아 발표회를 지켜보았다. 무대 옆 작은 콘솔에 선 도운은 쉴 새 없이 마이크를 잡고 행사를 진행했다.

"자, 다음은 우리 학원 막내! 일곱 살 민재의 무대입니다. 박수!"

민재가 잔뜩 굳은 얼굴로 무대에 올라 드럼 의자에 앉았다. 수많은 어른들의 시선이 쏠리자 아이의 쥔 스틱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맨 뒷자리인 여주의 눈에도 보였다. 그때, 도운이 마이크를 내려놓고 무대 위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도운은 민재의 등 뒤에 서서 자세를 고쳐잡아 주는 척하며 귓가에 무언가 속삭였다. 그러곤 민재의 머리를 한 번 가볍게 헝클어뜨리고는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굳어있던 민재의 얼굴에 그제야 씩 웃음이 번졌다. 도운이 내려오고, 반주가 시작되자 민재는 제법 씩씩하게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여주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긴장을 풀어주는 다정하고 섬세한 원장님.

하지만 여주의 감탄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발표회의 마지막, 특별 무대였다.

"마지막으로, 우리 아이들 가르치느라 제일 고생하신 윤도운 원장님의 특별 공연이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멘트와 함께 홀의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대 중앙의 드럼 셋에 핀 조명이 떨어졌다. 검은색 반팔 셔츠로 갈아입은 도운이 드럼 스틱을 가볍게 한 번 돌리며 자리에 앉았다. 평소의 헐렁한 미소는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카운트를 세는 날카로운 심벌 소리와 함께, 묵직하고 폭발적인 드럼 비트가 홀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다.

쿵, 쾅, 치익-

여주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아이들 앞에서는 마냥 다정하고, 자신 앞에서는 툭하면 말실수를 하며 귀를 붉히던 그 윤도운이 맞나 싶었다. 땀에 젖은 앞머리를 털어내며 정박으로 강하게 스네어를 내리치는 손목, 리듬을 타며 날카롭게 찌푸려진 미간, 악기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여유.

무대 위에서 드럼을 치는 도운은, 여주가 지금까지 본 어떤 모습보다 압도적이고 매력적이었다.

"와아아!!"

연주가 끝나고 학부모들과 아이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도운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특유의 순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돌아가는 시간.

다시 한번 홀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도운이 입구에서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며 배웅하는 사이, 여주는 다과 테이블 쪽에서 조용히 활약하고 있었다.

"어머니, 민재 정말 잘 치던데요? 가시는 길에 목마르실 텐데 아이스티 하나 더 챙겨가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원장님도 고생 많으셨다고 전해주세요."

여주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음료가 떨어지지 않게 채워 넣고, 쓰레기를 한곳으로 모으며, 학부모들에게 친절한 인사까지 건넸다. 도운은 인사를 하는 틈틈이 그 모습을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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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참 단단하네.'

자기 일도 아닌데, 주말 오후 시간을 통째로 비워 와서는 불평 한마디 없이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챙긴다. 카페에서 복잡한 배달 주문을 척척 쳐내던 그 안정감과 능숙함이 여기서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도운은 여주의 묵묵하고 야무진 뒷모습을 보며 깊은 안도감과 동시에 몽글몽글한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홀이 텅 비고, 무대 정리까지 대충 끝난 시간.

두 사람은 나란히 무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도운이 얼음이 다 녹아 미지근해진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며 긴 숨을 토해냈다.

"하아... 살았다, 진짜."

"원장님, 진짜 고생하셨어요. 아까 보니까 애들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시던데요?"

"말도 마십쇼. 십 년 늙은 거 같습니다. 그래도 사장님 덕분에 진짜 살았습니다. 음료 세팅부터 뒷정리까지... 와, 진짜 사장님 안 계셨으면 저 오늘 무대 위에서 기절했을지도 모릅니다."

도운이 진심을 듬뿍 담아 고개를 숙이자, 여주가 소리 내어 웃었다.

"제가 일머리 하나는 좀 좋거든요. 근데 저도 오늘 남는 장사였어요. 멋있는 구경 했거든요."

"멋있는 구경이요?"

도운이 눈을 둥그렇게 뜨자, 여주가 무대 중앙의 드럼 셋을 턱 끝으로 가리켰다.

"원장님 아까 마지막에 드럼 치실 때요. 와, 저 진짜 깜짝 놀랐잖아요. 딴 사람인 줄 알고."

"아... 그거."

여주의 솔직한 감상에 도운의 귀가 또다시 익숙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도운은 멋쩍은 듯 손바닥으로 제 무릎을 문질렀다.

"뭐, 제가 드럼 치는 사람인데 그 정도는 쳐야 밥 먹고 살지 않겠습니까."

"겸손하시기는. 아까 학부모님들도 다들 눈에서 하트 나오시던데요? 엄청 반하셨을걸요."

"어유, 아닙니다. 땀 뻘뻘 흘리고 치는데 뭐 좋다고."

도운이 손사래를 쳤지만,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도운은 힐끗 여주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뭐... 사장님도 멋있게 보셨다니까 다행입니더."

여주 역시 도운과 시선이 마주치자 가볍게 웃어 보였다.

두 사람 모두 굳이 거창한 말을 보태진 않았다. 하지만 텅 빈 라이브 홀, 무대 위에 나란히 앉아 식어버린 커피를 나눠 마시는 이 순간. 두 사람은 서로가 자기 일을 얼마나 사랑하고, 또 얼마나 책임감 있게 해내는 사람인지 온전히 확인했다.

그건 설렘이라는 가벼운 단어보다 훨씬 묵직하고, 깊은 감정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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