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y Day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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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4

사장님과 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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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 오후 3시 루틴

그날 이후, 오후 3시쯤 슬리퍼를 직찍 끌고 노란 간판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오는 것은 도운의 새로운 루틴이 되었다.

"사장님, 저 왔습니데이."

"아, 원장님. 오늘은 5분 늦으셨네요?"

이런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커피를 받아 드는 시간이 꽤나 즐거웠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 도운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내부는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시간임에도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카운터 쪽은 그야말로 전쟁통이었다.

"손님, 죄송하지만 헤이즐넛 시럽은 추가가 안 되어 있었거든요. 결제 내역 확인해 드릴까요?"

"아니, 내가 아까 분명히 말했는데 알바생이 못 들은 거 아니에요? 바빠서 대충 들었나 보지."

포스기 앞에서는 중년의 진상 손님 하나가 이제 막 일을 시작한 듯한 앳된 알바생을 윽박지르고 있었다. 알바생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울상을 짓고 있었고, 그 와중에 배달 주문을 알리는 경쾌한 알림음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배달 기사까지 픽업대에 서서 시계를 보며 재촉하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도운이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문가에 서서 머뭇거리는 사이, 에스프레소 머신 쪽에서 바쁘게 샷을 내리던 여주가 잽싸게 카운터로 넘어왔다.

"손님, 주문 확인 과정에서 저희 쪽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샷 새로 뽑아서 헤이즐넛 시럽 듬뿍 넣어 다시 만들어 드릴게요. 1분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여주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차분하고 단단한 목소리로 손님을 응대했다. 윽박지르던 손님도 여주의 깔끔한 대처에 할 말을 잃었는지 헛기침을 하며 물러섰다.

"지민아, 저쪽 배달 건 포장된 거 기사님 먼저 챙겨드리고, 이건 내가 할게."

여주는 패닉에 빠진 알바생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진정시킨 뒤,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손놀림으로 컵을 쥐었다. 얼음을 담고, 시럽을 펌핑하고, 방금 내린 샷을 붓고 뚜껑을 닫기까지 정말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여주가 생긋 웃으며 새로 만든 음료를 건네자, 뚱했던 손님도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페를 나섰다. 폭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 여주는 그제야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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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운은 그 일련의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평소에 저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던 편안한 얼굴과는 완전히 달랐다. 꼬인 상황을 단숨에 정리하고, 제 몫의 책임을 다하는 카페 사장의 다부진 얼굴.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한참 동안 눈에 남았다.

"어? 원장님. 언제 오셨어요?"

여주가 뒤늦게 도운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며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아까, 진상 손님 계실 때요."

"아... 부끄럽게. 오늘따라 정신이 좀 없네요. 평소 드시던 걸로 드릴까요?"

"네. 근데 사장님."

도운이 카운터에 팔을 살짝 걸치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방금, 일할 때 보니까 좀 멋있네여."

여주는 포스기를 누르려다 말고 피식 웃었다.

"뭐예요. 갑자기 훅 들어오시네. 아이스 아메리카노 샷 추가, 오늘은 제가 멋있으니까 서비스로 마카롱도 하나 넣을게요."

"오, 개이득."

도운은 마카롱이 든 봉투를 짤랑거리며 카페를 나섰다. 학원으로 돌아가는 길, 도운은 왠지 모르게 자꾸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기 일 똑 부러지게 하는 사람. 그건 도운이 인간관계에서 꽤나 높게 치는 가치 중 하나였다.

그날 저녁 8시 / 학원 앞

그날 저녁 8시.

마감을 끝낸 여주는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카페 문을 잠갔다. 유독 진이 빠지는 하루였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려면 자연스럽게 도운의 학원이 있는 사거리를 지나야 했다.

'지금쯤이면 학원도 끝났으려나.'

여주가 무심코 1층 세탁소 모퉁이를 돌았을 때였다. 파란 간판 아래, 익숙한 뒤통수가 보였다. 도운이었다.

여주가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을 하려던 찰나, 도운의 앞에 선 작은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자기 몸만 한 스틱 가방을 메고 있는 일곱 살 남짓의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잔뜩 입이 대빨 나온 채로 바닥만 차고 있었고, 그 옆에는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우리 민재, 오늘 8분음표 치는 거 진짜 쪼매 어려웠제?"

도운은 후드티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손을 빼고, 아예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평소의 그 장난기 가득하던 억양은 온데간데없이, 한없이 다정하고 낮은 목소리였다.

"원장님도 민재 나이 때 드럼 처음 배웠거든? 근데 선생님도 거기서 맨날 틀려갖고 혼났다 아이가. 원래 그 박자가 제일 어려운 기다. 민재가 못 치는 게 아이고."

"진짜요...?"

"그라지. 내일 와서 다시 딱 열 번만 쳐보자. 쪼매만 더 연습하면 형아들보다 훨씬 잘 칠 기다. 약속."

도운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금방이라도 울 것 같던 아이의 표정이 스르르 풀리며 작은 손가락을 걸어왔다. 도운은 아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곤, 아이의 풀려 있는 운동화 끈을 꼼꼼하게 다시 묶어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 어머니가 안도하며 고개를 숙였다.

"원장님, 매번 이렇게 달래주셔서 죄송해요. 민재가 유독 원장님은 잘 따라서..."

"아닙니다, 어머니. 민재가 워낙 집중력이 좋아서 금방 늘 깁니다. 애들 다 이맘때 한 번씩 벽에 부딪히거든요. 어머니도 너무 조급하게 생각 안 하셔도 됩니다."

학부모를 안심시키는 말씨는 무척이나 정중하고 어른스러웠다. 여주는 가로등 아래 멈춰 선 채, 그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윤도운 원장님.'

늘 헐렁한 옷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나타나서 사람을 웃기기만 하던 사람. 하지만 아이 앞에서는 진짜 '선생님'이자, 학원을 책임지는 '원장'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정하면서도 든든한 등짝이 오늘따라 유독 커 보였다.

"어? 사장님."

학부모와 아이를 배웅하고 일어서며 기지개를 켜던 도운이 여주를 발견했다. 여주는 그제야 멈춰 있던 발걸음을 떼고 도운에게 다가갔다.

"퇴근하십니까?"

"네. 이제 막 마감하고 가는 길이에요. 원장님도 이제 퇴근이세요?"

"네. 방금 마지막 초딩 손님까지 무사히 보내드렸습니다. 아, 진짜 오늘 하얗게 불태웠다."

도운이 과장되게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방금 전까지 무릎을 꿇고 아이를 달래던 어른스러운 원장님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원래의 편안한 동네 지인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여주는 이제 그 헐렁함 뒤에 숨겨진 진짜 모습을 안다.

"고생하셨네요. 방금 보니까... 원장님, 진짜 선생님 같던데요?"

여주가 빙긋 웃으며 말하자, 도운이 잠시 눈을 크게 떴다.

"네? 아, 보셨습니까. 부끄럽구로."

도운이 멋쩍은 듯 뒷목을 긁적였다.

"아까 사장님 일하시는 거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장님도 제 일하는 거 보셨네요. 이거 쌤쌤인가?"

"뭐, 그런 셈이네요. 원장님 오늘 좀, 아니 꽤 듬직해 보였어요."

여주의 진심 어린 칭찬에 도운의 귀끝이 또다시 옅은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도운은 일부러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뭐... 애들 가르치는 게 다 이렇죠. 가입시다. 정류장까지 태워... 아니, 바래다 드릴게요."

두 사람은 나란히 밤거리를 걸었다. 낮에 카페에서, 그리고 밤에 학원 앞에서. 서로가 자신의 일을 대하는 진지한 얼굴을 본 하루였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이전보다 한결 묵직하고 따뜻해져 있었다. 그건 단순한 호감을 넘어,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한 명의 어른으로서 서로를 향해 느끼는 온전한 '존중'이었다.

카페 스피커와 모집 포스터

카페에서 음악은 커피 맛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다. 잔잔하게 깔리는 재즈나 어쿠스틱 팝은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인테리어와도 같으니까. 그런데 오늘따라 그 중요한 인테리어가 영 말썽이었다.

"지지직... 찌익..."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간헐적으로 신경을 긁는 파열음이 새어 나왔다. 음악 소리보다 잡음이 더 크게 들릴 지경이었다. 노트북을 하던 손님들이 하나둘 천장 쪽으로 시선을 던질 때마다 여주의 속도 까맣게 타들어 갔다.

"아, 진짜 왜 이러지."

여주가 포스기 아래에 있는 작은 앰프를 이리저리 만져보았지만, 기계에 문외한인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전원을 껐다 켜는 것뿐이었다. 여전히 스피커는 기분 나쁜 소리를 뱉어내고 있었다. AS 센터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기사가 방문하려면 적어도 이틀은 기다려야 한다는 절망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당장 남은 오후 영업이 문제였다. 음악을 아예 꺼버릴까 고민하며 휴대폰 화면을 톡톡 두드리던 여주의 머릿속에 번뜩, 누군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가끔 드럼 페달 고장 나고 스피커 찢어지고 하면 진짜 멘붕 옵니다.'

'드럼 치는 사람들은 앰프랑 믹서 만지는 게 일상이라요.'

지난번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듯 들었던 도운의 말이 떠오른 건 본능에 가까웠다. 여주는 잠깐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메신저 창을 열었다.

[원장님, 혹시 지금 바쁘세요? ㅠㅠ]

메시지를 보내놓고 입술을 깨물고 있는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곧바로 '1'이 사라지더니 답장이 날아왔다.

[입시반 애들 오기 전이라 빈둥거리고 있습니다.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ㅠㅠ' 이모티콘 때문인지 곧장 진지한 물음이 돌아왔다. 여주는 다급하게 상황을 타자 쳐서 보냈다.

[카페 스피커가 갑자기 지직거리는데, 제가 앰프를 아무리 만져봐도 안 고쳐져서요. AS 부르면 이틀 걸린다는데... 혹시 이런 선 같은 것도 볼 줄 아세요?]

답장은 이번에도 빨랐다.

[와, 사장님 사람 제대로 보셨네. 제가 또 드럼 치기 전에 음향 기기 만지는 걸로 동네에서 방귀 좀 뀌었거든요.]

[5분만 기다리십쇼. 슬리퍼 말고 운동화 제대로 신고 갈게요.]

문자를 확인한 여주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진짜로 딱 5분 뒤, 카페 문이 열리고 작은 공구함 하나를 옆구리에 낀 도운이 나타났다. 평소의 편안한 차림이었지만, 묘하게 눈빛만큼은 전문가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어디 봅시다. 우리 사장님 속 썩이는 놈이 누군지."

도운은 카운터 안쪽으로 성큼 들어와 여주가 가리킨 앰프 쪽으로 쭈그려 앉았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앰프 뒤쪽의 복잡한 선들을 하나씩 만져보고, 단자를 뽑았다가 입으로 훅 불어 다시 꽂기를 몇 번 반복했다.

"음, 앰프 자체는 멀쩡한데요. 이 메인 케이블이 오래돼서 안쪽 선이 끊어진 거 같습니다. 잭을 돌릴 때마다 잡음이 심해지는 거 보니까."

"그럼 선을 새로 사야 해요? 당장 오늘 오후는 어떡하지..."

"에이, 누굴 불렀는지 잊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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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운이 씩 웃으며 옆구리에 끼고 온 작은 공구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케이블 타이부터 시작해 온갖 굵기의 여분 선들이 돌돌 말려 있었다.

"학원에 굴러다니는 여분 케이블입니다. 규격이 딱 맞네. 이걸로 갈아 끼우면 바로 해결될 깁니다."

도운이 고장 난 선을 뽑아내고 새 선을 연결한 뒤, 앰프의 볼륨 다이얼을 천천히 돌렸다.

"Sing me to sleep, I'll see you in my dreams..."

지직거리는 파열음 하나 없이, 부드럽고 선명한 팝송이 카페 안을 부드럽게 채우기 시작했다. 여주는 자신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와! 원장님 진짜 마법사예요? 대박이다, 진짜."

"마법사는 무슨. 그냥 선 하나 갈아 끼운 건데."

여주가 두 손을 모으고 진심으로 감탄하자, 쭈그려 앉아있던 도운이 뒷목을 긁적이며 일어섰다. 귀끝이 슬쩍 붉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칭찬에 익숙해진 척해도, 저렇게 직접적인 반응 앞에서는 영락없이 쑥스러워하는 게 도운의 오랜 버릇이었다.

"진짜 구세주예요. 이거 제가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하죠? 원장님 오실 때마다 한 달 동안 커피 무료? 아니면 디저트 무제한 제공?"

"어유, 동네 이웃끼리 선 하나 갈아준 거 가지고 뭘 그렇게 거창하게 보답을 합니까. 됐습니다."

도운이 손사래를 치려다,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펼쳤다.

"대신, 이 부탁 하나만 들어주십쇼."

"이게 뭐예요?"

여주가 받아 든 종이에는 [윤 드럼학원 가을맞이 취미반 모집! 스트레스, 북 치면서 날려버리자!] 라는 문구와 함께 엉성한 드럼 일러스트가 그려진 포스터가 있었다.

"이거 우리 학원 모집 포스터인데... 사장님 카페에 손님 엄청 많지 않습니까. 혹시 가게 한구석에, 달아주시면 안 됩니까?"

부탁하는 도운의 표정이 마치 엄청난 큰일이라도 무리하게 요구하는 사람처럼 머쓱해 보였다. 스피커 수리비를, 학원 전단지 한 장 붙이는 걸로 퉁치겠다는 소리였다. 여주는 그 소박하고 귀여운 청탁에 결국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뭐예요, 진짜. 고작 이거면 돼요?"

"고작이라뇨. 저한테는 아주 중대한 마케팅 전략입니다."

"알았어요. 제가 제일 잘 보이는 명당자리 내어드릴게요."

여주는 투명 테이프를 가져와, 손님들이 픽업을 기다리며 가장 많이 쳐다보는 쇼케이스 바로 옆 벽면에 도운의 학원 포스터를 반듯하게 붙였다.

"오... 위치 미쳤네요. 여기서 취미반 두 명만 들어와도 사장님 쪽으로 절하겠습니다."

"세 명 들어오면 저한테 밥 사세요."

"당연하죠. 소고기 쏘겠습니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친 도운은 여주가 쥐여준 시원한 에이드 한 잔을 쪽쪽 빨며 만족스럽게 카페를 나섰다.

며칠 뒤 / 커피 8잔

그리고 며칠 뒤.

이번엔 도운 쪽에서 다급한 SOS를 쳤다.

[사장님, 저 오늘 학원에 입시 상담만 릴레이로 네 탕 뛰어야 합니다. 목 타서 죽을 것 같은데, 혹시 아아 8잔 배달 됩니까? ㅠㅠ]

메시지를 본 여주는 픽 웃었다. 지난번 스피커 사건 이후로 두 사람의 연락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ㅠㅠ' 이모티콘을 복사해서 붙여넣은 도운의 메시지에서 그의 앓는 소리가 음성지원 되는 것 같았다.

[VVIP 고객님 주문이신데 당연히 가야죠. 10분 뒤에 학원 문 열어두세요.]

여주는 재빠르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8잔을 캐리어 두 개에 나누어 담고 카페를 나섰다. 파란 간판 세탁소를 지나 모퉁이를 돌아 3층으로 올라가니, 상담실 안에서 학부모와 열띤 대화를 나누는 도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님, 애가 박자감은 진짜 타고났습니다. 이건 제가 보장합니다."

여주는 방해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카운터 위에 커피 캐리어를 올려두었다. 상담을 마치고 학부모를 배웅하러 나온 도운이 카운터의 커피와 여주를 발견하고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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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사장님! 진짜 감사합니다. 마침 딱 목말라 죽기 직전이었는데."

"원장님 오늘 진짜 바쁘신가 봐요. 입시반 선생님 포스 장난 아니던데요?"

"아유, 살려주십쇼. 기 다 빨렸습니다."

도운이 과장되게 어깨를 늘어뜨리며 커피 한 잔을 집어 들어 생명수처럼 쭉 들이켰다. 여주는 그런 도운을 보며 작게 웃었다.

"수업 남았어요?"

"네, 이제 진짜 전투의 시작입니다. 애들 오기 전에 카페인 충전 빡 하고 들어가야죠."

"힘내세요, 윤 원장님. 커피값은 이따 퇴근하실 때 카페 들러서 결제하셔도 되니까, 무리하지 마시고요."

여주가 응원의 뜻으로 주먹을 가볍게 쥐어 보이자, 도운도 피식 웃으며 따라 주먹을 쥐어 살짝 부딪쳐 왔다.

"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거창한 약속을 잡고, 차려입고 만나서 격식을 차리던 소개팅은 진작에 끝났다.

대신 두 사람 사이에는 '선 하나 갈아주기', '바쁜 날 커피 배달해주기' 같은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교류가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부탁 같지도 않은 작은 부탁들. 그리고 그 부탁을 빌미로 한 번이라도 더 웃으며 마주치는 시간들.

이웃사촌이라는 핑계로 포장하기엔, 서로의 하루에 꽤나 깊숙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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