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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3

오후 3시의 노란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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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 노란 간판 카페

오후 3시. 드럼 학원이 가장 한산해지는 마의 시간대였다. 입시반 아이들은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이고, 취미반 직장인들은 퇴근 전이다. 도운은 텅 빈 연습실을 한 바퀴 돌며 메트로놈 전원을 끄고, 널브러진 스틱들을 짝 맞춰 정리했다.

"아, 당 땡긴다."

크게 기지개를 켜며 창밖을 내다보던 도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학원 아래 사거리 쪽으로 향했다. 평소 같았으면 탕비실에 있는 믹스 커피를 대충 두 봉지 뜯어 마시거나, 1층 편의점에서 캔커피를 사 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며칠 전 알게 된 그 '노란 간판'이 떠올랐다.

'샷 추가 무료라 했제.'

진짜 공짜 샷이 고파서라기보다는, 그냥 호기심 반, 심심함 반이었다. 도운은 겉옷도 챙겨 입지 않고 가벼운 추리닝 차림에 슬리퍼를 직찍 끌며 학원을 나섰다.

본문 삽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파란 간판 세탁소를 끼고 모퉁이를 도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정말이지 딱 3분이었다.

"진짜 가깝네..."

도운은 어이없다는 듯 작게 헛웃음을 치며 아담한 노란색 간판이 달린 카페 문을 열었다. 딸랑, 하는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훅 끼쳐오는 짙고 고소한 커피 향이 꽤나 기분 좋았다.

"어서 오세... 어?"

카운터 안쪽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닦고 있던 여주가 고개를 들었다. 앞치마를 단정하게 두르고 머리를 하나로 묶어 올린 모습이 지난번 두 번의 만남 때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영업 중입니까?"

도운이 씩 웃으며 한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여주는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픽 웃었다.

"뭐예요, 원장님. 진짜 오셨네요?"

"당연하죠. 샷 추가 무료라는데 공짜는 못 참지 않습니까. 마침 학원에 애들도 없고, 커피나 한 잔 할까 해서요."

"아, 진짜 슬리퍼 끌고 오셨네. 동네 마실 나오셨구나."

여주의 장난스러운 지적에 도운이 제 발밑을 내려다보며 머쓱하게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제가 이래 봬도 여기까지 오는데 무려 3분이나 걸렸습니다. 엄청 멀리서 온 손님이에요."

"아이고,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손님. 뭐 드릴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네, 그걸로 한 잔 주십시오. 아, 샷 추가는 진짜 무료 맞죠?"

"그럼요. 동네 이웃 특혜 확실하게 챙겨 드릴게요."

여주가 능숙하게 포스기를 터치하고는 머신 쪽으로 돌아섰다. 원두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쌉싸름한 향기가 카페 안을 채웠다. 도운은 카운터 앞에 서서 카페 내부를 쓱 둘러보았다.

테이블이 대여섯 개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지만, 구석구석 여주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 보였다. 벽에 붙은 메뉴판의 반듯한 손글씨도,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들도 참 그녀답게 깔끔하고 다부졌다.

"근데 진짜 웃기지 않아요?"

샷 잔에 에스프레소를 받아내며 여주가 등을 돌린 채로 입을 열었다.

"제가 출퇴근할 때 맨날 원장님 학원 간판 보거든요. 3층 창문에 윤 드럼학원이라고 엄청 크게 붙어 있잖아요."

"맞습니다. 멀리서도 잘 보이라고 제가 돈 좀 썼죠."

"그 간판 보면서 맨날 '저기 원장님은 되게 나이 지긋하고 수염 난 아저씨일 것 같다'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원장님이 그 원장님일 줄은 진짜 상상도 못 했어요."

여주의 말에 도운이 눈썹을 쓱 까딱였다.

"왜요? 제 얼굴이 원장 상이 아입니까?"

"음... 원장님이라기보다는..."

얼음이 가득 담긴 컵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넣은 여주가 돌아서며 짓궂게 웃었다.

"그냥 드럼 엄청 좋아하는 동네 청년? 아니면 밴드 하는 대학생?"

"아... 그거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제가 또 한동안은 꽤 동안이라는 소리 듣고 살았거든요."

"뻔뻔하시네요."

여주가 컵홀더를 끼운 차가운 커피를 카운터 위로 내밀었다. 그 옆에는 작은 초코 마들렌 하나가 귀엽게 놓여 있었다.

"어? 이거 안 시켰는데요."

"이것도 서비스요. 지난번에 커피 사주셨잖아요. 영수증은 아직 그쪽 형님한테 청구 안 하셨죠?"

"아, 낚시 갈 때 영수증 들이밀려고 고이 모셔두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마들렌도 맛있게 드세요. 당 떨어질 시간 지났잖아요."

도운은 커피와 마들렌을 받아 들고 기분 좋게 웃었다. 지난번 만남까지만 해도 서로 묘하게 예의를 차리며 선을 지키는 느낌이 있었는데, 각자의 생업 현장에서, 그것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치니 한결 편안했다. 무슨 옷을 입을지, 무슨 말을 꺼낼지 고민할 필요가 없는, 아주 가벼운 '동네 지인' 그 자체였다.

"잘 마시겠습니다, 사장님. 저도 다음에 오시면 스틱 말고 학원 냉장고에 있는 비타민 음료라도 하나 꺼내 드릴게요."

"기대할게요, 원장님."

도운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카페를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빨대 포장지를 벗겨 커피를 크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산미가 적고 고소한 맛이었다. 딱 도운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원두였다. 도운은 커피잔에 적힌 노란색 로고를 한 번 쳐다보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학원으로 돌아가는 그 3분 남짓한 길. 도운은 생각했다.

이제 탕비실 믹스 커피는 안 먹어도 되겠다.

억지로 만든 약속은 없었지만, 내일도 모레도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면 언제든 다시 저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꽤나 나쁘지 않았다. 아니, 생각보다 많이 편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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