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두 사람의 일상은 많은 것이 변했다.
오후 3시의 커피 타임은 가장 기다려지는 달콤한 일과가 되었고, 밤 10시 10분의 퇴근길은 손을 잡고 걷는 비밀스러운 데이트 코스가 되었다.
그렇게 손도 잡고, 밤의 골목길에서 가벼운 입맞춤도 나누며 제법 '커플'다운 진도를 빼고 있던 어느 평일 오후였다.
"오빠, 어제 지훈이 유치원에서 소풍 갔었대. 언니가 사진 보내줬는데 진짜 귀엽지."
여주가 카운터 너머로 휴대폰 화면을 불쑥 내밀었다. 도운은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려놓고 화면 속 노란 체육복을 입은 지훈의 사진을 보며 활짝 웃었다.
"아이고, 우리 꼬맹이 폼 좀 보소. 브이를 아주 야무지게 하네. 며칠 안 봤다고 그새 또 큰 거 같다."
"그러니까. 애들은 진짜 빨리 큰다니까."
여주가 갤러리 앱을 넘기며 지훈의 다른 사진들을 보다가, 무심코 화면을 멈췄다. 여주의 손가락이 갤러리의 스크롤을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였다.
"근데... 오빠."
"어, 와?"
"우리 진짜 웃긴 거 알아요? 우리 사귀고 나서, 단둘이 같이 찍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네."
여주의 말에 도운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서로의 일하는 뒷모습이나, 상대방이 사준 커피 잔을 찍어둔 사진은 몇 장 있었지만, 두 사람의 얼굴이 나란히 담긴 투샷은 갤러리 어디를 뒤져봐도 존재하지 않았다.
"헐... 진짜네."
"그렇죠? 매일 보니까 오히려 사진 찍을 생각을 못 했나 봐. 우리 지금 한 장 찍을까요?"
여주가 아주 자연스럽게 카메라 앱을 켜고 전면 렌즈로 전환했다. 그리고 카운터에 기대어 있던 도운의 옆으로 바짝 다가가 섰다.
화면 속에 두 사람의 얼굴이 나란히 들어왔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오빠, 숨 안 쉬어요?"
여주가 화면 속 도운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도운은 마치 군대 훈련소에 갓 입소한 신병처럼 어깨를 한껏 웅크리고, 차렷 자세로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게다가 입꼬리만 억지로 끌어올린 미소는 당장이라도 쥐가 날 것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아, 아이고... 내 숨 쉰다. 찍어라."
"아니, 표정이 왜 그래요. 범죄자 머그샷 찍어? 좀 자연스럽게 웃어봐요."
"내, 내 지금 억수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긴데..."
도운이 변명하며 나름대로 눈웃음을 지어 보려 했지만, 카메라 렌즈를 쳐다보는 그의 동공은 지진이 난 듯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찰칵-
일단 여주가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찍힌 사진을 확인한 두 사람은 동시에 침묵했다.
사진 속 여주는 예쁘게 웃고 있었지만, 그 옆의 도운은 마치 어디 억지로 끌려와서 협박받으며 사진을 찍히는 인질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푸하하학! 윤도운 진짜 표정 뭐야! 나 만나기 싫은 사람 억지로 붙잡아 둔 거 같잖아!"
여주가 결국 참지 못하고 카운터에 쓰러지며 폭소를 터뜨렸다. 도운은 터질 듯이 새빨개진 귀를 양손으로 감싸 쥐며 앓는 소리를 냈다.
"아... 진짜 미치겠다. 지워라, 제발. 빨리 지워라."
"아니, 왜 이렇게 굳어? 우리 손도 잡고 뽀뽀도 다 해놓고, 사진 한 장 찍는 게 그렇게 떨려요?"
여주가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놀려대자, 도운이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였다.
"그... 스킨십은 훅 지나가는 건데, 사진은 남는 거잖아! 이렇게 딱 붙어서 렌즈 보려니까 갑자기 막 내 얼굴 어떻게 나오나 신경 쓰이고, 니는 너무 예쁜데 나는 오징어 같고... 와, 진짜 뽀뽀하는 것보다 백 배는 더 부끄럽네."
솔직하고도 찌질한(?) 도운의 항변에 여주는 배를 잡고 웃어야 했다.
평소엔 동네방네 자기 여자친구라고 자랑하고 싶다며 능글맞게 굴더니, 막상 단둘이 얼굴을 맞대고 렌즈를 쳐다보는 건 죽기보다 쑥스러워하는 이 남자.
공개적으로 티 내는 데는 아직 서툰 이 동네 연애의 온도와 너무나도 잘 맞는, 지독하게 귀여운 뚝딱거림이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오빠가 너무 부끄러워하니까 일단 이건 개인 소장만 할게."
"아! 지우라니까 진짜! 내 저거 밤에 이불 찰 거 같단 말이다!"
도운이 여주의 휴대폰을 뺏으려 손을 뻗었지만, 여주는 잽싸게 휴대폰을 주머니에 쏙 집어넣고 메롱, 혀를 내밀었다. 첫 번째 커플 셀카 시도는 그렇게 유쾌한 실패로 끝이 났다.
그날 밤 10시 30분.
퇴근길에 나선 두 사람은 늘 가던 공원이 아니라, 오늘은 도운의 텅 빈 학원 메인 연습실에 잠시 머물러 있었다.
도운이 내일 아침 일찍 쓸 악보들을 미리 세팅해 두는 동안, 여주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다리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방음문이 닫힌 연습실 안은 세상과 완벽하게 단절된 듯 아늑하고 조용했다.
조명마저 은은하게 켜져 있어 낮의 그 북적거리던 학원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스틱을 정리하고 돌아선 도운이 소파에 앉은 여주의 옆으로 다가와 털썩 주저앉았다. 낮의 일과를 모두 마친 후의 편안함이 두 사람을 감쌌다.
"도운 오빠."
"어, 와."
도운이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여주가 이미 카메라 앱을 켠 휴대폰을 두 사람의 눈앞에 들고 있었다. 낮처럼 각 잡고 포즈를 취하라고 강요하는 대신, 소파에 나란히 기대어 앉은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한 각도였다.
"어? 또, 또 찍나."
"가만히 있어 봐요. 이번엔 하나, 둘, 셋 안 할 거니까."
도운이 흠칫하며 몸을 굳히려는 찰나, 여주가 아주 자연스럽게 고개를 기울여 도운의 단단한 어깨에 제 머리를 기댔다.
"......!"
어깨에 닿아오는 여주의 부드러운 머리카락과 포근한 향기에, 카메라 렌즈를 의식해 딱딱하게 굳어가던 도운의 표정이 스르륵 풀렸다. 여주는 렌즈를 보는 대신, 고개를 살짝 돌려 도운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도운 역시 렌즈를 보지 않고, 제 어깨에 기댄 채 저를 올려다보는 여주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 카메라 앞이라는 긴장감은 사라지고, 오직 서로를 향한 다정함만이 눈빛에 가득 묻어났다.
찰칵.
셔터 소리가 조용한 연습실 안을 작게 울렸다.
"오."
찍힌 사진을 확인한 여주가 만족스러운 듯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도운도 여주의 휴대폰 화면 쪽으로 고개를 바짝 들이밀었다.
사진 속에는, 렌즈를 보며 억지로 웃는 두 사람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며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게 미소 짓고 있는 두 사람이 담겨 있었다. 도운의 눈빛은 꿀이 뚝뚝 떨어질 듯 달콤했고, 여주의 미소는 한없이 편안해 보였다.
"이건 좀 괜찮네. 아까 낮에 찍은 거에 비하면 진짜 화보 수준이다, 그치?"
여주가 뿌듯하게 묻자, 도운이 헛기침을 하며 뒷목을 문질렀다.
"뭐... 그러네. 렌즈 안 보고 너 보니까 쪼매 살 거 같더라. 나 그거 한 장만 보내주라."
"개인 소장한다니까요?"
"아, 치사하게 혼자만 보나! 내 남자친구인데!"
도운의 귀여운 징징거림에 여주는 결국 못 이기는 척, 방금 찍은 사진을 도운의 카톡으로 전송해 주었다.
다음 날 오후 2시.
학원 원장실 책상 앞에 앉아있던 도운은, 패드를 치다 말고 자꾸만 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톡, 톡.
화면을 두 번 두드려 액정을 켤 때마다, 잠금 화면에 뜬 여주와의 투샷이 환하게 빛났다. 어젯밤, 사진을 받자마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홈 화면과 잠금 화면에 설정해 둔 참이었다.
"하아... 진짜 예쁘네."
사진 속 여주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쓸어보던 도운의 입가에 바보 같은 실소가 새어 나왔다. 어제는 그렇게 사진 찍는 게 부끄러워 도망치고 싶어 하더니, 막상 둘의 첫 커플 사진이 생기고 나니 온 세상 사람들에게 다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물론 동네 장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진짜로 자랑하지는 못하겠지만.
"윤 원장님! 저 왔어요!"
"어, 지민아! 들어온나!"
학원생이 들어오는 소리에 도운은 황급히 휴대폰을 엎어두고 표정을 굳혔다.
남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어도 상관없었다. 혼자 몰래 들여다볼 때마다 심장이 간질거리는, 이 완벽한 첫 사진 한 장만으로도 도운은 세상을 다 가진 듯 배가 불렀다.
오후 3시의 커피 타임이, 벌써부터 미치도록 기다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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