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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4

오후 3시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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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도운에게는 한 가지 크고도 귀여운 고민이 생겼다.

바로 '오후 3시의 딜레마'였다.

"하아..."

오후 2시 45분. 도운은 드럼 학원 원장실 의자에 깊숙이 파묻힌 채, 벽에 걸린 시계와 제 발에 꿰인 삼선 슬리퍼를 번갈아 쳐다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원래 이 시간은 도운이 당 충전 겸, 카페 사장님 얼굴도 볼 겸 슬리퍼를 끌고 여주의 카페로 향하던 고정 루틴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어제 밤 골목길에서 손을 잡고 뽀뽀까지 한 마당에, 오늘 또 귀신같이 3시에 맞춰 쫄래쫄래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영 망설여졌다.

'이제 사장님 아이고 여자친구인데... 남자친구라고 맨날 같은 시간에 출근 도장 찍으면 너무 티 나는 거 아이가?'

게다가 낮 시간에는 보통 여주 혼자서 바쁘게 카운터를 지키고 있을 때가 많았다.

'한참 바쁠 텐데 내가 앞에서 알짱거리면 일하는 데 방해되지 않겠나. 사내연애, 아니, 동네연애 할 때는 공과 사를 딱 구분해야 어른이지. 암.'

도운은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며 합리화를 마쳤다. 오늘 하루쯤은 어른스러운 남자친구답게, 여주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3시 방문을 참아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머리로는 그렇게 다짐했지만, 3시가 훌쩍 넘어가자 지독한 카페인 금단현상과 '여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뒤섞여 도운은 연습실 패드만 의미 없이 둥둥 두드려대고 있었다.

비슷한 시각, 3분 거리의 노란 간판 카페.

여주는 행주로 이미 깨끗한 카운터를 두 번, 세 번 연거푸 닦아내며 자꾸만 벽시계 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오후 3시 10분.

아직 오지 않았다.

'뭐지? 오늘 입시반 보충이 늦게 끝나나?'

오후 3시 30분.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았다.

딸랑-

"어서 오세... 아, 대리님 오셨어요."

종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화색을 띠었던 여주는, 익숙한 단골손님의 등장에 애써 미소를 유지하며 주문을 받았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기대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묘하게 실망감이 차올랐다.

오후 4시를 넘어가자, 여주의 머릿속은 온통 도운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진짜 안 오네. 바쁜가? 아니, 아무리 바빠도 카톡 한 통은 남길 수 있잖아. 어젯밤에는 그렇게 손 꼭 잡고... 아, 미쳤어. 여주야. 너 왜 이래.'

여주는 스스로가 어이없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원래 3시는 그저 도운이 커피를 사러 오던 시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동네 지인'이 '남자친구'로 바뀐 순간, 그 평범했던 루틴은 여주의 하루를 통째로 흔들어놓고 있었다.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왜 안 오지?' 하고 서운해서 신경 쓰이고.

만약 제시간에 왔으면 또 왔다는 이유로 '아, 옷매무새 괜찮나?' 하고 미치도록 의식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윤도운이라는 존재 하나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고 있는 꼴이었다. 여주는 결국 툴툴거리며 제빙기에서 얼음을 퍼 담았다.

"진짜... 웃겨. 밤에는 그렇게 훅 들어오더니, 낮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오후 5시 30분.

본문 삽화

결국 참다못해 항복을 선언한 도운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참았던 시간이 무색하게, 여주의 얼굴을 보자마자 도운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커다란 미소가 번졌다.

"어... 여주야. 내 왔데이."

도운이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카운터 앞으로 다가왔다. 여주는 머그잔을 정리하다 말고 슬쩍 고개를 들어 도운을 쳐다보았다. 반가운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장장 두 시간 반이나 기다리게 만든 괘씸함에 여주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여주는 애써 시선을 컵에 고정한 채 짐짓 시큰둥한 목소리로 툭, 한마디를 던졌다.

"오셨네요. 오늘은 커피 생각이 없으셨나 봐요? 평소엔 3시만 되면 귀신같이 오시더니."

"어?"

도운이 눈을 깜빡였다.

약간 뾰로통하게 튀어나온 여주의 입술, 그리고 '평소엔 3시만 되면'이라고 콕 집어 말하는 그 타이밍.

조금 둔한 편인 도운이었지만, 이 상황에서 저 말이 의미하는 바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지금... 내 기다린 거가?'

도운의 머릿속에 그 문장이 스쳐 지나가자마자, 도운의 입가에 씰룩거리던 미소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번져나갔다. 광대가 승천할 기세였다. 도운은 기어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어깨를 들썩였다.

"뭐, 뭐예요. 왜 웃어요."

여주가 민망함에 목소리를 살짝 높이자, 도운이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터질 듯이 붉어진 귀끝과,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강아지 같은 눈망울이 여주를 향했다.

"여주야."

"왜요."

"혹시... 오늘 나 기다렸나?"

도운의 돌직구에 이번엔 여주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속마음을 들켜버린 여주가 시선을 홱 피하며 포스기 화면만 의미 없이 툭툭 두드렸다.

"기, 기다리긴 누가 기다려요. 그냥... 평소에 맨날 오던 사람이 안 오니까, 어디 아프기라도 한가 싶어서 쫌 궁금했던 거지."

"와... 나 진짜... 지금 너무 좋아서 소리 질러도 되나?"

도운이 카운터 위로 두 팔을 짚고 몸을 쑥 내밀며 여주와 눈을 맞췄다. 여주가 당황해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섰지만, 도운의 눈빛은 달콤하다 못해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 소리는 무슨.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요. 오빠 오늘 진짜 왜 늦게 온 건데요? 바빴어요?"

여주의 추궁에 도운이 쑥스러운 듯 뒷목을 긁적였다.

"아니... 바빴던 건 아이고. 이제 남자친구인데, 맨날 같은 시간에 출근 도장 찍으면 사... 아니, 여주 너 일하는 데 쪼매 방해될까 봐. 티 날까 봐 눈치 보여서 한 번 참아봤지."

"참기는 뭘 참아요."

"그러게. 앞으로는 안 참을란다. 우리 여주가 나 안 와서 이렇게 서운해할 줄 알았으면, 2시 50분부터 와서 진을 치고 있을걸."

"아, 서운한 거 아니라고요!"

여주가 발끈하며 부인했지만, 도운은 이미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큭큭거리며 웃고 있었다. 도운이 슬쩍 손을 뻗어 카운터 위에 올려져 있던 여주의 손등을 톡톡, 다정하게 두드렸다.

"미안, 미안. 내가 생각이 쪼매 짧았네. 앞으론 3시 땡 치면 무조건 올게. 그러니까 그렇게 입술 내밀고 있지 마라, 귀여워 죽겠으니까."

도운의 능글맞으면서도 다정한 달램에, 억지로 뾰로통한 척을 유지하던 여주의 입가에도 결국 픽,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가 귀엽대요. 커피나 마셔요, 윤 원장님."

"예, 사장님. 아주 진하게 타주이소."

3분 거리 연애의 치명적인 단점은, 상대방의 부재가 너무나도 크고 선명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내가 보고 싶을 때, 상대방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 단 3분이면 달려가 그 허전함을 채워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주는 도운을 위해 어느 때보다 정성스럽게 탬핑을 하며,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어쩌면 내일부터는, 매일 오후 2시 50분마다 거울을 보며 틴트를 덧바르게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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