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y Day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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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9

한 화분에서 두 집으로

작가의 한마디

약속했던 목요일 저녁, 두 사람은 미리 정해둔 일식당에 마주 앉았다. 모츠나베가 담긴 전골냄비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부드럽게 익은 곱창과 채소가 진한 국물과 함께 줄어들고 있었다.

"국물 좀 남았는데. 면 사리 하나 시킬까?"

성진이 메뉴판을 집어 들며 물었다. 진주는 국자에 반쯤 남은 국물을 앞접시에 덜어내며 잠깐 고민했다.

"음, 나 좀 배부른데. 너 혼자 다 먹을 수 있어?"

"하나 시켜서 나눠 묵자. 정 배부르면 내 다 묵을게."

"알았어. 그럼 하나만 추가해."

성진이 직원을 불러 사리를 주문했다.

"주말에는 뭐 할 건데?"

보글거리는 국물 위로 면을 밀어 넣으며 성진이 물었다.

"아, 토요일에 화분 좀 정리하려고. 몬스테라."

"화분? 분갈이?"

"분갈이 말고 가지치기. 화분을 창가에서 조금 빼놓으니까 공간은 괜찮은데, 옆으로 너무 길게 뻗은 줄기가 하나 있어서 자꾸 커튼에 걸리더라고. 그래서 그쪽만 좀 잘라내려고. 인터넷 찾아보니까 줄기 잘라서 물에 꽂아두면 뿌리 내린다던데."

진주가 면이 익기를 기다리며 젓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성진은 면을 뒤적이던 국자를 내려놓았다.

"그거 잘라낸 거, 내 주면 안 되나."

"너?"

"어. 두 달 동안 돌봐보니까 생각보다 재밌더라고. 아침에 잎 한 번 보고, 흙 말랐나 보는 것도 습관이 됐고…… 니가 화분 가져가고 나니까, 집에 들어갈 때마다 창가부터 먼저 보게 되더라."

진주는 성진의 빈 창가를 떠올렸다. 화분이 워낙 컸으니, 두 달 동안 정이 들었으면 허전할 만도 하겠다 싶었다.

"안 그래도 자르고 나면 화분을 하나 더 늘려야 하나 고민했는데. 안 될 거 없지."

"오, 고맙디"

"토요일에 자를 건데, 오후에 우리 집으로 올래? 나 혼자 자르는 것보다 같이 보고 자르는 게 낫겠다."

"어. 내가 갈게. 몇 시쯤 갈까."

"두 시쯤? 올 때 잘라낸 거 담을 빈 병 하나만 챙겨와."

성진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꺼냈다. 몬스테라 삽목을 검색해보는 그의 모습을 보며, 진주는 전골냄비에 남은 마지막 사리를 건져 먹었다.

토요일 오후, 진주는 거실 창가 화분 옆에 낡은 신문지를 넓게 깔고 원예용 전정가위를 꺼내 두었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자, 성진이 한 손에 깨끗하게 씻은 길쭉한 유리병을 들고 서 있었다.

"왔어? 병 챙겨왔네."

"어. 라벨 다 떼고 뜨거운 물로 소독도 한 거다. 바로 화분 자를 거가?"

"화장실 가서 손부터 씻고 와. 장갑도 껴야 하니까."

성진이 손을 씻고 나오는 사이, 진주는 작업용 라텍스 장갑 두 켤레를 꺼냈다. 거실로 돌아온 성진은 쪼그려 앉아 화분부터 살폈다.

"야, 이거 내 있을 때 났던 그 잎사귀네."

그는 두 달 동안 자신이 돌볼 때 돋았던 새잎을 단번에 알아보고는 반가운 듯 손끝으로 살짝 쓰다듬었다.

"자를 거는 그거 말고, 이쪽."

진주가 화분 반대편으로 길게 뻗은 줄기를 가리켰다. 다른 줄기들보다 굵고 튼튼하게 자라 화분 바깥쪽으로 훅 휘어진 모양새였다.

성진은 자신이 가져갈 줄기를 유심히 살피더니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다.

"이거 잎이 생각보다 큰데. 꽂아놓으면 병은 보이지도 않겠다."

"누가 열심히 키워주신 덕분에~"

진주가 가볍게 웃으며 받아쳤다. 성진도 머쓱한지 뒤통수를 긁적이며 따라 웃었다.

"자, 여기 봐봐. 이 부분 자르면 될 것 같은데."

진주가 휴대폰 화면을 켜서 인터넷에서 찾아둔 삽목 안내 사진을 성진에게 내밀었다. 건강한 잎과 함께 마디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쪼그려 앉아 휴대폰 화면과 실제 화분을 번갈아 보며 위치를 가늠했다.

"요 마디 아래를 자르라는데…… 사진이랑 실제랑 방향이 좀 달라서 헷갈리네."

진주가 휴대폰을 이리저리 돌려보자, 성진도 고개를 바짝 들이밀며 화면을 살폈다. 두 사람의 고개가 거의 닿을 듯 가까워졌다.

"이 사진은 줄기가 왼쪽으로 휘었는데, 우리 거는 오른쪽으로 뻗어 있잖아. 그러니까 이 마디 기준으로…… 요 아래쪽, 여기를 잘라야지."

성진이 화분의 한 지점을 정확히 짚어냈다. 진주는 그가 짚은 곳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 거기 맞네."

고개를 돌리다 성진의 어깨에 살짝 부딪힌 진주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성진도 덩달아 웃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내가 자를 테니까, 너는 자르고 나서 줄기 안 떨어지게 잘 잡아."

"알았다. 잎사귀 안 다치게 줄기만 딱 잡으라 이거지."

진주가 전정가위를 들고 절단할 위치에 날을 댔다. 성진은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줄기 아랫부분을 받쳤다.

"조금만 더 위로 잡아줄래?"

"이리?"

"응. 자른다."

'뚝' 하는 소리와 함께 굵은 줄기가 잘려 나갔다. 성진의 두 손에 커다란 잎사귀 하나와 마디가 달린 줄기가 묵직하게 남았다.

진주는 화분에 남은 줄기의 절단면과 수형을 한 걸음 물러서서 살폈다. 성진은 자신의 손에 들린 줄기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거대한 화분에 속해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하나만 따로 떼어놓고 보니 잎의 크기가 새삼 어마어마했다.

"와, 이거 진짜 가분수 같겠다."

성진이 바닥에 놓인 빈 유리병 옆에 줄기를 대보며 웃었다. 진주도 그 모습을 보고 실소를 터뜨렸다.

"바닥 넓고 묵직한 병으로 가져오길 잘했네."

"뿌리내릴 때까지만 어찌 잘 버텨봐야지. 물은 요 마디까지만 오게 부으면 되나?"

"응. 잎은 물 밖으로 나오게 하고, 줄기 끝이랑 마디만 물에 잠기게."

두 사람은 화분 양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삽수를 조심스럽게 물이 담긴 유리병 안에 꽂아 넣었다. 커다란 잎사귀가 병 바깥으로 우산처럼 펼쳐졌다. 성진이 병이 쓰러지지 않도록 각도를 조금 조절하자, 나름대로 안정적인 모양새가 갖춰졌다.

원래의 커다란 몬스테라 화분과, 그 옆에 놓인 유리병. 두 사람은 한 화분에서 나뉜 두 개의 식물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집에 가면 그 창가 쪽에 둘 거야?"

진주가 물었다.

"어. 근데 바닥에 바로 놓으면 병이 너무 낮아가, 침대 옆에 두던 작은 협탁 하나 빼와서 그 위에 올려두려고."

"그 탁자 위에 이것저것 많이 올려두지 않았어?"

"다 치웠다. 이거 하나만 딱 올려놓을 거다."

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뿌리 튼튼하게 잘 내리면, 나중에 흙에 옮겨 심을 때 예쁜 화분 하나 같이 고르자."

"어. 뿌리 날 때까지 안 죽이고 잘 키워볼게."

작업을 마친 뒤, 성진은 바닥에 깔았던 신문지를 접어 정리하고 진주는 가위와 주변을 치웠다. 나란히 화장실에서 장갑을 벗고 손을 씻고 나온 진주가 주방으로 가 차를 탔다.

진주가 찻잔 두 개를 식탁에 놓자, 성진은 자연스럽게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차 마셔."

진주가 자신의 찻잔을 들며 자리에 앉았다.

"거실장 바꿨네. 원래 나무색 아니었나."

"저번에 파견 가기 전에 바꿨잖아. 화이트가 더 깔끔해 보여서."

성진은 미처 눈여겨보지 않았던 거실장을 가리키며 머쓱하게 웃었다. 식물로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따뜻한 차를 홀짝이던 진주의 시선이 식탁 한쪽에 놓인 유리병으로 향했다. 가지치기도 끝났고, 성진이 가져갈 삽수도 무사히 물에 꽂혔다. 오늘 약속했던 용건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진주는 아직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진주는 찻잔을 소리 나지 않게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성진아."

식물 이야기도, 일 이야기도 아니었다.

"나, 요즘 너랑 만나는 시간 좋아."

성진이 차를 마시려다 멈칫하고 진주를 바라보았다.

"네가 다시 연락했을 때는 왜 그랬는지 궁금해서 나갔던 거였는데…… 요즘은 그냥, 너 만나서 밥 먹고 얘기하는 게 재밌어. 다음에는 무슨 얘기할까 기대도 되고."

진주는 성진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나, 너랑 다시 만나고 싶어."

성진이 들고 있던 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잠깐 진주를 바라보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도. 다시 만나고 싶었다."

진주는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근데 다시 만나면, 나 혼자 기다리면서 속 끓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어. 약속 바뀔 일 있으면 알게 되는 대로 말할게."

성진이 탁자 위로 손을 내밀었다. 진주가 그 손에 자기 손을 얹었다. 성진은 진주의 손 전체를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

진주는 막상 손을 잡고 나니 조금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뭘 그렇게 웃어."

자꾸만 실실 새어 나오는 성진의 웃음을 보며 진주가 가볍게 핀잔을 주었다.

"좋아서. 좋아서 웃지."

성진은 굳이 변명하지 않고 자신의 기분을 솔직하게 내비쳤다. 진주도 마주 웃으며 잡힌 손을 조금 당겼다. 식탁 위의 차는 이미 미지근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성진이 찻잔을 들려고 잡은 손을 잠깐 놓았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더니, 다시 진주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계속 잡고 있을 거야?"

진주가 어이가 없으면서도 묘하게 간지러운 기분에 헛웃음을 쳤다. 성진은 웃으며 손가락을 조금 더 고쳐 쥐었다.

"저녁은 어떻게 할래? 먹고 갈래?"

"어. 뭐 시켜 묵을까, 아니면 나가서 묵고 들어올까."

"음…… 냉장고에 파스타 면 남은 거 있는데, 나가서 소스랑 샐러드 야채만 조금 사 올까?"

"그래. 같이 장 보러 가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저녁 메뉴를 정하고 함께 마트에 갈 계획을 세웠다.

"아 맞다. 이거 나중에 뿌리 나면 사진 찍어서 보내줄게."

성진이 탁자 한구석에 놓인 유리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진? 저번에 보여준 사진처럼, 똑같은 각도로 열 장씩 보내는 거 아니야?"

"아이다. 그때는 진짜 다 다른 사진이었다니까."

진주의 장난 섞인 놀림에 성진이 발끈하며 항변했다. 진주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킥킥 웃었다.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낸 뒤, 성진이 돌아갈 채비를 했다.

진주는 병 입구에 랩을 둘러 물이 튀는 것을 막았다. 종이봉투 바닥에 병을 세운 뒤 접은 신문지를 둘러 흔들리지 않게 받치고, 잎은 봉투 밖으로 나오게 했다.

"조심히 들고 가."

현관문 앞에서 진주가 포장된 삽수를 성진에게 건넸다. 커다란 잎이 문에 걸리지 않도록 진주가 잠깐 옆으로 비켜섰다.

성진은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봉투를 받아 들고, 남은 빈손으로 진주의 손을 다시 한번 꼭 잡았다.

"어. 도착하면 톡 할게."

성진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것을 확인한 진주는 문을 닫고 거실로 돌아왔다. 창가에는 여전히 푸르고 풍성한 몬스테라 화분이 놓여 있었다.

한 시간쯤 뒤, 성진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박성진
[사진]
본문 삽화

사진 속에는 성진의 거실 창가 근처, 작은 협탁 위에 놓인 유리병이 찍혀 있었다. 병 위로 펼쳐진 잎이 워낙 커서, 화면에서는 마치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방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진주
병에 비해 잎이 너무 커서 뭔가 웃겨.
박성진
내일 아침에 해 들어오면 자리 다시 한 번 잡아보려고.

진주도 자신의 거실 창가에 남은 원래의 몬스테라 화분을 찍어 성진에게 보냈다. 조금 전까지 한 화분에서 영양분을 나누며 자라던 식물이, 이제는 서로 다른 배경을 뒤로 한 채 사진 속에 담겨 있었다.

진주는 성진이 보낸 사진을 다시 열어, 화면을 두 손가락으로 주욱 늘려 병이 놓인 자리를 확대해 보았다. 사진 속 거실의 풍경을 살피다 보니, 그곳에 가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진주는 휴대폰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다음에는 저 작은 식물을 직접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한마디

간질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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