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y Day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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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0

같이 키우는 사이

작가의 한마디

몬스테라 가지를 잘라 성진에게 건넨 지도 어느덧 3주가 지났다.

퇴근 후 씻고 나와 소파에 길게 누워 있던 진주의 휴대폰이 징 울렸다. 화면을 켜자 성진이 보낸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사진 속 유리병 안쪽에는 허옇고 굵은 뿌리 서너 가닥이 제법 길게 뻗어 내려와 있었다. 처음 진주의 집에서 잘라갔을 때는 매끈한 마디와 줄기뿐이었는데, 이제는 굳이 눈을 크게 뜨지 않아도 물속에 자리 잡은 뿌리의 형태가 선명하게 보였다.

성진은 가져간 날부터 정말로 꾸준히 식물의 상태를 찍어 보냈다. 똑같은 각도의 사진을 하루에도 여러 장씩 보내며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지만, 며칠에 한 번꼴로 '이만큼 늘었다'며 자기가 찾아낸 미세한 변화를 공유하곤 했다. 진주의 눈에는 유리병의 물 높이나 빛의 반사만 달라졌을 뿐, 뿌리의 차이를 도무지 알아보기 힘든 날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오늘 도착한 사진만큼은 진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박성진
이 정도면 이제 흙에 옮겨도 되나.

질문 위로 3주 전 자신이 했던 말이 겹쳐 떠올랐다. 뿌리가 튼튼하게 내리면 흙에 옮겨 심을 화분을 같이 고르자던 약속이었다. 진주는 몸을 일으켜 앉으며 자판을 두드렸다.

이진주
뿌리 많이 났네. 이번 주 토요일에 너희 집 근처 화원이나 식물 가게 같이 가볼까?
박성진
좋다. 점심 묵고 만나자.

약속은 복잡한 절차 없이 곧바로 정해졌다. 대화방을 닫으려는데 성진의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박성진
얘 이제 병 좁다.

진주는 성진이 보낸 사진을 두 손가락으로 둥글게 밀어 확대해 보았다. 밑으로 뻗어 난 뿌리를 담기엔 유리병이 확실히 비좁아 보였다. 무엇보다 바닥이 넓고 묵직한 유리병 위로 거대한 몬스테라 잎 하나가 툭 튀어나와 우산처럼 펼쳐진 모습이 못내 우스꽝스러웠다. 진주는 소리 내어 웃으며 휴대폰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토요일 오후, 진주는 성진의 아파트 현관문 앞에 섰다.

초인종 버튼을 누르자 안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달칵 하고 도어락이 열렸다.

"왔나."

"응."

성진이 몸을 틀어 문을 열어젖혔다. 진주는 자연스럽게 현관 안으로 발을 들이며 운동화를 벗었다.

거실로 걸음을 옮기자마자 시선은 곧바로 창가 쪽으로 향했다. 진주가 사진으로 보았던 작은 협탁이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에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유리병이 묵직하게 놓여 있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실제로 마주한 비율이 훨씬 우스웠다.

진주가 협탁 가까이 다가가자 성진도 곁으로 다가왔다.

"진짜 나무 한 그루 같다."

"내가 뭐라 했노. 병 바꿔야 된다니까."

진주가 조심스럽게 유리병을 들어 올렸다. 물을 머금은 굵은 뿌리들이 유리병 안쪽 벽을 둥글게 타고 돌며 건강하게 뻗어 있었다. 아침에 해가 드는 방향에 맞춰 협탁의 위치를 조금씩 옮겨주고 물을 갈아주었다는 성진의 목소리가 귀 옆에서 들려왔다.

진주는 병을 협탁 중앙에 반듯하게 다시 내려놓았다.

"잘 키웠네."

"그라제."

성진이 턱을 살짝 치켜들며 아주 당당하게 대답했다. 쑥스러워하거나 겸손을 떠는 기색 없이 온전히 긍정하는 그 뻔뻔함에 진주는 가볍게 눈흘김을 보냈다.

화분을 사러 나가기 전, 성진은 외투를 챙겨 입으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자신이 그동안 찍어둔 성장 사진을 보여주겠다며 진주 쪽으로 화면을 내밀었다.

진주는 며칠에 한 번씩 메시지로 받았던 사진이 전부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성진이 열어 보인 갤러리 앨범 안에는 유리병 사진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너 무슨 관찰일지를 썼어?"

"아니다. 그냥 물 갈아줄 때마다 한 장씩 남긴 기다."

진주가 성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받아 들고 화면을 옆으로 빠르게 넘겼다. 배경인 거실 창틀과 커다란 잎사귀는 미동도 없는데, 유리병 안의 끄트머리에서 돋아난 뿌리만 아주 미세하게 자라나는 모습이 플립북처럼 이어졌다.

따로 한 장씩 볼 때는 몰랐는데, 연속으로 넘겨보니 묘한 쾌감이 있었다. 뿌리가 처음 좁쌀처럼 하얗게 비집고 나온 날, 그 가닥이 두 갈래로 갈라진 날, 그리고 병의 바닥을 향해 길게 뻗어 내려간 날의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진주는 화면 아래쪽에 작은 별 모양이 채워진 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뿌리가 껍질을 뚫고 처음 밖으로 고개를 내민 날짜에 찍힌 사진이었다.

"여기에 별표는 왜 해놨어?"

"어? 그냥…… 별생각 없이 누른 기다."

성진이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진주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사진을 몇 장 더 넘겼다. 유리병 사진들이 이어지던 중간에 불쑥 낯선 피사체가 등장했다.

최근 데이트를 하던 날, 진주가 카페에서 메뉴판을 올려다보고 있는 뒷모습과 길을 걷다 잠시 멈춰 서서 핸드폰을 보는 옆모습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진주는 화면을 넘기던 엄지손가락을 멈췄다. 성진 역시 갤러리를 구경하던 진주의 어깨너머로 화면을 보고 있다가 헛기침을 했다.

진주가 고개를 돌려 성진을 빤히 바라보자, 그가 황급히 손을 뻗어 휴대폰을 낚아챘다.

"슬슬 나가자. 식물 가게 문 닫는다."

뒤늦게 자기 앨범이 너무 무방비하게 공개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성진이 화면을 끄며 변명했다. 진주는 굳이 사진에 대해 캐묻거나 놀리지 않고, 웃음을 참으며 겉옷을 챙겼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조금 걷자, 길가에 화분들을 잔뜩 내어놓은 식물 가게가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서니 흙냄새와 물기를 머금은 식물 특유의 향이 확 풍겨왔다.

두 사람은 빈 화분들이 진열된 코너로 향했다. 진주는 가장 먼저 화분의 색깔과 모양을 눈으로 훑었다. 무광의 깔끔한 베이지색 도기 화분이 마음에 들어 손을 뻗자, 옆에 섰던 성진이 그보다 먼저 화분을 들어 올려보았다.

본문 삽화

"이거 너무 무겁다. 물 주려고 들었다 놨다 하려면 손목 아프다."

성진은 진주가 고른 화분을 내려놓고, 그 옆에 있는 가벼운 플라스틱 재질의 화분을 집어 들었다. 바닥에 배수구가 시원하게 뚫려 있고 크기도 넉넉했다.

"집에 저걸 왜 둬. 색깔도 칙칙하고 안 예쁘잖아."

"물 잘 빠지고 가벼운 게 최고지. 식물한테도 이게 낫다."

"아무리 그래도 저 디자인은 안 돼. 거실에 둘 건데."

성진은 실용성과 무게를 따졌고, 진주는 인테리어와 조화를 따졌다. 두 사람은 진열대 앞을 서성이며 화분들을 하나씩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결국 두 사람의 타협점은 질감이 살아 있는 짙은 회색의 테라코타 화분이었다. 디자인도 투박하면서 멋스러웠고, 플라스틱만큼은 아니지만 자기 화분보다는 훨씬 가벼웠다. 삽수의 크기를 고려해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크기를 골랐다.

"이거는 니 집 거처럼 무거운 거 하지 말자."

성진이 화분을 옆구리에 끼며 말했다.

"왜?"

"나중에 또 옮길 때 허리 나간다."

진주는 지하 주차장에서 커다란 몬스테라 화분을 낑낑대며 트렁크에 싣던 그날을 떠올리며 소리 내어 웃었다. 성진도 화분을 고쳐 들며 씨익 웃었다.

분갈이에 필요한 배양토와 바닥에 깔 배수망까지 알뜰하게 챙긴 두 사람은 계산대로 향했다. 성진이 카드를 꺼내려 하자, 진주가 한발 앞서 지갑을 열었다.

"내가 살게."

"내 식물인데 왜 니가 사노."

"내가 줄기 잘라줬잖아. 화분은 내가 사주고 싶어서 그래."

"그래서 양육비까지 내겠다고?"

"양육비는 좀 웃기다."

진주가 카드를 꺼내며 실소를 터뜨렸다. 성진은 계산대 위에 놓인 흙과 부자재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

"그럼 흙은 내가 살 테니까 놔둬라. 반반 내면 되지."

실랑이 끝에 화분은 진주가, 흙과 부자재는 성진이 계산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성진의 집 거실 한가운데에 신문지를 넓게 펴고 방금 사 온 화분과 흙을 올려두었다.

성진이 협탁 위에 있던 유리병을 조심스럽게 가져와 신문지 위에 놓았다. 진주가 유리병 안에서 삽수를 천천히 수직으로 들어 올렸다. 물 밖으로 나온 뿌리들은 병 안에서 구부러져 있던 것보다 훨씬 길고 튼튼해 보였다.

"뿌리 안 다치게 조심해라."

진주가 뿌리를 손끝으로 살짝 만져보려 하자 성진이 다급하게 주의를 주었다.

"이거 원래 내 애였거든?"

"인자는 내 집에서 내가 키운 내 애지."

성진이 화분 바닥의 배수구 위에 망을 깔았다. 진주가 준비해 온 배양토를 절반쯤 채운 뒤 가지를 정중앙에 세웠다. 커다란 잎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진주가 가지를 수직으로 곧게 잡고 있는 동안, 성진이 모종삽으로 빈 공간에 흙을 퍼 담았다.

"흙 너무 꾹꾹 누르지 마. 숨 못 쉰다니까."

"안 누르면 흔들리가 넘어갈 건데."

"물 주면 흙 가라앉으면서 알아서 자리 잡아. 겉에만 살짝 다독여."

진주가 성진의 손을 툭 치며 흙을 고르게 펴주었다. 흙 높이가 적당히 채워지자, 진주는 화분을 바닥에 통통 두드려 흙 사이의 빈 공간을 메워주었다.

화장실로 화분을 들고 가 샤워기로 첫 물을 흠뻑 주었다. 화분 바닥의 배수구로 흙물이 시원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그 앞에 나란히 쪼그려 앉아 있었다.

물이 다 빠진 화분을 닦아 협탁 위에 올렸다. 커다란 잎사귀 하나뿐이지만, 흙에 단단히 박혀 있는 모습은 전보다 훨씬 그럴듯한 하나의 화초처럼 보였다. 커다란 몬스테라 자리에 이파리 하나가 심어진 화분이 놓였다.

진주가 뒷짐을 지고 몇 발짝 떨어져서 화분을 감상했다.

"좀 집 같다."

"원래도 집이다."

"식물 집."

진주의 대꾸에 성진이 픽 웃음을 터뜨렸다.

분갈이를 끝내고 신문지와 남은 흙을 정리한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기대앉았다.

성진이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협탁 위의 화분을 향해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었다. 화면 안에서 요리조리 각도를 맞추며 셔터를 누르는 모습을 보던 진주가 기가 차다는 듯 물었다.

"오늘부터 또 매일 찍게?"

"처음 일주일은 좀 봐야지. 흙에 적응하는지 못 하는지."

"찍고 혼자만 보지 말고 사진 보내."

"니도 큰 거 사진 보내라."

진주는 자기 집에 둔 본체 화분에서도 요즘 새순 하나가 뾰족하게 올라오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언제부터?"

"한 며칠 됐어."

"왜 인자 말하는데."

성진이 미간을 좁히며 과장되게 서운한 척을 했다.

"그럼 뭐, 서로 매일 보고라도 해야 돼?"

"해도 되고."

"우리 무슨 공동양육자야?"

진주가 어이없다는 듯 쏘아붙였다. 성진은 그 말을 듣고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몬스테라 공동양육자."

성진의 뻔뻔한 받아치기에 진주가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럼 양육비 보내? 두 달 동안 화분 키워준 값."

"공동양육자다 안 하나. 바로 돌려보내지."

성진이 휴대폰 갤러리를 조작하더니 진주의 메시지 창으로 링크 하나를 보냈다. [몬스테라]라는 이름의 사진 공유 앨범이었다. 성진이 방금 찍은 화분 사진이 앨범의 첫 번째 사진으로 올라와 있었다. 진주는 그 초대를 수락하며, 집에 돌아가면 새순 사진을 찍어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해가 지고 거실이 어둑해질 무렵, 두 사람은 탁자 위에 분식 그릇을 늘어놓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진주는 이번 주 내내 시달렸던 전시 후속 보고서 작성에 대해 털어놓았고, 성진은 다음 주에 있을 거래처 방문 일정의 번거로움을 이야기했다.

"주말에도 일하는 거래처는 이래서 힘들다니까. 미팅이 토요일에 잡혀가."

김밥을 씹던 성진이 먼저 자신의 주말 일정을 알렸다. 진주도 머릿속으로 다음 주 계획을 훑었다.

"그럼 다음 주 토요일에는 미팅 끝나고 우리 집에서 볼까? 큰 화분에 새순 나는 거 보러 와."

성진이 빈 컵에 물을 따르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걔도 내 같이 키웠다 아이가."

"두 달 키워놓고 지분 주장하네."

"새잎 하나는 확실히 내 지분이다."

"절대 아니거든."

진주가 라면 국물을 떠먹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갈 준비를 마친 진주가 현관에서 운동화 끈을 묶었다. 성진이 그 옆에 나란히 서서 진주가 신발 신는 것을 지켜보았다.

진주는 끈을 다 묶고 몸을 일으키다 말고 거실 쪽을 한 번 돌아보았다. 창가의 협탁 위, 새로운 테라코타 화분 안에 심긴 작은 몬스테라가 눈에 들어왔다.

성진이 현관 벽에 어깨를 기대며 물었다.

"다음 주 토요일 몇 시가 좋노."

"너 미팅 끝나면 몇 시쯤인데? 난 세 시부터가 좋아."

"그럼 세 시."

"또 '부터' 빼먹네."

진주의 핀잔에 성진이 실없이 웃었다.

"일찍 보면 좋잖아."

그의 직진하는 말에 진주가 잠깐 그를 바라보다가,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숨기지 않고 마주 웃었다.

"알았어. 세 시."

-완결

작가의 한마디

화분 흙은 거름망에 잘 걸러졌습니다. 데이트 장면을 원하시면 말씀해주세요… 다른 거 쓰면서 외전 쓰러 또 올게요..!

이야기 속 내 이름

한글 이름을 입력하면 조사가 함께 바뀝니다. 이 기기에만 저장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