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y Day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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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5

너는 요즘 뭐 해

작가의 한마디

토요일 저녁, 진주는 파견 때 가져갔던 짐가방을 거실 바닥에 펼쳐놓고 완전히 비워내는 중이었다. 옷과 세면도구는 어제 미리 빼두었지만, 현장 수첩이나 예비 충전기, 영수증을 쑤셔 넣은 작은 파우치가 아직 바닥에 굴러다녔다.

진주는 주머니에서 꺼낸 수첩을 책장에 꽂으려다 무심코 첫 장을 펼쳤다. 현장에서 선 채로 급하게 갈겨쓴 메모와 알아보기 힘든 화살표들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이제는 자신도 무엇을 적어둔 것인지 바로 기억나지 않는 페이지를 잠깐 들여다보던 진주는 이내 수첩을 덮었다.

바닥에 둔 휴대폰 화면은 까맸다. 성진에게서 온 새로운 연락은 없었다. 진주는 어제 사과를 마친 뒤 그가 왜 연락하지 않는지 깊게 따져보지 않았다. 대신 전날 카페에서 마주 앉아 자신의 이야기는 실컷 쏟아냈으면서, 정작 성진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올랐다.

진주는 가방 옆에 쪼그려 앉은 채로 메신저 앱을 열었다. 성진과의 대화방에는 금요일 만날 시간을 정하고 역 출구를 확인했던 짧은 문자들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었다.

이진주
요즘 회사는 어때? 많이 바빠?

전날 그가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이 먼저 연락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조금 신경 쓰였다.

진주는 휴대폰을 가방 옆에 내려두고 충전기 선을 정리했다. 서랍을 닫고 돌아왔을 때 답장이 와 있었다.

박성진
디퓨저 브랜드에 제안하던 거 이번 주에 주문 들어왔다. 다음 주는 새 거래처 미팅 준비하고.
이진주
나 내려가기 전에 샘플 보냈던 데? 이제?
박성진
중간에 원하는 향이 바뀌어가 다시 했다.
이진주
어떻게 바뀌었는데?

진주는 메시지를 보내고 파우치를 열었다. 영수증 사이에서 동전이 몇 개 굴러나왔다.

이진주
오늘도 회사야?
박성진
집이다. 밥 먹고 치우는 중.
박성진
통화되나?

진주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성진이 전화를 받았다.

"어, 잠깐만. 물 좀 끄고."

물소리가 멎고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달달한 꽃향으로 해달라 했거든. 근데 샘플 받아보더니 나무 향 나는 쪽으로 바꿀 수 있냐더라."

"그럼 아예 다른 거 아니야?"

"어. 개발팀에 다시 요청해서 샘플 받고, 그거 들고 또 갔다."

"많이 왔다 갔다 했겠네."

"향 고르고 나니까 이번에는 수량이 바뀌어가 견적 다시 내고. 주문서 들어왔길래 그제야 납품 날짜 잡았다."

진주는 휴대폰을 가까이 내려놓고 파우치에서 나온 동전을 모았다.

"그래도 됐네."

"어. 이번에는 진짜."

진주가 작게 웃었다. 전화 너머에서 그릇을 내려놓는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니는 파견 어땠는데. 내려가기 전에 도면이랑 실제 배치가 다를 수도 있다 안 했나."

"실측해서 보내준 거라더니 역시나 도면이랑 실측이랑 다르더라고. 그래서 현장 가서 다 다시 잡았지."

"그럼 배치랑 다 바꿨겠네."

"응. 안내판 세워놓고 입구에서 걸어와 보기도 했어. 어느 쪽에서 잘 보이는지 확인하고 사진까지 찍어뒀거든."

진주는 책장에 꽂았던 수첩을 다시 꺼냈다. 접어둔 페이지를 펼치자 입구 양쪽에 그린 화살표와 동그라미가 나왔다.

"근데 개장하고 얼마 안 돼서 전시장 쪽에서 자기네 배너를 옮긴 거야. 홍보가 잘 안 된다면서 로비 정면에서 보이게."

"니네 안내판 앞으로?"

"바로 옆으로. 정면에서는 둘 다 보여. 근데 주출입구에서 들어오는 방향에서는 그 배너가 우리 안내판을 딱 가렸어. 예약자 입장하는 쪽 표시가."

"옮긴다고 말은 안 하고?"

"응. 우리 쪽에 얘기한 사람이 없었어."

진주는 수첩 위에 검지로 선을 그었다.

"예약한 사람은 오른쪽으로 바로 들어가고, 현장에서 표 살 사람만 왼쪽으로 가야 했거든. 근데 들어오면서 안내판을 못 보니까 그냥 눈앞에 있는 줄 뒤에 서는 거야."

"표 있는 사람도?"

"응. 입장하는 줄인 줄 안 거지. 발권하는 직원이 이상하다고 연락했을 때는 예약자들이 이미 그 줄 중간중간에 섞여 있었어."

성진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

"그럼 시간 다 밀렸겠네."

"첫 회차부터. 앞에서는 표 있는 분들 이쪽으로 오시라고 빼내고, 뒤에서는 왜 저 사람들만 먼저 보내냐고 하고. 이미 예약 시간 지났다고 환불해달라는 얘기도 나왔어."

진주는 그때 적은 메모 옆에 붙어 있는 작은 포스트잇을 떼었다가 다시 붙였다.

"일단 직원 한 명 갈림길에 세우고 우리 안내판부터 앞으로 뺐어. 전시장 담당자 불러서 배너도 옮겼고. 근데 그거 옮겼다고 이미 꼬인 줄이 바로 풀리는 건 아니잖아."

"맞지."

"표 확인하는 데 사람이 더 필요해서 다른 쪽 직원도 데려왔거든. 그러니까 이번에는 그쪽에 사람이 비고. 그날 오전은 계속 여기 막으면 저기서 부르고 그랬어."

"도면 다시 잡았는데, 현장에서 또 바꿔버린 거네."

"그러니까. 그날 문 닫고 양쪽 담당자들 다시 불렀어. 배너 자리 정해놓고, 바꿀 거면 누구한테 먼저 얘기할지도 정하고. 입구에서 한 번, 엘리베이터 쪽에서 한 번, 또 걸어보고."

진주는 수첩을 무릎 위에 펼쳐둔 채 웃었다.

"그날은 관람객보다 내가 입구를 더 많이 지나갔을걸."

"고생했네. 밥은 먹고 했나."

"다 끝내고 먹었지. 그때 숙소 근처에서 늦게까지 하는 데 찾다가 들깨칼국수 집에 들어갔는데, 거기가 진짜 맛있어서 세 번이나 갔어."

들깨칼국수. 진주의 입에서 나온 메뉴에 전화 너머의 성진이 반응했다.

"니 들깨 안 좋아하잖아. 내랑 국수 먹으러 갈 때면 늘 딴 거 시키지 않았나."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그 집이 진짜 맛있었던 거야. 걸쭉하고 고소하고."

"참 나. 내가 맛집이라고 같이 가자 할 때는 싫다 하더니, 혼자 가서는 세 번이나 무웃나."

억울하다는 듯 투덜거리는 성진의 목소리에 진주가 실소를 터뜨렸다.

"네가 가자고 했던 데는 여기랑 달랐어. 그리고 그때 너도 결국 나 따라서 비빔국수 시켜 먹었잖아."

"……그랬나."

"그래. 억울한 척하지 마."

서로의 엇갈린 기억을 두고 투덕거리던 두 사람은 가볍게 웃었다.

"숙소에서 그 집이 그래 가까웠나."

"응. 걸어서 오 분?"

"주야, 거긴 김치도 괜찮았나."

아주 자연스럽게 예전 호칭이 튀어나왔다.

'주야.'

진주가 수첩을 덮으려던 손을 허공에 멈췄다. 너무나 평범한 억양으로, 훅 붙어 나온 애칭이었다.

"……진주야."

성진은 곧바로 이름을 고쳐 불렀다.

"어? 방금 뭐라고?"

진주가 잠깐 놓쳤던 대화를 잇기 위해 되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애칭에 ‘어, 겉절이.’라고 대답할 뻔했다는 사실에 혼자 조금 놀랐을 뿐이다.

"그 집 김치도 맛있었냐고."

"응. 겉절이 나왔어. 갈 때마다 더 달라고 했지."

진주는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파견지의 가게에 대해 남은 이야기들을 마저 나눴다.

"이제 슬슬 씻어야겠다. 주말인데 푹 쉬어라."

이야기가 잦아들고, 통화를 끊어도 될 만한 타이밍이 왔다. 진주는 바닥에 놓인 파우치를 쳐다보았다. 작은 로션병과 빗 몇 개를 꺼내 서랍에 넣으면 끝이었다.

"어…… 성진아."

진주가 전화를 끊으려던 성진을 불렀다.

"나 아까 그 칼국수 얘기하니까 갑자기 너무 먹고 싶어지네. 이 동네 근처에도 비슷한 데 있는지 한 번 찾아보려고."

"...다음 주에 시간 맞으면 같이 저녁 먹을래?"

진주는 수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래. 언제가 괜찮은데."

"나는 화요일이나 목요일 괜찮아."

"잠시만…… 목요일은 거래처 미팅이 늦게 잡혀 있어서, 화요일이 낫다."

"그럼 화요일 일곱 시에 밥 먹을까? 장소는 내가 찾아볼게."

"알았다. 화요일 일곱 시."

진주가 먼저 가게를 찾아보고 링크를 보내주기로 하면서 대화는 끝났다.

"그럼 찾아보고 톡 남길게. 쉬어."

"어. 끊을게."

전화가 끊어졌다. 진주는 파우치를 비워 물건들을 서랍에 넣은 뒤, 바닥에 뒹굴던 빈 가방의 지퍼를 마저 닫았다.

진주는 휴대폰을 내려놓는 대신, 다시 화면을 켜고 포털 사이트 검색창을 열었다.

망원역 근처에 리뷰가 꽤 괜찮은 국수 가게가 하나 눈에 띄었다. 메뉴판 사진을 넘겨보던 진주의 시선이 '수육'이라는 글자에 머물렀다.

진주는 가게 정보 링크를 복사해 성진과의 대화방에 붙여넣었다.

이진주
[링크] 망원 쪽에 괜찮은 데 찾았어. 여기로 바로 올래? 일곱 시에.
이진주
메뉴 보니까 수육도 있네. 너 아직도 수육 좋아해?

메시지를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빈 가방을 베란다 쪽으로 치우려 할 때, 짧은 진동이 울렸다.

박성진
좋아하지.
박성진
근데 메뉴판 보니까 작은 사이즈가 없네. 우리 둘이 다 먹을 수 있겠나.
이진주
너 내 양 아직도 무시하네. 나 파견 가서 위 늘려왔어.
박성진
니 예전에도 그 말 하고 두 점 남기더만.
이진주
그건 너 먹으라고 준 거지.
박성진
배불러 죽겠다 안 했나.

진주는 베란다 문 앞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한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두 손으로 고쳐 잡았다.

이진주
먹을 때는 별말 안 하더니 기억력 좋네.

만날 시간과 장소는 이미 한참 전에 정해졌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주고받는 메시지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저도 수육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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