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y Day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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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3

끝내는 연락, 이어지는 질문

작가의 한마디

파견 복귀 후 첫 출근. 두 달 만에 돌아온 사무실은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낯설었다. 진주는 모니터 화면에 띄워둔 전시장 도면을 의미 없이 스크롤하며 마우스를 쥔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주변에서는 기획팀 팀원들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와, 복합기가 종이를 토해내는 백색 소음이 일상적으로 흘러갔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오후 두 시. 진주는 모니터 한구석에 띄워진 메신저 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성진과의 대화방에는 전날 오전 보낸 ‘오후에 화분 찾으러 갈게’라는 메시지가 마지막으로 남아 있었다.

화분을 돌려받은 뒤, 진주는 거실 창가에 놓인 몬스테라를 한동안 쳐다보았었다. 화분에는 새로운 연두색 잎이 나 있었고, 다른 잎사귀들 역시 먼지 하나 없이 윤기가 돌았다. 분명 매일 관리를 해준 덕이었을 것이다.

진주는 스마트폰을 들어 은행 어플을 열었다. 두 달 동안의 수고비. 얼마가 적당한지는 알 수 없었다. 진주는 금액란에 5만 원을 입력했다. 고맙다는 말만 남겨두는 것보다는 이쪽이 마음에 걸리는 게 적을 것 같았다.

성진의 계좌번호는 3년을 사귀는 동안 진주의 어플 즐겨찾기 목록에 깊게 박혀 있었다. 진주는 지문 인식으로 단숨에 이체를 마쳤다. 이내 메신저 창을 열고 짧은 인사를 남겼다.

이진주
화분 관리비 조금 보냈어. 두 달 동안 신경 써줬잖아. 고마워.

화면을 뒤집어 책상 위에 올려둔 진주는 다시 도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돈도 보냈고 인사도 남겼다.

하지만 책상 위에 엎어둔 휴대폰이 짧게 진동하기까지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입금 알림이었다. 50,000원. 입금자명은 박성진.

진주가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자, 성진의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했다.

박성진
돈은 와 보내는데.
박성진
다시 보냈다. 내가 키우고 싶어서 키운 건데.

진주는 지체 없이 자판을 두드렸다.

이진주
두 달이나 신경 써줬잖아. 그냥 받아줘.

숫자 ‘1’이 금세 사라졌다.

박성진
됐다. 몬스테라도 잘 크고 나도 신경 쓰면서 좋았다. 진짜 안 줘도 된다. 부담 갖지 마라.

단호한 거절. 진주는 화면을 내려다보며 엄지손가락으로 휴대폰 측면을 느리게 쓸어내렸다. ‘부담 갖지 마라’는 말에서 더 이상 실랑이를 이어갈 명분이 사라졌다.

진주는 천천히, 문장을 쳤다.

이진주
알았어. 그럼 잘 지내.

메시지를 끝으로 더 이상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로 끝이었다. 진주는 휴대폰을 서랍 안에 소리가 나지 않게 밀어 넣고 닫았다.

다음 날 퇴근길. 개찰구를 나와 지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을 때, 진주의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기획팀 단체 대화방이거나 광고 메시지일 거라 생각하며 무심코 화면을 켠 진주는, 잠금 화면에 떠 있는 이름에 걸음을 멈칫했다.

[박성진]

전날 분명히 ‘잘 지내’라는 인사로 대화가 종료된 방이었다. 진주는 화면의 잠금을 풀었다.

박성진
바쁘나.

짧은 질문. 아주 짧은 고민 끝에 진주는 답을 보냈다.

이진주
아니. 퇴근하는 길. 무슨 일 있어?

메시지를 읽은 표시는 났지만, 대답은 곧바로 오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가 지상에 도착하고, 진주가 아파트 단지 입구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간간이 ‘입력 중…’이라는 표시만 떴다 사라질 뿐이었다.

진주가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릴 때, 마침내 연달아 두 개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박성진
화분 갖다주고 와서 생각을 좀 해봤는데.
박성진
내가 마지막 날 했던 말 사과하고 싶다.

진주의 시선이 ‘마지막 날’이라는 단어에 멈췄다. 두 달 전, 파견을 앞둔 마지막 주말. 출발 직전에야 늦을 것 같다고 통보하던 그의 피곤한 목소리가 생생하게 살아났다.

손가락이 화면 위를 빠르게 두드렸다.

이진주
그때도 사과는 했잖아.

미안하다고, 일이 좀 안 끝나서 그렇다고, 파견 갔다 와서 그때 시간 맞춰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진주가 원했던 것은 미안하다는 단어가 아니라, 파견 전 마지막 얼굴을 보는 ‘오늘’의 약속을 지켜주는 것이었지만.

초록불이 켜졌지만 진주는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하고 자리에 서 있었다. 성진의 대답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박성진
그때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똑바로 몰랐다.
박성진
그냥 일 때문에 늦는 건데 니가 너무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했다. 싸우기 싫어서 빨리 사과하고 넘어가려고만 했고.
박성진
나는 그날 약속 한 번 못 지킨 것 때문에 헤어지자 한 줄 알았다.
박성진
미리 연락해달라 한 것도, 못 만나면 다음 약속은 내가 잡아달라 한 것도 다 들었는데.
박성진
그래놓고 매번 니가 기다려줄 거라고 생각했다. 맨날 미안하다 해놓고 또 똑같이 했으니, 니가 내 말을 우째 믿겠노.

진주는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줬다.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박성진
당장 만나자고 떼쓰는 거 아니다. 그냥, 많이 늦었지만 얼굴 보고 제대로 다시 사과하고 싶다.
박성진
니 편할 때, 잠깐이라도 시간 내줄 수 있겠나.

일이 바쁜 건 알지만 잠깐이라도 얼굴을 볼 수 없겠냐고 매달렸던 쪽은 늘 진주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성진이 진주의 시간을 구하고 있었다. 진주는 답장을 쓰지 않은 채 휴대폰 화면을 껐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돌려받은 날 책장에서 조금 띄워놓은 화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새 잎은 책장 모서리에 닿지 않은 채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만나서 사과를 들어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 무시하고 영영 끝내버려야 할까.

다음 날 오후까지 새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성진이 기다리는 것인지, 더 할 말을 찾지 못한 것인지 진주는 알 수 없었다.

박성진
그래놓고 매번 니가 기다려줄 거라고 생각했다. 맨날 미안하다 해놓고 또 똑같이 했으니, 니가 내 말을 우째 믿겠노.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몇 번이나 되풀이했던 부탁을 이번에는 성진이 먼저 꺼냈다. 이제라도 제대로 알아들었다는 건지, 만나면 무슨 말을 더 할지 궁금했다.

오후 4시. 진주는 천천히 자판을 두드렸다.

이진주
이번 주 금요일 퇴근하고. 차 한 잔 정도는 마실 수 있어.

전송 버튼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1이 사라졌다.

박성진
고맙다. 시간 내줘서.
박성진
회사 근처나 집 근처로 갈까

진주는 잠시 생각했다. 다시 그를 자신의 동네로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회사 근처로 오게 해서 업무의 연장선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지도 않았다.

이진주
아니. 중간에서 봐.
박성진
그래. 시간은 니 편할 때로 맞춰라.
박성진
나 그날 일정 다 비워둘게.

진주는 화면 속 글자를 들여다봤다.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을 때는 듣지 못했던 말이, 사과를 듣겠다고 하니 돌아왔다. 이제라도 들었으니 됐다고 생각하기에는 그동안 기다린 저녁이, 서운했던 날들이 많았다.

이진주
일곱 시. 합정에서 보자.
박성진
알았다. 일곱 시.

진주는 캘린더를 열어 약속을 적었다.

금요일 오후 일곱 시, 합정역 박성진.

작가의 한마디

잘못을 깨닫고 사과의 연락을 하는 전남친 박성진

이야기 속 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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