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y Day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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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2

익숙해서 더 불편한 사람

작가의 한마디

"새로 난 거. 언제 났어?"

예정에 없던 진주의 질문에, 방금 전까지 무심하게 주머니로 향하던 성진의 손이 멈칫했다. 그는 트렁크 안쪽에 놓인 몬스테라를 한 번 돌아보더니 덤덤하게 대답했다.

"한 이주 됐나. 처음에는 쬐끄맣게 말려 있더니, 며칠 전부터 확 펴지더라."

잎이 자라난 시기를 건조하게 알려주는 것으로 짧은 대답을 마친 성진이, 화분 가장자리를 한 번 가볍게 밀어 위치가 단단한지 확인했다.

"됐다. 닫아라."

진주가 트렁크 위쪽에 달린 전동 닫힘 버튼을 누르려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어, 잠시만."

성진의 짧은 외침과 동시에 두 사람이 반사적으로 화분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화분이 트렁크 매트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면서 잎의 각도가 미세하게 틀어진 모양이었다. 바깥쪽으로 가장 길게 뻗어 있던 굵은 가지 하나가 트렁크 문이 닫히는 궤적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하필이면 그 가지 끝에 매달린 것이 방금 전 진주가 물어보았던 그 연두색 새잎이었다.

놀란 마음에 진주가 반사적으로 몸을 숙여 잎을 빼내려 손을 뻗었다. 동시에 반대쪽에서도 성진의 굵은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좁은 트렁크 입구에서 두 사람의 머리와 어깨가 아주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얽혔다.

"하마터면 꺾일 뻔했네."

"화분 살짝만 돌리자. 이파리 안 걸리구로."

성진이 화분 밑동을 잡아 옆으로 살짝 비트는 사이, 진주가 구겨질 뻔했던 새잎을 조심스럽게 받쳐 안쪽으로 피하게 했다. 잎이 닿지 않을 만큼 안전한 공간이 확보되었다. 안도감에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서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코끝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놀란 눈으로 마주 본 순간,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두 사람의 입가에 동시에 희미한 경련이 일었다.

어이없음과 안도감이 뒤섞인, 3년의 연애 기간 동안 수도 없이 겪었던 ‘둘만의 익숙한 사고’ 뒤에 따라오던 반사적인 웃음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제대로 안 보고 닫으면 우짜노’, ‘아 그걸 이렇게 놔두면 어떡해!’ 하며 투덕거리다가 결국엔 킥킥거리며 웃음이 터졌을 상황.

하지만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려던 그 익숙한 공기는, 허공에서 시선이 얽힌 지 단 1초 만에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진주는 황급히 입술을 안으로 꾹 말아 물며 상체를 뒤로 물렸고, 성진 역시 짧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방금 전까지 무의식적으로 공유했던 그 찰나의 동질감은, 웃음 대신 서늘한 자각이 되어 두 사람의 어깨를 짓눌렀다.

"……집에 가서는 우째 내릴 건데."

어색한 공기를 깨고 성진이 먼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관리사무소에서 수레 빌리려고."

"아, 수레 있나."

성진이 트렁크 안을 한 번 더 돌아보았다. 큼직한 도기 화분은 두 사람이 함께 들어도 꽤 묵직한 무게였다.

"그래도 차에서 내릴 때는 둘이 낫겠다. 수레에 싣다가 엎어지면 도자기라 다 깨진다. 내가 같이 가서 옮겨줄까."

진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겉옷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방금 전 화분 밑으로 손을 넣어 들어 올리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직 손가락 마디가 뻐근했다. 수레를 빌린다고 해도 트렁크에서 땅으로 내리는 과정이 남았다. 무리해서 혼자 끙끙대다가 화분을 깨뜨리는 것보다는 그의 손을 잠깐 빌리는 편이 나았다.

"……그럼 집에 들여놓는 것까지만 부탁할게."

"어. 타라."

성진이 군말 없이 조수석으로 향했다. 진주가 운전석에 앉고 시동을 걸자, 차 안에는 묵직한 엔진음만이 유일한 소음으로 남았다.

성진의 집에서 진주의 집까지는 차로 20분 남짓한 거리. 주말 오후의 도로는 제법 막혔다. 평소라면 라디오 소리조차 필요 없이 쉴 새 없이 떠들거나, 성진이 거래처를 다니다 발견한 식당 이야기를 들으며 다음에 같이 가보자고 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조수석에 앉은 성진은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진주 역시 정면의 도로만 뚫어지게 응시하며 운전대를 잡은 손가락에 하얗게 힘을 줬다.

차가 지하차도로 진입하며 실내 공기가 서늘해졌을 때였다. 성진의 오른손이 아주 미세하게 허공으로 들렸다. 센터페시아에 있는 히터 온도를 조절하려는 무의식적인 움직임이었다. 진주의 차를 탈 때면 늘 그가 온도를 맞추고 라디오 채널을 돌리곤 했으니까.

하지만 성진의 손은 공조기 버튼에 닿기 직전 멈칫하더니, 이내 갈 곳을 잃고 어색하게 허공을 맴돌다 다시 자신의 허벅지 위로 내려앉았다. 그가 주먹을 살짝 말아 쥐며 시선을 다시 창밖으로 돌리는 것을 보았을 때, 진주는 창문을 열고 싶을 만큼 숨이 막혀왔다.

짐을 옮겨주겠다는 배려를 받고 있지만, 철저히 남의 차에 얻어 탄 타인으로 행동하는 저 조심스러움. 차라리 원수처럼 싸우고 헤어졌다면 이토록 불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함께 나눈 3년이라는 시간의 지층이 너무 두꺼워서, 숨 쉬는 타이밍이나 손이 뻗어 나가는 곳곳마다 서로의 흔적이 지뢰처럼 널려 있는 것이 문제였다.

진주의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 화분을 내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에도 침묵은 깨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까 성진의 아파트에서 내려올 때처럼, 필요한 말만 주고받으며 화분을 들고 걸음을 맞췄다.

도어락 앞에 선 진주는 잠시 망설였다.

자신의 생일인 '1219'. 성진의 집과 똑같았던 비밀번호를, 진주는 헤어진 직후 다른 번호로 바꿔버렸었다. 성진이 자신의 집에 불쑥 찾아올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번호를 누를 때마다 쏟아지는 기억들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주가 성진의 시선을 가리듯 몸을 살짝 틀어 바뀐 비밀번호를 눌렀다. 네 자리 숫자가 삑, 삑, 삑, 삑 울리고 현관문이 열렸다. 뒤에서 화분을 받치고 있던 성진의 숨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멈칫하는 것을 진주는 들었지만, 굳이 뒤돌아보지 않았다.

"들어와."

두 달 동안 주인이 비워두어 묵은 공기가 가라앉은 진주의 집 안으로 두 사람이 걸음을 옮겼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진주가 먼저 화분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잠깐만."

성진과 호흡을 맞춰 화분을 바닥에 내려놓은 진주가 화분 아래에 받쳐두었던 얇은 플라스틱 물받침을 빼냈다. 그녀가 먼저 거실로 들어가, 원래 몬스테라가 3년 내내 놓여 있던 책장 옆의 창가 자리에 물받침을 깔았다.

그 사이 현관에서 신발을 벗은 성진이 다시 화분을 고쳐 안고 거실로 들어섰다. 진주도 서둘러 화분 반대편을 잡았다. 묵직한 발걸음으로 거실을 가로지른 두 사람이 창가 자리에 다다랐다.

예전 같았으면 화분을 쿵 내려놓고는 ‘여가 딱 명당이다. 니는 내 아니면 이 무거운 거 우째 옮기려고 했노’라며 익숙하게 너스레를 떨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진은 화분을 바닥의 물받침 위로 내리기 직전, 허리를 반쯤 숙인 어정쩡한 자세로 우뚝 멈춰 섰다. 성진의 시선이 먼저 물받침이 깔린 책장 옆 창가로 향했다. 진주가 말하지 않아도 그가 잘 아는 자리였다.

"저기, 그대로 놔두면 되나?"

진주는 잠깐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거기."

예전에는 묻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에 놓을지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는 것도 진주는 알았다. 진주가 대답하자 성진이 조심스럽게 화분을 내려놓았다. 도기 바닥이 얇은 플라스틱을 누르며 마루와 맞닿는 소리가 텅 빈 거실 안을 스산하게 울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성진은 바지에 두 손을 쓱쓱 문질러 닦았다. 할 일을 모두 마친 사람처럼, 이제 뒤돌아 현관으로 나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성진은 곧바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잠시 화분 주변에 멈춰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이 화분의 잎사귀를 스쳐, 진주의 거실 창문 틈새로, 그리고 화분 바로 옆에 놓인 원목 책장 위로 미끄러졌다. 성진의 시선이 삐뚤어진 책장 두 번째 칸의 문짝 경첩에서 현관 신발장 쪽으로 옮겨가는 것을 진주는 똑똑히 보았다.

드라이버는 아직 그 신발장 세 번째 서랍에 있었다. 성진의 머릿속에서 신발장으로 가 드라이버를 찾아온 뒤 저 삐딱한 문짝을 고쳐놓고 싶은 충동이 일고 있다는 것을, 진주는 굳이 그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진주는 그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말했다.

"이제 됐어."

우뚝. 성진의 고개가 천천히 진주를 향했다.

"무거운 거 옮겨줘서 고마워. 그만 가봐."

명확한 선 긋기였다. 진주의 표정은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더 이상 당신이 내 공간의 어긋난 문짝을 고쳐주거나 내 일상에 개입할 이유가 없다는 축객령이 담겨 있었다.

성진의 턱 근육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는 마른침을 한 번 삼켰다.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듯 그의 입술이 달싹였지만, 결국 튀어나온 것은 가장 실용적이고 건조한 당부뿐이었다.

"……물은 엊그제 흠뻑 줬다. 흙 마르기 전까지는 당분간 주지 마라. 뿌리 썩는다."

"알았어."

진주가 짧게 대답하자, 성진은 더 머뭇거리지 않고 현관으로 향했다. 진주가 그 뒤를 쫓아 배웅했지만, 성진은 슬리퍼를 다시 꿰어 신고는 굳이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문을 열고 나갔다.

'쾅- 찰칵.'

무거운 현관문이 닫히고, 자동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완벽한 정적이 찾아온 거실 한가운데에 진주는 홀로 남겨졌다. 두 달 만에 돌아온 자신의 집은 낯설고 차가웠고, 오직 거실 구석에 놓인 몬스테라 화분만이 짙푸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진주는 천천히 거실 창가로 다가갔다. 바닥에 놓인 화분은, 아까 내려놓은 각도 탓에 책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원래 자리는 조금 더 안쪽이었다.

진주는 쪼그려 앉아 화분 양쪽을 잡았다. 무릎에 힘을 주고 조금씩 밀자 도기가 바닥을 따라 스르륵 움직였다. 화분은 기억하던 자리에 들어갔다.

그런데 몬스테라의 새잎 끝이 책장 옆판에 닿아 접혔다.

진주는 손을 멈췄다. 잎을 살짝 비켜주고 화분을 반대쪽으로 돌려봤지만, 이번에는 다른 쪽의 굵은 잎이 창틀 벽면에 닿았다. 어느 쪽으로 돌려도 하나씩 걸렸다.

결국 화분을 다시 앞으로 빼냈다. 잎이 닿지 않을 만큼 거리를 두자 책장과 화분 사이에 제법 넓은 틈이 남았다.

전에는 저렇게 띄워놓지 않았는데.

진주는 새잎 끝을 손바닥으로 받쳐 살폈다. 상한 곳은 없었다. 손을 떼자 연두색 잎이 책장보다 조금 앞쪽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주는 커튼을 걷고 창문을 조금 열었다. 두 달 동안 닫혀 있던 방 안으로 늦은 오후의 서늘한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진주는 화분을 더 이상 안쪽으로 밀어 넣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혼자서도 들 수 있는데 같이 하고 싶었다에 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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