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y Day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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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3

그래도 운동은 합니다

작가의 한마디

발레 스튜디오 특유의 은은한 디퓨저 향기가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세 번째 수업 날, 희영은 평소보다 10분 정도 일찍 학원에 도착했다. 여전히 허벅지 안쪽과 엉덩이 밑 근육이 뻐근했지만, 첫 주처럼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비명을 지를 정도는 아니었다.

탈의실에서 발레 입문자 세트로 갈아입은 희영은 거울 앞에서 가볍게 목을 돌렸다. 머리는 이제 대충 집게핀으로 틀어 올렸고, 발목에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레그워머도 챙겨 신었다. 환상 속의 백조에서 현실적인 취미 발레인으로 완벽하게 타협한 모습이었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매트 위에 엎드려 있는 커다란 덩치가 보였다. 윤도운이었다. 희영이 매트를 들고 도운의 대각선 옆자리에 자리를 잡자, 엎드려 있던 도운이 고개를 들고 눈인사를 건넸다.

"일찍 오셨네요."

"도운 씨도요."

희영은 매트를 깔고 앉으며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국밥 친구는 이제 진짜 안 오신대요?"

그 말에 스트레칭을 하던 도운의 동작이 뚝 멈췄다. 도운은 순간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허탈한 헛웃음을 지었다.

"아, 그 자식 얘기는 하지 마세요. 주말에 스파링 한 판 하자고 체육관으로 불렀는데, 눈치채고 또 튀었습니다."

도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사이, 희영은 웃음을 터뜨리며 양말을 벗고 발끝을 길게 늘였다.

그때, 희영의 손을 무심코 보던 도운의 시선이 멈칫했다. 발끝을 잡기 위해 뻗은 희영의 손가락 곳곳에 하얀색 스포츠 테이핑이 감겨 있었다. 무엇보다 손바닥 안쪽으로는 오래된 굳은살이 층처럼 박혀 있었고, 테이프 아래로 드러난 손가락 마디들도 꽤 단단해 보였다.

"어? 손 다치셨어요?"

"네? 아, 이거요?"

도운이 묻자, 희영이 자신의 두 손을 들어 올려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제가 클라이밍을 좋아해서요. 어제 센터에서 홀드를 너무 꽉 잡았더니 손가락 껍질이 좀 벗겨져서 테이핑 한 거예요."

"클라이밍이요? 그, 벽 타는 거 맞죠?"

도운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스튜디오에서 볼 때마다 척추를 세우지 못해 바들바들 떨고, 다리를 찢지 못해 끙끙대며 자기와 똑같이 뚝딱거리던 희영이었다.

"의외라는 표정이네요."

"아니, 진짜 의외라서요. 그거 엄청 빡센 운동이라고 하던데. 얼마나 하셨는데요?"

"음… 시작한 지는 한 8년? 중간에 쉰 적도 있긴 한데, 그래도 꾸준히 암장 다녔어요."

'8년'이라는 숫자에 도운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도운 씨도 아까 복싱 하신다고 했잖아요. 스파링 뛴다고 하시는 거 보니까 꽤 오래 하셨나 봐요?"

"아, 예. 저도 한 5년 넘었죠."

희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를 가리고 큭큭 웃었다.

"그래서 지난주에 자꾸 발레 하다가 주먹을 쥐셨구나. 가드 올리는 줄 알았잖아요."

"아… 보셨습니까. 자꾸 스텝이 꼬이니까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가 나와가지고…."

가벼운 대화가 끝나고, 강사의 목소리와 함께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자, 오늘은 바에서 중심 잡는 연습을 조금 길게 해볼게요!"

바(Barre) 워크 중반, 강사가 시범을 보였다. 한 손으로 바를 가볍게 잡은 상태에서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무릎을 바깥으로 열고 발끝을 무릎 옆에 붙이는 동작이었다. 그리고 바를 잡고 있던 손을 아주 천천히 떼어내며 오직 한 다리로만 밸런스를 유지해야 했다.

"시선은 멀리 보시고, 코어에 힘 꽉! 위에서 누가 내 정수리를 당긴다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손 떼보세요!"

강사의 구령에 맞춰 수강생들이 일제히 숨을 멈추고 바에서 손을 뗐다. 곳곳에서 '아차' 하며 발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희영의 차례였다.

첫날 내내 몸을 늘리고 선을 만드는 데 실패했던 희영이지만, 발바닥 하나로 지면을 누르고 버텨야 하는 상황이 오자 몸이 다르게 반응했다. 8년 동안 작은 홀드 위에서 중심을 찾고 버텨온 감각이, 뜻밖에도 여기서는 도움이 됐다.

희영은 아주 조심스럽게 나무 바에서 손가락을 떼어냈다.

다른 때보다 확실히 덜 흔들렸다. 발목은 덜덜 떨렸지만, 두세 번 크게 휘청하고도 끝내 발을 바닥에 내리지 않고 다시 중심을 찾아냈다.

"어머, 희영 회원님, 중심 잡는 감각 좋으세요!"

돌아다니며 자세를 봐주던 강사가 희영의 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칭찬도 잠시였다.

"그런데 회원님… 팔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어요. 어깨 내리시고! 팔을 부드럽게 쓰셔야 하는데, 지금 무슨 통나무 껴안고 있는 것 같아요. 어깨 힘 빼세요!"

상체는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느라 어깨가 잔뜩 경직되어 있었다. 강사가 희영의 어깨를 꾹꾹 눌러 내리며 교정하는 동안, 대각선 뒤쪽에 서 있던 도운이 거울을 통해 그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자신은 바에서 손을 떼자마자 몸이 휙 기울어 황급히 발을 쿵 내려놓았는데, 희영은 비록 팔 모양은 기괴할지언정 귀신같이 한 발로 버티고 있었다.

'아니…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도운은 거울 속의 희영을 보며 속으로 살짝 억울함을 삼켰다.

"자, 윤도운 회원님도 손 한 번 떼볼까요?"

"아, 예… 윽!"

도운이 바에서 손을 떼자마자 몸이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며 휘청했다. 하마터면 옆 사람과 부딪칠 뻔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희영이 밸런스를 유지한 채로 턱을 당기고 조용히 '큭'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도운이 거울 너머로 억울한 눈빛을 쏘아 보냈지만, 희영은 모른 척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홀 중앙으로 나와 진행되는 센터 워크 시간이 되자 상황은 묘하게 달라졌다.

"자, 다들 1번 포지션 하시고, 음악에 맞춰서 가볍게 점프 뛸게요! 소테(Sauté)! 바닥을 꾹 눌렀다가 위로 톡! 떨어질 때는 소리 안 나게 부드럽게 착지하셔야 해요."

지난 수업에서 점프를 뛸 때, 도운은 바닥을 쿵쾅거리며 찍어 눌렀다. 하지만 강사가 도운의 옆에 서서 "발목을 스프링처럼 써보세요. 바닥을 꾹 눌렀다가 가볍게 탁 튕겨내는 거예요!"라고 팁을 주자, 도운의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복싱 스텝을 밟으며 체중을 이동하고 순간적인 탄력을 내는 감각은 도운에게 꽤 익숙한 것이었다. 무릎을 굽혔던 도운이 위로 솟아올랐다가, 발끝과 발볼로 먼저 바닥을 받아낸 뒤 뒤꿈치를 내리고 무릎을 부드럽게 굽혔다.

이번에는 '쿵' 소리가 나지 않았다.

“어머, 회원님! 방금 착지 딱 좋았어요. 발목 감을 금세 익히셨네요. 그 포인트 꼭 유지해 보세요!”

도운의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소테 연습이 끝난 뒤에는 간단한 센터 조합이 이어졌다. 오른발 탄듀 앞, 옆, 닫고 반대쪽. 동작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음악에 맞춰 좌우를 바꾸는 순간 희영의 머리가 다시 복잡해졌다. 희영은 점프와 점프 사이를 이어가는 스텝에서 발이 꼬였다. 속으로 '오른발, 그다음 왼발'을 계산하느라 번번이 반 박자씩 늦게 튀어 올랐다.

스텝이 꼬여 헉헉대던 희영이 거울을 보았을 때, 도운과 시선이 얽혔다.

도운의 표정은 마치 '봤죠?'라고 말하는 듯 은근한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아까 바 워크에서 희영이 밸런스를 잡을 때 보냈던 시선을 그대로 되돌려받은 셈이었다. 희영은 지지 않으려고 눈을 가늘게 뜨며 '웃지 마요'라는 무언의 압박을 보냈다.

쉬는 시간. 물을 마시던 도운이 희영의 곁으로 다가왔다.

"근데 클라이밍은 8년이나 어떻게 하셨어요? 엄청 힘들어서 금방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던데."

"음, 저는 그냥 도저히 안 풀릴 것 같은 문제 붙잡고 있다가, 어떻게든 내 몸으로 각도 찾아서 딱 성공했을 때 그 느낌이 좋더라고요. 안 되면 될 때까지 계속 매달리는 게 재밌어서요."

희영의 대답에 도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첫날 그 꼴을 보고도 두 번째 수업에 또 나오셨구나."

"아, 진짜. 윤도운 씨, 자꾸 첫날 얘기할래요?"

희영이 발끈하는 시늉을 하자, 도운이 껄껄 웃었다.

"도운 씨는 복싱 왜 그렇게 오래 하셨어요?"

"저는 뭐 정답 찾고 그런 이유 없어요. 그냥 머리 복잡할 때 생각 안 하고 몸 쓰기 좋아서요. 샌드백 치고 나면 기분이 깔끔해지거든요."

모든 수업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은 두 사람은 신발장 앞에서 짐을 챙겼다.

운동화 끈을 묶으며 희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아까 점프는 좀 잘하시던데요."

"그거 잘한 거 맞습니까? 선생님 표정 되게 불안해 보이던데."

도운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부정하더니 툭 덧붙였다.

"중심 진짜 안 흔들리던데요."

"대신 팔이 자꾸 옆 사람 죽이겠다고 사나워지잖아요."

운동화를 구겨 신은 도운이 가방을 둘러메며 슬쩍 도발했다.

"다음 주에는 저도 바에서 손 떼고 중심 잡는 거 무조건 안 넘어지고 성공할 겁니다."

"오, 그럼 저는 다음 주에 점프 뛸 때 발 꼬이는 거 한 번도 안 틀릴게요."

"그럼 다음 주에 먼저 휘청하거나 순서 틀리는 사람이 지는 거네요."

"좋아요. 근데 지는 사람이 뭐 하는 건데요? 뭐 걸 건데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희영이 묻자 도운이 턱을 문질렀다.

"그러게. 뭐까지 걸어야 됩니까?"

"그러게요."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울리고 문이 열렸다. 서로 딱히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한 벌칙을 생각해 둔 게 없어 잠시 조용해진 두 사람은 나란히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 일단 안 넘어지는 것부터 하고 생각합시다."

버튼을 누르며 도운이 헛웃음을 쳤다.

희영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근데 도운 씨."

"예?"

"아까 중심 잡을 때, 세 번 휘청하셨어요."

도운이 그 자리에서 굳은 채 고개를 홱 돌렸다.

"…그걸 굳이 다 세고 있었습니꺼?"

작가의 한마디

저는 도운이랑 발레하면 도운이 보느라 혼날듯

이야기 속 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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