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y My Day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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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1

동지를 만났다.

작가의 한마디

박희영은 전면 거울 앞에 서서 작게 숨을 들이켰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팽팽하게 당겨진 쇄골 아래로 묘한 긴장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블랙 레오타드와 스커트, 그래도 발레니까 포기하지 못한 핑크 타이즈.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결제 버튼을 누르기까지 무려 3주나 걸렸던 '성인 발레 입문 세트'였다. 머리도 나름대로 유튜브 튜토리얼을 보며 실핀을 수십 개나 꽂아 단단한 U자형 번으로 틀어 올렸다.

"하아…."

희영은 거울에 바짝 다가가 자신의 굳은 어깨를 내려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언제나 무용수들을 동경해왔다. 백조처럼 유려하게 뻗은 목선,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기립근의 섬세한 움직임, 중력을 거스르는 듯 가벼운 도약. 겉으로는 한없이 부드럽고 가냘파 보이지만, 그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면 아래에서 폭발적으로 근육을 통제하는 그들의 압도적인 코어 힘을 사랑했다.

그녀 자신도 몸을 쓰는 일이라면 꽤 자신이 있었다. 희영은 올해로 8년 차에 접어든 아마추어 클라이머였다. 퇴근 후 주 3회씩 암장에 출석 도장을 찍으며, 거친 홀드를 부여잡고 벽을 타는 일상에 푹 빠져 살았다. 덕분에 그녀의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훈장처럼 박혀 있었고, 악력이나 코어 근육, 광배근의 힘만큼은 어지간한 남자 회원들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소주 뚜껑도 한 손으로 딴다고!

'그래, 벽에 매달려서 내 체중도 버티는데, 맨몸으로 하는 발레쯤이야.'

근육의 쓰임이 다를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운동 신경이 있으니 남들보다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클라이밍장에서는 늘 초크 가루를 뒤집어쓴 채 땀을 뻘뻘 흘렸으니, 가끔은 이렇게 클래식한 음악 속에서 우아하게 몸을 움직이며 선을 다듬어보고 싶다는 로망도 있었다.

아직 수업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미리 세팅해 둔 완벽한 복장 덕분에 희영은 벌써부터 자신이 동경하던 무용수의 파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거울 앞에서 슬쩍 팔을 들어 올려 인스타에서 본 백조의 날갯짓 흉내를 내보려던 찰나였다.

"아, 진짜 이 새끼…."

복도 쪽에서 꽤나 거친 파열음이 섞인 남자의 탄식이 들려왔다.

희영은 황급히 팔을 내리고 헛기침을 하며 거울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아직 탈의실과 스튜디오를 잇는 좁은 복도에는 수업을 기다리는 몇몇 수강생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덩치 큰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윤도운. 같은 날, 같은 시간, 희영과 마찬가지로 이 낯선 '성인 기초 발레반'에 처음 발을 들인 남자였다.

남자는 복도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팔짱을 낀 채, 스마트폰 액정을 부서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넓은 어깨와 두툼한 가슴통을 가진 그가 입은 옷은 발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헬스장이나 복싱 체육관에서나 볼 법한 헐렁한 검은색 기능성 반팔 티셔츠와 신축성 좋은 조거 팬츠였다.

그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화면 속 카카오톡 대화창에는 얄미운 노란색 말풍선이 덩그러니 떠 있었다.

태준
야, 도운아. 내 진짜 미안한데 오늘 못 갈거같다. 어제 먹은 불닭이 잘못됐는지 아침부터 화장실에서 살고있다아이가. 장염인갑다. 니오늘먼저좀가있어라.쏘리!!ㅠㅠ

도운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이 발레 학원에 등록하게 된 건 순전히 저 빌어먹을 친구, 태준 때문이었다. 며칠 전 술자리에서 태준은 갑자기 '남자도 유연성이 생명'이라며, '요즘은 발레로 코어 근육 잡는 게 대세'라는 둥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았다. 복싱 체육관에서 샌드백만 치던 도운은 처음엔 단칼에 거절했지만, 혼자 가기 뻘쭘하다며 술값을 계산하겠다는 태준의 끈질긴 꼬드김에 넘어가 결국 동반 등록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정작 자신을 이 낯선 금남의 구역(물론 남자 수강생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으로 끌고 온 장본인은, 첫날부터 장염이라는 말만 남기고 혼자 빠져버린 것이다.

"하… 돌겠네 진짜."

도운이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작게 욕설을 씹어 삼킬 때, 스튜디오 문이 열리며 화사한 미소를 장착한 발레 강사가 인원수를 체크하며 다가왔다. 목선이 아름답게 파인 검은색 레오타드를 입은 강사는 걸음걸이부터가 일반인과는 달랐다.

"어머,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오신 분 맞으시죠? 윤도운 회원님?"

"아… 예, 맞습니다."

"반가워요! 그런데 혹시 같이 등록하신 이태준 회원님은 오늘 못 오셨나요? 두 분 같이 오신다고 메모가 되어 있어서요."

강사의 나긋나긋한 질문에 도운은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 큰 성인 남자가 친구가 안 와서 뻘쭘해한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최대한 태연하게 답했다.

"아, 예. 그 자식이, 아니, 그 친구가 오늘 속이 좀 안 좋다고 해서요. 오늘은 저 혼자 왔습니다."

"아유, 그러셨구나. 첫날이라 조금 어색하실 텐데 걱정 마세요. 제가 잘 알려드릴게요! 자, 이제 스튜디오로 들어오실까요?"

도운은 강사의 안내에 따라 쭈뼛쭈뼛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섰다. 널찍한 공간의 한쪽 벽면은 전면 거울로 되어 있었고, 공기 중에는 땀 냄새 대신 은은한 디퓨저 향과 오래된 나무 바닥 특유의 냄새가 섞여 났다. 잔잔하게 흐르는 피아노 선율은 왠지 모르게 사람을 경건하게 만들었다.

스튜디오 안에는 이미 대여섯 명의 회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기초반'이라고 해서 다들 뻣뻣한 초보자일 줄 알았는데, 실상은 전혀 달랐다. 몇 달째 꾸준히 수강하며 어느 정도 몸에 익은 회원들이 대다수였다. 그들은 마치 발레리나처럼 다리를 양옆으로 180도 가깝게 찢은 채 엎드려 있거나, 바(Barre)에 다리를 올리고 유연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분위기에 기가 눌린 도운은 가장 뒷줄, 거울 정면에서 살짝 빗겨난 구석 자리에 조심스레 요가 매트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 도운의 대각선 앞자리에는, 나름대로 발레 입문복을 갖춰입고 준비를 마친 희영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매트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결과적으로 오늘 '완전히' 처음 온 생초보 회원은 이 넓은 스튜디오 안에 박희영과 윤도운, 단 두 사람뿐이었다.

"자, 다들 모이셨네요. 오늘 처음 오신 분들도 계시니까 기초적인 매트 스트레칭부터 천천히 가볼게요. 다들 매트 위에 두 다리 쭉 뻗고 앉아주세요!"

강사의 경쾌한 목소리와 함께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비극은, 아주 기초적이라고 믿었던 그 '몸풀기 매트 운동'에서부터 처참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스튜디오 안의 다른 회원들은 강사의 구령에 맞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동작을 이어갔다. 그러나 유독 두 사람, 핑크 타이즈의 희영과 검은색 반팔 티의 도운만이 삐걱거리는 고장 난 로봇처럼 주변의 공기를 거스르고 있었다.

"자, 발끝은 길게 포인(Point)! 발등을 밀어내시고요. 골반은 바깥으로 열어주시고, 척추는 천장 쪽으로 길게 세울게요! 정수리를 누가 위에서 잡아당긴다고 생각하세요!"

강사의 주문은 듣기엔 참 아름다웠지만, 몸으로 구현해 내기엔 기괴할 정도로 모순적인 동작들의 연속이었다.

희영은 거울을 뚫어져라 보며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클라이밍으로 단련된 코어 덕분에 상체를 세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척추를 세우자. 정수리를 위로.' 희영이 척추를 세우기 위해 온몸의 근육에 빡! 하고 힘을 주는 순간, 애써 바닥으로 꾹꾹 눌러 열어두었던 골반이 스프링처럼 안쪽으로 말려 올라갔다.

'어, 안 돼.' 당황한 희영이 다시 골반을 잡고 무릎을 바닥으로 억지로 내리눌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반작용으로 어깨가 잔뜩 경직되며 귀밑까지 솟아오르고 말았다.

자세를 하나 고치면 기가 막히게 다른 한 부분이 흐트러졌다. 도미노가 무너지듯 우수수 무너지는 몸의 밸런스에 희영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길을 보고 문제를 풀며 중력을 거스르는 클라이밍과는 달리, 알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으로만 이루어진 무용이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쓰는 근육도 방식도 이렇게 다를 수가 없었다. 우아한 백조는커녕, 바위벽에 매달려 잔뜩 움츠러든 근육질 다람쥐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희영의 뚝딱거림은 도운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도운의 상태는 훨씬 더 심각했다.

"자, 오른쪽 다리는 접어서 허벅지 안쪽에 붙이시고, 왼쪽 다리는 옆으로 길게 뻗을게요. 시선은 왼쪽 발끝!"

강사의 설명을 듣는 도운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 진지했다. 그는 서울대 수석 입학생처럼 강사의 설명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눈빛에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그러고는 강사가 오른쪽 다리를 접자, 아주 당당하고 호쾌하게 '왼쪽' 다리를 접어버렸다. 시선은 왼쪽 발끝이 아닌 허공을 향해 있었고, 뻗은 다리는 햄스트링이 너무 굳어 있는 탓에 무릎이 굽어 거의 산봉우리처럼 솟아 있었다.

거울을 통해 전체적인 대형을 살피던 강사가 당황하며 도운의 곁으로 다가갔다.

"어머, 윤도운 회원님! 반대쪽이요, 반대쪽! 그리고 무릎은…." 강사가 도운의 솟아오른 무릎을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무릎은 가능한 만큼만 펴볼게요. 아프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강사가 뒤꿈치를 조금 더 앞으로 밀어보라고 손짓하자, 도운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 복싱 스텝을 밟으며 단단하게 뭉친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희영은 거울을 통해 전신이 굳어버려 동작 하나 따라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나는 안 되나 봐. 첫날부터 환불각인가.' 하며 우울해하던 찰나, 시선을 살짝 돌리다 거울 구석에 비친 도운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강사에게 다리 방향을 교정받으며 쩔쩔매고 있는 덩치 큰 남자. 반팔 티셔츠가 이미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색이 짙어져 있었다. 남자는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허공을 보며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그 엉성한 모습을 본 순간, 희영의 마음속에 이상하리만치 거대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다행이다… 나만 바보는 아니구나.'

몇 차례 자세를 바꿔가며 스트레칭이 이어졌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고르던 도운이 무심코 고개를 들었고, 거울을 통해 척추를 세우려다 숨을 쉬지 못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개구리 자세(Frog stretch)를 하고 끙끙대는 희영을 빤히 보게 된 것이다.

희영의 자세는 말 그대로 사방으로 방향을 잃은 개구리 그 자체였고, 거울 속에서 매트에 앉은 채 굳어버린 도운의 눈과 정확히 마주쳤다.

저 사람도 지금 미치기 일보 직전이구나. 찰나의 눈맞춤이었지만, 이 경건한 스튜디오 안에서 오직 둘만이 완벽하게 겉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로 상황을 판단하기도 전에 반사 신경이 먼저 반응했다.

희영이 꾹 다문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코끝이 벌렁거렸다. 그 모습을 본 도운 역시 콧구멍을 확장하며 숨을 참으려 애썼지만, 커다란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마저 막을 순 없었다.

"자, 다 같이 호흡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앞으로 숙일게요~"

강사의 나긋한 구령이 떨어지는 순간, 결국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터지고 말았다.

"풉!"

"푸흡… 켈록!"

정적을 깨는 둔탁한 웃음소리가 구석에서 터져 나왔다. 다행히 피아노 음악 소리에 묻혀 강사에게까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서로에게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린 소리였다. 희영은 웃음을 감추기 위해 황급히 매트 위로 얼굴을 파묻었고, 도운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푹 숙인 채 덜덜 떨리는 다리를 쥐어박았다.

몸풀기 매트 운동이 끝났을 무렵, 두 사람은 이미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사람처럼 진이 다 빠져 있었다.

50분 같았던 10분의 몸풀기가 끝나고, 이어지는 바(Barre) 워크와 센터 수업에서도 둘의 활약(?)은 눈부셨다. 희영은 발끝부터 어떻게든 180도로 벌려보려다 발 안쪽이 푹 무너졌다. 강사가 곧바로 다가와 다시 자세를 잡아주었다.

"발만 돌리시면 안 돼요. 무릎이랑 발끝 같은 방향으로요."

도운의 뚝딱거림도 지지 않았다. 강사가 ‘오른발부터 탄듀(Tendu) 옆으로!’라고 외쳤을 때, 도운 홀로 당당하게 왼발을 내밀며 주변 회원들과 묘한 엇박자를 만들어냈다.

지옥 같던 50분의 수업이 모두 끝나고,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강사의 인사와 함께 스튜디오에 자유가 찾아왔다.

탈의실에서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나온 희영은 땀에 젖은 앞머리를 털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예뻤던 레오타드는 땀에 절어 무거워졌고, 야심 차게 묶었던 번 헤어는 다 풀어져 산발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다.

가방을 고쳐 메고 신발장 앞에서 굽이 낮은 단화로 갈아신으려던 참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앓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희영의 옆으로 다가왔다. 돌아보니 조금 전 구석 자리에서 함께 헛웃음을 터뜨렸던 그 남자, 도운이었다. 그 역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몰골로 운동화를 구겨 신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남자는 생각보다 체격이 훨씬 컸고, 얼굴은 묘하게 앳된 구석이 있었다. 희영보다 서너 살은 어려 보였다. 하지만 아까 거울을 통해 나눴던 그 강렬한 동지애 때문일까. 희영은 전혀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후, 몸풀기부터 이럴 줄은 진짜 몰랐네요."

희영이 헛웃음을 지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나오는 실소였다. 신발 뒤축을 꺾어 신으려다 멈칫한 도운이 고개를 돌려 희영을 보았다. 그의 땀에 젖은 얼굴에도 짙은 피로와 깊은 공감이 서려 있었다.

"제 말이요. 와…." 도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던데요."

도운이 과장되게 어깨를 주무르는 시늉을 하자, 희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푸하핫!" 하고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 수업 시간에 억지로 참았던 웃음까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맞아요! 저도 아까 허리 펴다가 등에서 쥐 날 뻔했어요. 아니, 대체 발레 하시는 분들은 그 뼈 구조가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그니까요. 아까 다리 펴라 할 때 진짜 큰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이건 사람 할 짓이 못 됩니더."

도운도 혀를 내두르며 희영의 말에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쳤다. 평소의 말투와 사투리가 살짝 섞여 나오는 모양새가 퍽 자연스러웠다.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같은 고난을 겪고 나니 묘한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완벽함을 뽐내는 고수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바닥을 긴 두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밑바닥의 정서였다.

"아, 저 박희영이에요."

"윤도운입니다. 아까 선생님이 하도 불러서 이름은 이미 들으셨겠네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나란히 문을 나섰다. 건물 입구의 낮은 계단을 내려가던 희영이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한 칸 아래로 휘청했다.

"아차." 뒤따라오던 도운 역시 비슷하게 다리가 풀렸는지

"아이고" 하는 앓는 소리를 냈다. 두 사람은 또 한 번 서로의 꼴을 보며 실소를 터뜨렸다.

"다음 시간에는 좀 나아지겠죠." 도운이 담백하게 말을 건네자, 희영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좋겠어요."

건물 입구에서 짧게 손을 흔든 뒤, 희영은 지하철역으로, 도운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작가의 한마디

발레 해보고 싶어요

이야기 속 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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